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눈사람 여관》 - 혼자, 있다

 

 

이병률 | 《눈사람 여관》 | 문학과지성사 | 2013

 

불편(不便)을 끼친 지만 오래되었지 불편(不偏)에 닿아본 찰나가 없다. 타인과의 사이에서 내가 늘 그랬다. 편(偏)하기만 해서 편(便)하지를 못했다. 철저히 나를 기준으로 한 호(好)의 목록이 두텁다. 불호는 좀처럼 용납되지 않는다. 이해의 노력은 고사하고 인정의 씀씀이 또한 야박하다. 그렇다고 무심하거나 무관한 것도 아니다. 때마다 불호의 멱살을 쥐고 박대를 한다. 한 번씩 무섭게 화에 사로잡히고 나면 마음자리에는 남은 화기가 사그라지지 않는다. 쓰리고 얼얼한 채로 줄곧이다. 그러니 편(便)할 날이 없다. 그 날에 마음들은 불볕 쏟아지는 한여름이나 얼음 꽝꽝 어는 한겨울만 산다. 그리하여 삶은 너무 뜨겁거나 너무 차가운 것이 되었는데, 그게 항상 문제였고 그게 또 여지없이 누군가를 불편(不便)하게 해온 것이다. 

 

그러니까 지금, 아무도 궁금해 하지 않을 내 미성숙의 소치를 고백하는 데는 《눈사람 여관》이 기여한 바 있다. 그 안에서 시인 이병률은 ‘잠시, 머무름’으로 ‘혼자, 있음’으로, 오히려 “세상의 나머지”와 더 가까워지고 있었는데, 이것이 벌써 언젠가부터 한겨울인 듯 마음을 내처 닫아걸고 두터운 호(好)의 외투를 껴입은 채 홀로를 자처하고도 실은 성이 나 어쩔 줄 모르고 있는 나를 가만 건드리고 지나갔기 때문이다. 그렇게 부딪힘에 놀라 되돌아본 저만치로, 어디에도 의존하지 않고 슬픔의 힘으로 스스로에게 몰두하는 그가, 어느 쪽으로도 치우지지 않고 자기를 가늠하는 것으로 자신과 타인을 발견하는 그가 눈앞에 잠시 머물다 사라지는 걸 보았기 때문이다.

 

   눈사람 여관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그러면 날마다 아침이에요

 

   밥은 더러운 것인가
   맛있는 것인가 생각이 흔들릴 때마다
   숙박을 가요

 

   내게 파고든 수북한 말 하나
   이제는 조금 알 것 같아서

 

   모든 계약들을 들여놓고
   여관에서 만나요

 

   탑을 돌고 싶을 때도 그만두고
   아무것도 하고 싶지 않을 때도

 

   내가 껴안지 않으면 당신은 사라지지요
   길 건너편 숲조차도 사라지지요

 

   등 맞대고 그물을 당기면서
   다정한 이야기를 나누지 않는다면
   그게 어디 여관이겠어요

 

   내 당신이 그런 것처럼
   모든 세상의 애인은 눈사람

 

   여관 앞에서
   목격이라는 말이 서운하게 느껴지는 건 그런 거지요

 

   눈사람을 데리고 여관에 가요
   거짓을 생략하고
   이별의 실패를 보러

 

   나흘리면 되겠네요
   영원을 압축하기에는
   저 연한 달이 독신을 그만두기에는 (100-101쪽, ‘눈사람 여관’ 전문)

 

그런 사정으로 나는, 우뚝 멈춰선 자리에 붙박여서는 같은 말을 쓰면서 다른 의미를 살고 있는 그를 내내 잊지 못한다. 그리하여 나 또한 “지도 위에 손가락을 올려 묻고도 싶은 겁니다/ 우리가 아프게 통과하고 있는 지금은 어디입니까/ 우리의 막다른 증거는 쟁쟁합니까” (52쪽, ‘전부’ 중에서) 물으며 ‘처음의 처음’으로 돌아가 오롯이 혼자, 된다는 것의 의미를 다시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게 된 것이다. 

 

   혼자

 

   나는 여럿이 아니라 하나
   나무 이파리처럼 한 몸에 돋은 수백 추천이 아니라 하나
   파도처럼 하루에도 몇백 년을 출렁이는
   울컥임이 아니라 단 하나
   하나여서 뭐가 많이 잡힐 것도 같은 한밤중에
   그 많은 하나여서
   여전히 한 몸 가누지 못하는 하나

 

   한 그릇보다 많은 밥그릇을 비우고 싶어 하고
   한 사람보다 많은 사람에 관련하고 싶은
   하나가 하나를 짊어진 하나

 

   얼얼하게 버려진, 깊은 밤엔
   누구나 완전히 하나
   가볍고 여리어
   할 말로 몸을 이루는 하나
   오래 혼자일 것이므로
   비로소 영원히 스며드는 하나

 

   스스로를 닫아걸고 스스로를 마시는
   그리하여 만년설 덮인 산맥으로 융기하여
   이내 녹아내리는 하나 (10-11쪽, '혼자' 전문)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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