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 - 잘못의 회귀

 

 

크리스 해지스·조 사코 | 《파멸의 시대 저항의 시대》 | 씨앗을 뿌리는 사람 | 2013

 

150년 전 미국에는, 인간과 자연의 긴밀한 관계를 바탕으로 서로 존중하며, 부의 재분배를 통해 존경을 얻고 공적에 의해 지위가 결정되며,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없는 가운데 공동체를 중심으로 삶을 영위하는 사회가 있었다. 반면에 오로지 재화와 권력, 사회적 지위, 부의 축적에만 삶의 의미를 두며, 효율적이나 비인격적인 관료제가 존재하고, 착취와 이윤에만 몰두하며, 쇄신을 위해서는 폭력을 사용해도 좋다는 왜곡된 사고에 갇힌 사회가 있었다.  (22쪽)

 

150년이 지난 오늘, 미국에는 단 하나의 사회만이 남겨졌다. 당연히 나머지 사회와 그 가치는 몰살당한지 오래다. 끝 간 데 없이 ‘더 많은’ 이윤만을 추구해온 국가, 인간과 자연을 새까맣게 잊고 폭력으로 써온 자본주의의 유일한 역사가 바로 이것이다. 크리스 헤지스와 존 사코는 그 역사의 현장으로 독자를 데려간다. 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목 하에 규제 없이 날뛰어온 기업과 시장 경제가 현재와 같은 소수에게만 집중된 부의 세계를 낳기 위해 어떻게 지역과 노동자, 생태계 등을 악랄하게 쓰고 버렸는지, 억지로 지워지고 배제된 과거의 목소리를 되살려낸다. 그리하여 깨지고 부서지고 망가진 현재로 착취와 파괴의 실상을 증명하고 희생과 고통의 실제를 증언한다.

 

무자비한 이윤 추구로 인간과 자연이 일회성 소모품 취급을 당하는 세상이 되고 있다. 신성하게 여기고 아껴야 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도시 환경은 엉망이 되었다. 저 웅장한 애팔래치아 산맥을 보라. 오염된 물, 토양, 대기로 인해 흡사 달 표면처럼 변했다. 이뿐인가? 임금은 끝없이 하락하는 반면 부채는 나날이 늘어나는 탓에 노동자들은 악순환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농업 노동자나 저임금 노동자는 노예나 다름없는 작업 환경에서 일한다. 노동자계급을 가난의 구렁텅이로, 중산층을 고통의 늪으로 처박은 것이다. 반대로 국민이나 국가에 대한 충성심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없는 극소수의 글로벌 엘리트는 날로 부유해졌다. (4-5쪽)

 

미국은 잘못했다. 국가의 권력과 결탁한 자본주의가 도둑질, 포위, 파괴, 노예의 시대를 만들며 나락으로 떨어뜨린 대중들의 삶이 그렇다. 그 과정에서 삶의 터전은 물론 삶의 의욕마저 잃고 자기파괴를 일삼는 인디언들을, 노예처럼 부려지다 슬럼가에 버려진 흑인들을, 아메리칸 드림 대신 노동 착취를 현실로 받아든 유색인종들을, 그들의 인간다움을 아무 죄책감 없이 파괴하고 그것을 동력으로 빛 좋은 성장을 지속해온 게 잘못이다. 늘어난 부와 권력을 무기로 미국이라는 국가의 경계를 넘어 세계를 자기 무대인 양 누벼온 것 역시 잘못이다. “자본주의적 팽창과 부도덕한 소비, 제국주의적 정복 활동 등 그동안 미친 듯이 진행된 제정신이 아닌 프로젝트”가 미국의 “내부를 무너뜨리기 시작” (22쪽)했음은 물론이고 그것이 잘못의 필연적인 결과임을 간과한 게 또한 잘못이다. 

 

이 잘못들은 보지 않고 그가 앞선 저 길을 뒤에서 마냥 따라 걷고 있는 우리가 잘못이다.

 

“기억하지 않는 사람이 악인 중에서도 정말 나쁜 악인이다. 그런 사람은 어떤 사건이 일어났는지 곰곰이 생각하지 않는다. 기억하지 않았기에 동일한 사건이 또 다시 일어나는 것을 막을 수 없다. 과거 사건을 되새기는 것은 그 심층 차원으로 들어가 뿌리를 샅샅이 파헤쳐 앞으로 흔들리지 않게 확실히 정리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야 향후 어떤 사건이 시대정신의 발로로 일어나건, 역사의 필연에서 발생하건, 아니면 단순히 충동에서 빚어지건 그것에 부화뇌동하지 않게 된다.” (한나 아렌트, 328쪽 재인용)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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