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읽니?] 박완서, 《그리움을 위하여》

 

 

박완서 | 《그리움을 위하여》 | 문학동네 | 2013

 

어떻게 나이 들고 있는 걸까. 뭉텅, 하고 한꺼번에 인생의 시간이 떨어져나간 듯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마다 지금 이대로 정말 괜찮은 건지를 따져 묻는 불안한 스스로와 마주하곤 하고요. 허투루 흐르는 세월 없다고도 하고, 그러면 흘려보낸 세월만큼 무언가는 분명 남겨져 있어야 할 텐데요. 어쩐지 그 말이 저에게만큼은 해당되지 않는 것 같은 거죠. 그도 그럴 게, 작게는 어제와 오늘 사이, 크게는 작년과 올해 사이에 변화라고 부를 만한 것이 과연 있었나 싶거든요. 눈에 띄게 늘어난 나잇살 빼고, 아무리 머릿속을 헤집어 봐도 헛일이기가 다반사고요. 

 

그래, 지난 시간들을 빠짐없이 건너오며 나는 내 삶의 무엇을 더하고 덜하였나, 그리하여 오늘에 남은 것은 무엇이고 나는 어떤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나, 소득 없는 질문만 메아리처럼 반복하기 일쑤입니다. 그마저도 지치고 짜증스러워지면 당장에 마음 편해질 구석 찾아 소망으로 완성된 먼 훗날의 나로 냅다 도망쳐버리고요. 그렇게 먼 훗날의 나를 두고, 된 사람이라 부를 만한 이모저모의 덕목을 갖다 붙여놓습니다. 존경할 만한 어른의 형상을 만드는 거죠. 그런데 오늘, 이《그리움을 위하여》를 읽다가 그 어른이 박완서 선생님과 같으면 하고 생각했습니다. 단편소설에서 감지된 사람과 삶과 세상에 대한 시선이 갖가지 인생을 두루 품는 큰 사람, 어른다운 어른의 모습으로 이어졌거든요. 

 

“선생의 손바닥 위에 올라가면 모든 게 다 문학이 되었다. 그 손으로 선생은 지난 사십 년 간 역사와 풍속과 이간을 장악해왔다. 그 책들을 읽으며 우리는 살아온 날들을 부끄러워했고 살아갈 날들 앞에 겸허해졌다. 선생이 남긴 수십 권의 책들은 앞으로도 한국사회의 공유 자산으로 남아 우리들 마음공부의 교본이 될 것이다.” _신형철(문학평론가)

 

물론 뭐, 해가 가고 나이 들수록 온통 싫은 것만 많아지는 통에 성 내는 일도 어울리지 못하는 사람도 늘고 있는 저로선 언감생심 오르지 못할 나무라는 판단이 앞서긴 합니다만. 그래도 그곳에 지향을 두고 살고 또 살다보면 지금보다는 쬐끔, 더 나은 사람이 돼있지 않을까 싶습니다. 다른 한편, 지금의 저와 먼 훗날의 제가 선생님의 저 소설들 안으로 슬며시 들어가 앉아, 그래, 이 또한 삶이고 그런대로 괜찮은 거다, 조용히 위로받고 싶은 마음도 있고요. 

 

그립다는 느낌은 축복이다. 그동안 아무것도 그리워하지 않았다. 그릴 것 없이 살았음으로 내 마음이 얼마나 메말랐는지도 느끼지 못했다. (44쪽, 〈그리움을 위하여〉중에서)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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