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을 걸어, 세계의 속살을 끌어안다 - <소년의 철학>

 

장현정, <소년의 철학>, 호밀밭, 2009

 

“철학을 사랑하는 우리, 결코 고독해도 고독하지 말기.”

누굴까. 고독해도 고독하지 말자는, 모순된 말을 하는 사람이. 고독이라는 것은 인간의 의지대로 움직이는 게 아니라, 웃고 있어도 문득 찾아오는 날카로운 감정 아니던가. 먼저 이 말을 한 사람이 궁금하다. 장현정. 1997년 시집 <바람 사이로 보다>를 낸 시인이자 1998년 록밴드 ‘앤(Ann)’ 1집을 발표한 뮤지션으로, 2004년에는 산문집 <노골적이며 발칙한, 게다가 즐거운 사전>을 발표했다. ‘바람’ ‘발칙함’ ‘즐거움’, 모두 좋아하는 말들이니 일단 오케이. 그렇다면 그가 말하는 ‘우리’는 누구일까.

‘우리’는 ‘소년들’이다. 소년? 아침 일찍 등교해 하루 종일 수업 듣고, 것도 모자라 밤늦게까지 학원에서 시간에 쫓기는 소년들이 철학을 사랑할 리 만무하다. 장현정이 말하는 ‘소년들’은 “희망 없는 시대일수록 기어코 반항하며 희망을 외치는 자들”이다. 소년들의 무기는 철학이다. 저자가 ‘하고 있는’ 철학은 절대 ‘이로움을 따지는 행위’가 아니다. 철학은 “모두 더불어 살아가는 이들 공통의 영혼이 될 꿈과 이상과 아름다움을 지향하는 것”으로, “모두가 한 입으로 경제와 효율성만을 외치는 이 시대”를 관통할 수 있는 예리한 검이다.

슬픈 현실은 “소년들의 운명이 ‘백전백패’라는 것”이다. 10대 소년들은 이미 ‘상아탑’이란 이름의 아우라를 상실한 대학에 들어가기 위해 시간을 헌납하고, 20대 소년들은 먹고 살기 위해, ‘비정규직’이란 딱지를 붙이지 않기 위해 청춘의 욕망을 억누른다. 혹자는 소년들을 욕한다. ‘돈밖에 모르는 것들’이라고. 더욱 슬픈 일이다. 등록금 천만 원 시대에, 부모들은 맥없이 일자리를 잃어가고 있는 시대에 대체 어쩌란 말이냐. 저자는 먼저 슬픈 소년들을 위로한다.

우리는 태어나면서 이미 우리 자체로 아름답다. 시대와 공간에 따라 아무리 아름다움의 기준이 달라진다고 하더라도 이것은 변함없는 사실이다. 우리는 각자 한 편의 시이며, 각자 하나의 음악이다.(p. 53)

아, 이 얼마나 감동적인 칭송인가. ‘착하다’ ‘성실하다’는 칭찬은 받아본 적 있지만, 이 작은 몸뚱이가 시이며, 음악이란 칭송은 받아본 적 없다. 시와 음악을 멈추지 않기 위해서는 끊임없는 ‘운동’이 필요하다. 저자는 ‘아는 것’을 넘어 직접 ‘걸을 것’을 요청한다. “일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은 논리적 질서나 배치를 조롱하듯 우연한 순간에 몸을 울리는 방식으로 다가온다. 손과 발에 굳은살이 생기는 사이 몸은 경험과 습관을 구성하는데 이것들이 인간으로 하여금 무언가를 보고 나아가게 느끼게 한다.”(p. 216)

일상의 경이로움과 아름다움은 우연의 순간에 오기 때문에 낯선 길을 가는 것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다. 저자는 한 걸음 더 나아가, ‘낯설지 않으면 길이 아니고, 낯선 길에서면 경이로움이 찾아오며, 자유는 낯선 곳에서만 숨을 쉰다’고 말한다. 인간은 어항 속에서 먹이를 주기를, 물을 갈아주기를 기다리는 금붕어가 아니다. 언젠가 생각했던 ‘틈’에 대한 생각이 떠오른다. 당시 가지런히 정렬돼 있는 책장에 틈이 있는 것을 보고, 누군가에게 <러브 어페어> DVD를 선물했음을 새삼 깨달았다. 선물을 전하던 순간의 간절함이 다시금 찾아왔다. 너무나도 잘 정돈된 커튼 사이로는 빛이 들어오지 않는다.

소년들은 어디로 가는가

당연한 말이지만, 길은 그 자체로 이미 목적이다. 어딘가에 닿기 위해 도구로서의 길은 ‘죽은 길’. 그러니 살아 숨 쉬는 길 위에 목적지가 있을 리 없다.
세상에는 지금 이 순간 내가 걷고 있는 ‘하나의 길 a way’이 존재할 뿐이다. 누구나 가야 하는 ‘유일한 길 the way’는 없다. 정해진 길은 없기에 길은 어디로 가든 길이다. 그러니 ‘길눈 어둡다’는 말은 쓸 일이 없고, 오히려 잘 못 든 길이야말로 길이다.
(p. 210)

<소년의 철학>은 목적지를 알려주지 않는다. 오히려 목적지는 없으며, 길을 걷는 순간순간이 삶 자체라고 한다. 주저앉아 길을 찾기보다, 걸으면서 수많은 살아있는 것들과 한바탕 놀이를 벌이야만 ‘우주와의 섹스’를 할 수 있다. 우주와의 섹스는 자신을 포장하고 있는 겉옷을 벗어 던지고, 세계와 타인, 그 밖의 모든 것들과 내밀한 속살을 맞대고 한데 뒤엉키는 열린 철학이다. 저자는 분석과 웅변으로, 때로는 시와 내밀한 고백으로 소년들이 일어설 것을 충동한다.

이 책을 읽는 동안 머릿속에는 ‘결’이란 말이 떠나지 않았다. 목적지에 도달한 순간에도 여전히 빛을 발하고 있을 순간의 기억들, 그 자체로 생명력을 갖고 있어 쉼 없이 꿈틀거리고 아름다운 파장을 만드는 호흡으로서의 결. 생각이 여기까지 미치자, 어렴풋이나마 ‘시간의 질감’이 느껴진다. 각설하고, 처음으로 돌아가 본다. 왜 고독해도 고독하지 말아야 할까.

절망 속에서 절망을 얘기하는 건 쉬운 일이다.
그러나 그런 건 하나마나 한 소리고, 동어반복.
진정한 철학자는 절망 속에서 희망을 말한다.
기쁨에 들떠 행복을 말하는 자 역시 바보다.
진정한 철학자는 기쁨 속에서도 어떤 서늘한 예감을 잃지 않는다.
(…)
인간은 새가 아니기에 결국 주저앉을 수밖에 없더라도
기어코 새를 외면하지 않고 바라보고 생각하고 동경할 수는 있다.
그리하여 마침내 같아질 순 없어도 닮아갈 수는 있는 자다.

그러니 철학자는,
고독을 피하는 것이 불가능한 일임을 누구보다 잘 알면서도
마지막까지 고독을 피하려는 자다.

철학을 사랑하는 우리, 결코 고독해도 고독하지 말기.
(p. 83~ 85)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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