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의 피크닉》 - 오늘을 걸어간다는 것

 

 

온다 리쿠 | 《밤의 피크닉》 | 북폴리오 | 2005

 

내일, 그보다 먼 미래의 일을 꿈꾸었다. 인생의 행로를 내가 바라는대로 잡아갈 수 있으리라는 순진한 믿음을 가지기도 했다. 어제의 일도 잔뜩 엉킨 채로 놔뒀으면서 말이다. 물론 당시에는 실감하지 못했다. 내일을 향해 가는 양 굴지만 다만 오늘을 걷고 있을 뿐이라는 것을. 주어진 것은 하루분의 걸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그런 오늘이 거듭되고 나이 들어 순진한 믿음마저 바닥나자 이제는 길 위에서 냉소적인 표정을 짓는 게 전부다. 될대로 되라지. 하루 걸어 뭐 달라진다고. 지금까지 해 와서 잘 알잖아. 인생이 네 맘대로 안 된다는 거. 이런 마음으로 방어하며 그저 그런 오늘들을 견뎌왔다. 헌데 돌이켜보면 나는 미래입네 인생입네 뜬구름 잡다가 제풀에 가라앉기 바빴다. 한 걸음으로 인해 당장 오늘이 어떻게 되어 가는지 알아차린 적이 있었던가. ‘다카코’의 오늘을 지켜보며 든 의문이다.

 

   드디어 온 건가, 이 날이.
   다카코는 언덕을 내려가면서 생각했다.
   고등학교의 마지막 행사.
   그녀는 눈부신 듯이 하늘을 올려다본다.
   그리고 내 작은 비밀의 내기를 실행하는 날.
   비탈진 철길 아래를 덜컹덜컹 화물열차가 달려간다.
   이미 달리기 시작했으니 뒤로 물러설 수는 없다.
   다카코는 멀어지는 화물열차를 곁눈으로 지켜보았다. (15쪽)

 

‘다카코’가 말하는 “고등학교의 마지막 행사”란 보행제다. 북고 전교생이 아침 여덞 시부터 다음날 여덟 시까지 팔십 킬로미터를 걷는 일종의 축제로, 3학년인 ‘다카코’에게는 마지막 보행제다. 《밤의 피크닉》은 이 보행제가 계속되는 이틀 동안의 이야기다. 또한 마지막이기 때문에 더욱 오늘을 디데이로 정한 ‘다카코’의 이야기. 그녀는 자신과의 “비밀의 내기”를 행할 결심으로 걸어간다. 오늘을 어찌 해보기란 마음처럼 되지 않는다. “내기고 뭐고 집어치워. 그런 내기, 어리석어.”(133쪽)라며 스스로를 몰아붙이는 순간도 온다. 그러나 ‘다카코’는 해낸다. 특별한 관계에 있는 한 친구와 “평범하게 이야기를 나누고 (…) 서로 웃을 수 있”(168쪽)는 오늘을 그려왔던 바람이 하루를 내내 걸어온 끝에 이뤄진다.

 

   그것이 결코 감미로운 것만이 아니라는 것을 두 사람은 예감하고 있다.
   이 관계를 짜증스럽게 생각하고, 밉게 생각하고, 안타깝게 생각하고, 상관하고 싶지 않다고 생각하는 순간이 오리라는 것을 두 사람은 알고 있다. 그래도 또 서로의 존재에 상처받고, 동시에 위로받으면서 살아가게 되리라는 것도.
   두 사람은 말없이 걷고 있다.
   같은 눈, 같은 표정으로.
   그들은 이제 돌아갈 수 없는 곳을 향해 걷고 있다. (350쪽)

 

끝났대도, 저마다 자신만의 보행제를 시작해야 할 것이다. 그날의 일을 뒤로 하고 또 다른 오늘을 걸어야 한다. 내일이며 미래를 떠들어 봐야 결국 올라와 있는 길은 매번 오늘이다. 내가 미래에 당도하는 여행 같은 것이라고 믿었던 인생은 사실 계속 오늘을 걸어가는 행위에 가깝지 않을까. ‘다카코’가 걸어가듯이, 누구나가 지금껏 걸어왔듯이. 자연히 내 인생을 되감아보게 되는 소설이다. 어느 날의 한 걸음이 인생의 행로가 바뀌어가는 순간인 줄 알았더라면 자신의 오늘에 조금 더 충실했을까, 하고 오늘의 나는 생각해 보는 것이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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