《소녀 수집하는 노인》 - 쇠할수록 성하는 것

 

 

 

조이스 캐롤 오츠 | 《소녀 수집하는 노인》 | 아고라 | 2009

 

가장 진정한 삶은 항상 숨겨져야 한다. 그는 어릴 때 그걸 알았다. 어른이 되어서도 술을 진탕 마시는 동안, 파티를 하는 동안, 손님들을 접대하는 동안, 모두가 사랑하는 익살꾼 파파 역할을 하는 동안에도 그는 그걸 알았다. 땀냄새 나는 이불 속에서 아파서 잠 못 들고 누워 있을 때에도 그걸 알았다. 언제나 사람은 혼자다. 총을 가진 남자는 혼자 있어도 아무도 필요하지 않듯이. 머리에 탄알이 박혀서 수류탄이 폭발하듯 강력하게 터지는 것은 섹스와 무관한 에로틱한 상상이었다. 제기랄! 정말 달콤할 거야! (89쪽, <아이다호에서 보낸 헤밍웨이의 마지막 나날들> 중에서)

 

어제는 끊임없이 사라졌다. 어제의 어제에 대한 아쉬움과 오늘이 되어버린 내일에 대한 기대를 가지고 가버렸다. 오늘 나는, 그 어제들에 대해 생각한다. 사라지고 난 후에야 존재할 수 있는 시간의 이름에 대해, 아직 생생한 기억이 있어 사라져버린 것을 알게 하고 사라지고 나서야 뒤늦게 생각하게 하는 시간의 작용에 대해. 그 생각을 하는 데 하루를 다 사용했다. 그리하여 어제는 또 사라졌고, 사라진 어제는 많은 것들을 함께 가지고 가버렸다. 생각 대신에 행동할 수 있었던 일들, 그 가능성, 달라질 수 있었던 어제의 기억과 감정 같은 것들. 그렇게 이미 많은 시간을 흘러왔다. 돌이킬 수 없는 어제에 깊게 발을 담구고 ‘이미’라는 말의 필연적인 패배감에 아주 오랫동안 사로잡혀서.

 

나보다 더 많은 어제를 가진 이들이 《소녀 수집하는 노인》에 있다. 나이가 많은 자신이 잃어버린 젊고 싱싱하고 아름다운 것에 집착하며 소녀들을 수집하는 ‘마크 트웨인’, 젊은 시절 군 복무를 하지 않았다는 죄책감으로 상이군인들에 대한 자원봉사를 하다 그들을 사랑하게 된 ‘헨리 제임스’, 늙고 병든 스스로의 모습을 역겨워하며 자살을 간절히 원하지만 실천에 옮기지 못하는 ‘헤밍웨이’를 보니 알겠다. 사라진 것들의 축적된 무게를 짊어지고 그 스스로가 사라져가고 있는 노년의 삶일수록 그 생(生)의 두 발이 ‘이미’가 아닌 ‘아직’에 매달려있다는 사실을. 그들은 여전히 ‘살아 있었’고 육신이 노쇠할수록 생명은 더욱 선명하고 욕망은 더욱 성성해져있었다.  

 

갑자기 악마 소녀처럼 아이들이 키 큰 풀숲에서 튀어나와 그랜드파에게 달려들어서는 잠자리채로 그를 찌르고 클로로포름 적신 손수건으로 그의 코를 내리쳤다. 그들의 젊은 웃음소리는 얼마나 매정한가. 그들의 비아냥거림은 얼마나 잔인한가. 클레멘스 할아버지는 미끄러져 넘어질 뻔하다가 팔을 마구 휘둘러서 겨우 균형을 잡았다. 다리가 끔찍하게 아팠지만 몸을 바로세웠다. 그러고는 자신의 엔젤피시를 껴안고 싶어서 팔을 내밀었다. 가슴속에서 심장이 마구 뛰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알았다. 나는 아직 살아있군. 그런가? 아직도? 이게 살아있는 건가? (81-82쪽, 〈소녀 수집하는 노인〉중에서)

 

저 저명한 작가들, 마크 트웨인, 헤밍웨이, 애드거 앨런 포, 헨리 제임스, 에밀리 디킨스의 마지막 나날이 조이스 캐럴 오츠의 상상에 의해 새로 태어난다. 이로써 대문호로 지칭된 그들의 삶은 그저 죽음 앞에 선 인간의 것으로 대체된다. 아름답고 감명 깊고 비범한 그들의 작품과는 한참이나 거리가 먼, 추하고 괴상하고 쓸쓸하고 안쓰럽기까지 한 모습들이다. 하지만 이것이 또한 여전히 ‘살아 있고’ 그러므로 ‘아직’ 무언가를 바라고 있는 생(生)의 얼굴일 것이다. 죽음에 가까워질수록 가식없이 드러나는, 가장 인간답게 삶을 마무리하는 인간의 마지막 얼굴일 것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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