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읽니?] 오카노 유이치,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오카노 유이치 |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 | 라이팅하우스 | 2013

 

치매, 혹은 알츠하이머. 드라마나 영화에서 많이 묘사되는 이 병은 별로 실감나지 않습니다. 그런 식으로만 접했을 뿐 가까이에서 겪어본 적이 없기 때문이겠죠. 갖은 증상이 있겠지만 걔 중에서도 기억을 잊어버리고 과거에서 살게 된다는 게 잘 상상되지 않기도 하고요. 이 사람, 오카노 유이치도 마찬가지였을 겁니다. 어머니가 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요. 그의 어머니는 아버지가 돌아가신 다음부터 서서히 치매가 오기 시작합니다. 결국 요양원에 어머니를 맡기고 일주일에 두세 번씩 들락거리는 생활을 하는데요. 《페코로스, 어머니 만나러 갑니다》는 그 일상을 담은 만화입니다.

 

 

처음에는 허둥거렸을 겁니다. 어머니가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자신을 잊어버리는 것이 안타깝기도 했을 테고요. 하지만 그는 곧 "살아있기만 하면 다 잊어버려도 괜찮아!"(29쪽)라고 생각합니다.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어머니의 이야기를 기록해 갑니다. 농가에서 태어나 나가사키에 시집온 그녀는 '나가사키 원폭'을 겪고 남편의 술버릇에 시달리며 두 아들을 어렵게 키워냈다고 해요. 이제 그녀는 그 시절에, 그보다 더 먼 시절에 머물 때가 많습니다. 오카노 유이치는 그런 어머니를 억지로 현실로 불러들이기보다는 옛날로 돌아가는 길을 함께 걸어갑니다. 그리운 유년을, 어머니의 추억을, 아버지의 또 다른 모습을 마주하게 하는 이 시간 여행은 자기 자신을 위로합니다. 지나갔대도 잊었대도 죽었대도 마음속에 살아 있는 것들이 비로소 느껴지는 것이죠. "그저 '조금씩 건망증이 심해지는 어머니'와의 일상을 우습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담담히 그려냈을 뿐"(208쪽)이었다는 이 만화는 또한 그가 다가올 어머니와의 이별에도 담담할 수 있는 연습이 되었으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가족의 시간 속에"(207쪽) 있는 우리에게도요.

 

근처의 작은 횡단보도 앞에 도착하면 어머니는 건너편을 가리키며 "네 아버지, 저기 서있어." 하고 중얼거리시는데 물론 내 눈에는 보이지 않는다. 아버지는 벌써 십여 년 전에 돌아가시고 이 세상에 없는데. (…) 건너편으로 가버렸어도 한 사람 한 사람, 이쪽에서 기다려주는 사람이 있고 이렇게 서로 접하며 말을 나눌 수 있는 한, 정말로 돌아가신 건 아니라는 생각이 들곤 한다. (153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2 3 4 5 6 7 8 9 ··· 9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