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년은 어디로 가는가? - <국경을 넘어>

 

소년은 어디로 가는가? - <국경을 넘어>

 
어디에서나 하느님을 본다는 것은 어디에서도 하느님을 못 본다는 것과 같은 말이야. 우리는 매일매일을 살아가지. 하루가 지나면 내일이 오고. 그러다 어느 날 느닷없이 우리는 어떤 사람을 만나지. 여느 사람과 다를 바 없던 사람, 이미 알고 있던 사람을. 하지만 그는 제단에 전 재산을 쌓는 것처럼 어떤 행동을 하고, 이 행동으로 인해 우리는 우리 가슴에 묻혀 있던 것을, 결코 완전히 잃어버리지도 않았고 잃어버릴 수도 없는 그 무엇을 보게 되지. 그것이 그 순간이야. 바로 그 순간 말이야. 우리가 오래도록 기다렸으나 두려워했으며, 우리를 유일하게 구원해 줄 수 있는 그 순간. (p.202)

위 문장은 코맥 매카시의 국경 3부작 중 두 번째, <국경을 넘어>에서 내가 뽑은 가장 희망적인 구절이다. 어느 날 현대 미국문학의 대가라 불리며 포크너, 멜빌, 헤밍웨이와 비견되는 낯선 이름이 혜성처럼 등장한 코맥 매카시. 1933년생 매카시의 긴 문학인생 중 최신작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와 <로드>의 세계적 인기는 이제껏 주목 받지 못했던 그의 과거작들이 속속들이 모습을 드러내게 했다.

두 작품 모두 힘들게 본 기억이 있는 나는 새로운 작품을 만난다는 기대에 부푼 한편 걱정도 많았다. 인간의 부질없는 욕망과 신의 구원을 무겁고 담대하게 그려낸 카리스마에는 박수를 보내지만, 특유의 건조한 문체와 삶에 대한 희망 없음, 구원을 찾아 떠나는 밑도 끝도 없는 발걸음이 그 못지않게 지루하고 불편했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지난번 작품보다 세 배는 되어 보이는 두께가 문제였다.

<노인을 위한 나라는 없다>가 황량한 사막에서 사소한 욕망 때문에 쫓고 쫓기는 인간 대 인간의 밑바닥 삶을 드러냈다면, <로드>에서는 아버지와 아들을 내세워 인간이 인간에게 있어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웠다. 생생한 고통과 구원의 묘사가 아름답고 간결한 문장으로 전달되는 것이 영 달갑지만은 않은 것도 어쩌면 인간의 이중성과 도달불능성, 한계와 잠재성의 실체를 확인하는 일이 두려웠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매카시는 희망을 보여줄 터였다. 그의 문장 하나하나는 영혼을 관통하는 것 마냥 절실하게 들릴 것이고 읽지 않으면 곧 후회하게 될 것이다. 

열여섯 소년 빌리, 늑대와 함께 국경을 넘다

<국경을 넘어>는 열여섯 소년 빌리의 모험담이자 성장문학이다. 카우보이 빌리는 또래답지 않은 고집과 순수로 가득 차 있다. 인근 목장에서 일어나는 송아지의 죽음이 늑대 짓임을 안 아버지는 늑대를 사로잡아 송아지의 희생을 막고 금전적 이득을 남기려 한다. 아버지의 뜻에 따라 혼자 늑대를 잡으러 산으로 간 빌리는 두려움과 용기 사이에서 고군분투하다 마침내 늑대 사로잡기에 성공한다.

처음에는 강하게 저항하던 늑대가 점차 온순해지자 가만히 늑대의 눈동자와 교감하는 빌리는 문득 늑대가 가엾다는 생각을 한다. 그래서 늑대를 원래 있던 곳으로 돌려 보내주기로 마음먹는다. 멕시코 땅으로 가서 풀어주기로 한 것이다. 이때부터 늑대와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온갖 수난과 역경을 감수하는 빌리의 여정이 시작된다. 과연 빌리의 국경 넘기를 성공할 것인가?

늑대는 때로 반항하며 때로 순응하며 빌리를 따른다. 만나는 사람마다 늑대를 어떻게 할 거냐고 묻지만 늑대에 대한 사람들의 탐욕을 잘 알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대답을 회피한다. 그러던 중 어떤 남자들은 빌리에게 먹을 것과 잠잘 곳을 준다며 유인하고는 늑대를 강제로 투견장에 투입시킨다. 늑대는 거의 60마리의 사냥개들과 2대1로 두 시간 가까이 싸워야 했다. 오로지 죽지 않기 위해 버틴 시간이었다. 빌리는 늑대를 지켜주지 못한 데 죄책감을 느낀다. 결국 늑대의 고통을 막는 일이 늑대를 위해 마지막으로 해줄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고 자신의 소총을 꺼내 늑대의 숨통을 끊는다. 늑대의 사체를 늑대의 땅에 묻어주고 다시 집으로 돌아온다.

성장하는 소년, 막막한 미래 그리고 빛 한 줄기

집으로 돌아오자 부모님은 목장을 습격한 강도들에게 살해당하고 동생 보이드만 살아남았다. 말을 훔쳐 달아난 강도들을 찾기 위해 형제는 다시 길을 떠난다. 가는 도중 아버지가 아끼던 몇 마리 말을 되찾기도 하지만 쉽게 원래의 자리로 되돌아오지 못한다. 두 형제를 속이고 말과 총을 욕심내는 사람들 때문이다. 빌리가 유일하게 의지하고 믿는 똑똑한 동생 보이드는 낯선 사람에게 총을 맞아 목숨이 위태로워진다. 보이드는 형이 혼자서라도 가던 길을 계속 가기를 바란다. 보이드를 두고 떠나는 빌리는 강도를 찾지 못한 채 스무 살이 되어서야 비로소 동생을 찾아가지만 보이드는 이미 죽은 뒤다. 동생의 유골을 찾아오던 중 강도로 인해 함께 다니던 말의 목숨까지 위협받는다. 말을 살리기 위해 최선을 다하던 빌리는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채 머물 이유 없이 가던 길을 계속 간다.

빌리의 여정에는 목표가 없다. 가야 할 곳도, 반겨줄 사람도 없다. 그저 여기서 저기로 갈 뿐이다. 이동 중 만난 많은 사람과 그들의 이야기는 빌리의 소중한 자산이 될 것이다. 매카시는 전작과 마찬가지로 빌리의 확실한 미래를 보여주지 않은 채 끝맺는다. 하지만 늑대와 소통하고 자연과 교감하던 빌리의 과거를 통해 미래가 어둡지만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희망으로 받아들인다.

매카시의 소설은 아름답다. 여운과 감흥이 뒤따르는 건조한 문체는 매력적인 유혹이기도 하다. 그래서 또다시 읽게 된다. 매카시는 군데군데 희망을 심어두었지만 행과 행, 문장과 문장, 구절과 구절 사이를 흘려 읽는 사람에게는 발견되지 않는 것이다. 희망이란 한 줄도 놓치지 않고 읽는 사람에게만 허락된다. 매카시의 소설 앞에서는 할 줄 모르는 기도를 하고 싶어진다. 마음속에 있는 오기와 욕망을 내려놓아도 괜찮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책을 들 자신이 없다면 매카시의 소설을 원작으로 한 영화라도 반드시 보기를 권한다. 자연과 인간의 평형을 그리는 위대한 매카시는 이제 선택이 아니라 필수인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감성소녀’님은?
아직 20대인 것이 희망. 자칭 예술애호가. 어느 날 문득 알게 되었다. 몰입과 지속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단 것을. 규격적 인간을 선호하는 세상을 거스르며 살고 싶어 책읽기를 선택했다. 로마 스페인광장에서 하루 종일 사람구경하며 책 읽는 삶을 꿈꾸지만 여의치 않은 현실에 로마로 떠나는 사람들의 여권에 도장 찍어주는 일을 하기로 마음먹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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