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자기 박물관》 - 우리는 꿈속을 걷듯

 

 

윤대녕 | 《도자기 박물관》 | 문학동네 | 2013

 

당장 오늘이라도 만날 수 있는 사람, 지금은 내 곁에 없는 사람. 사람들을 이쪽저쪽에 두고 보니 당초 생각과는 다르게 살아온 듯하다. 몇 년 전만 해도 나는 이 사람과 마주앉아 밥 한 끼를 나눌 줄 몰랐고, 그 사람과 연락이 끊긴 채로도 담담하게 지낼 줄 몰랐으니. 처음 겪는 경우가 아님에도 매번 놀라고 만다. 꿈에서 깬 듯하다. 사람을 사귀면서 으레 가지는 꿈이란 지속에 관한 것이다. 너와 나, 우리가 계속 만날 수 있을까. 두 사람은 확언한다. 물론이지. 나는 너에게 있을 거야. 우리는 언제라도 '우리'일 거야. 그러나 시간이 지나면 이렇듯 자연히 알게 된다. '우리'이기에는 너무 멀리 떨어져 있다는 것을, 돌이킬 수 없다는 것을. 그런데도 또 다른 사람을 향해 가지는 꿈은 이전과 너무도 유사하다. 관계라는 것이 이런 식으로 반복된다면 사는 내내 꿈속이 아닐는지. 하다못해 사람 아닌 가마에 대고 웅얼거리는 '그'처럼.

 

   "흙이 그릇으로 변하자니 그 얼마나 뜨겁겠소. 이 나이 먹도록 나는 자네들처럼 쓸모 있게 한번 변해보질 못했소. 누구 집 장독대에 앉아 숨이 다할 때까지 눈 맞고 비 맞으며 고추장, 간장독이 된들 어떻겠소. 나는 제 앉을 자리 하나 찾지 못하고 여태 이러고 살아왔다오." (115쪽, <도자기 박물관>)

 

'그'는 예순 되도록 돌아갈 집이 없는 사내다. 스스로 집이 되겠다던 여자도 있었으나 그곳에 붙박이기보단 도자기에 홀려 유랑하기 바빴다. 유랑하는 '그'의 눈에 도자기가 들었다는 편이 더 맞을지도 모른다. 여자를 먼저 보내고, 끝내 어디에도 존재하지 못한 생을 되비추어 보는 것이다. 이와 닮은 행보를 보이는 일군의 사람들은 <도자기 박물관> 외의 소설에도 나타난다. "기억에 남는 순간들을 돌아보는 버릇"(282쪽, <통영-홍콩 간>)이 생긴 '백'이나 의료검진센터에서 내시경 검사를 받다가 문득 "기쁨과 슬픔, 기다림과 설렘, 오해와 질투, 절망과 희망 사이에서 방황하던 기적 같은 순간들을 반추하며 이제는 자신에게서 이 모든 기억들이 사라져버리고 군살 같은 고통의 찌꺼기만 남았다는 사실"(184쪽, <검역>)을 알아차리는 '나' 에게 '우리'라는 관계는 꿈에 불과했다. 이대로 생의 끝까지 걷자니 더 가서 무엇 할 것이냐는 허무까지 밀려든다. 하지만 윤대녕의 전언이 아직 남아 있으니.

 

   "이제 꿈에서 깨어나셨소?"
   "그런 것 같소만, 낭패스럽게 여직도 분명치 않소."
   "지금도 몸과 마음이 춥고 아프오?"
   "괜찮소이다. 몸이고 마음이고 이제 한껏 놓여난 듯하외다."
   "그거 듣던 중 반가운 소리오. 그동안 살아오면서 내내 뜨거운 꿈을 꾸셨으니, 그걸로 그만 됐다 생각하시오."
   "그게 무슨 말이오?"
   "꿈이라도 꾸지 않았으면, 이때껏 연명하며 여기까지 올 수 있었겠소?"
   "……"
   "어떻게 살아왔든 누구한테나 삶은 결국 꿈같은 것이 아니었겠소?"
   "…… 그럴듯하군. 하지만 사나운 꿈도 있었지."
   "아직도 가슴에 한恨이 남은 모양이구려. 그렇다면 여기 불 속에 남은 눈물이나 마저 흘리고 돌아가시구려." (121쪽, <도자기 박물관>)

 

회한이 남을지언정 길을 걷지 않은 적은 없었다. 말하자면 꿈속이라서 여기 홀로 나뿐이라도 누군가를 향하여 갈 수 있었던 것이 아닐까. 이뤄진 꿈이 아니라 꿈꾸는 자로 존재한 셈이다. 참 많은 사람을 만나고 헤어졌다. "그들은 비록 여럿이었으나 결국 단 한 사람이었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316쪽, <작가의 말>)라고 윤대녕은 쓰고 있다. "한 사람"으로서 한데 우는 너와 나를 그려 본다. 더 이상 '우리'가 아닐 텐데도 우리에게 충분한 위안이 될 것만 같다. 그리고 다시 걸어볼 수도 있겠지.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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