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명불허전(名不虛傳)’의 체험이 시작됐다! - 《허허 동의보감》 출간기념 간담회

 

 

취재·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이미지 제공 | 도서출판 시루

 

명불허전(名不虛傳: 名 이름 명, 不 아닐 불, 虛 빌 허, 傳 전할 전) 이름은 헛되이 전(傳)해지는 법이 아니라는 뜻으로, 명성(名聲)이나 명예(名譽)가 널리 알려진 데는 다 그럴 만한 이유(理由)가 있음을 이르는 말

 

여기, 우리에게 전해진 두 개의 이름, ‘허준’과 ‘동의보감’이 있습니다. 허준 선생이야 부나 명예에 연연하지 않고 병자를 치유하는 데 성심과 성의를 다했던 강직한 의원이라, 모 연예인이 주인공으로 분한 드라마를 통해 익히 접한 바 있고, 동의보감은…… 글쎄요. 드라마는 허준 선생의 일대기와 활약상만을 보여줄 뿐, 그가 만든 ‘동의보감’의 내용까지는 세세히 다루어주지 않았으니까요. 

 

 

그러니까 우리는 ‘동의보감’이라는 이름만 알고 있지, 그것이 지금과 같이 널리 알려진 데 어떠한 이유가 있는지를 알지 못합니다. 누군가는 ‘허준’ 선생이 자신의 의술을 집약해 “의사 없이도” 누구나 무병장수할 수 있도록 만든 책이라고, 어디선가 주워들은 바를 읊어댈 수도 있겠는데요. 하지만 무병이란 걸 우리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꾀할 수 있는지, 그 방법을 사용해 실제로 병을 예방한 경험이 있기는 한지를 재차 묻는다면, 아마도 열에 아홉은 더 이상 할 말을 찾지 못하고 입을 다물 것입니다. 말하자면, 우리는 아직 2009년 유네스코가 세계기록유산으로 지정한 ‘동의보감’을 두고 ‘명불허전’이라 소리 높이며 자신 있게 자랑할 만한 처지가 못 된다는 거죠.

 

 

 

그래서 또 하나의 이름, 만화가 ‘허영만’이 나섰습니다. ‘각시탈’, ‘비트’, ‘타짜’, ‘식객’ 등 수많은 히트작을 통해 대중의 폭넓은 사랑을 받아온 그가 이제껏 부질없이 이름만 널리 알려진 ‘동의보감’을 직접 펼쳐, 그 안에 빼곡히 담긴 건강 지혜들을 누구나 쉽게 접해볼 수 있도록 만화로 재탄생시킨 것인데요. 총 14년을 걸쳐 25권으로 정리한 허준 선생의 《동의보감》이 세상에 나온 지도 어언 400년, 그 ‘명불허전’의 체험이 지난 40여 년간 배우고 관찰한 것들을 꾸준히 만화로 옮겨온 허영만 선생님의 귀한 손을 거쳐 《허허 동의보감》이라는 이름을 달고 이제 막, 시작된 참입니다.

 

이번에 출간된 《허허 동의보감》 1권은 매주 수요일 선생님께서 한의사 세 분과 《동의보감》을 2년 동안 공부한 결과라고 알고 있습니다. 《허허 동의보감》 이 완간될 때까지 이 공부 모임은 계속될 텐데요. 어떻게 모이게 되셨나요?

 

 

 

허영만 | 제일 처음에는 제 고등학교 15회 후배인 황인태 원장과 《동의보감》 공부를 시작했어요. 그렇게 6개월을 공부하다 임상 경험 같은 경우, 한 사람보다는 더 많은 사람에게서 재미있는 얘기가 나올 것 같아 오수석 원장님과 박석준 원장님을 모시게 됐죠. 오늘 이 자리(8월 21일, 대치동 ‘다솜 한의원’에서 있었던 《허허 동의보감》 출판간담회)에 참석하진 못했지만, 박석준 원장님은 《식객》 그릴 때부터 한의학 쪽으로 의문이 생기면 자문을 구하던 분이시고, 우연찮게 세 분 모두 고등학교 동문을 인연으로 최강의 멤버들이 모이게 된 겁니다.

 

《동의보감》은 처음부터 순서대로 공부하고 계신가요?

 

허영만 | 허준 선생도 고심해서 만들어낸 순서일 텐데, 그 순서에 입각해 공부해나가는 데 혼란을 일으키지 않겠다는 생각입니다. 후반부에 재미있는 얘기들이 많이 나온다고 하는데, 앞의 기본도 모르고 재미 있는 것부터 이야기하면 되겠나 싶기도 하고요.

 

오수석 | 보통 의학 서적은 증상부터 다루는 게 대부분입니다. 이번에 1권으로 출간된 게 《동의보감》 중 신행 편에 해당하는데, 허준 선생께서 나는 앞으로 우주와 자연과 인간을 이렇게 바라보겠다고 전제하는 논문의 서론이라 볼 수 있습니다. 총론을 정해 뼈대부터 세운 후 이야기를 시작하는 건데, 이런 구성은 다른 책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데다 그래서 철학적으로도 의미가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같이 《동의보감》이 일관된 체계를 가지고 완성될 수 있었던 데에는 당시의 역사적 상황, 전쟁이나 귀향 등이 영향을 미쳤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전시에 많은 사람들이 피난을 가면서 허준 선생이 자기 소신껏 편재를 하고 귀향 가 있는 동안 집필에 더욱 집중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을 테니까요.

 

공부하다가 선생님께서도 직접 맥을 잡히기도 하고 그러시나요?

 

허영만 | 잽히죠. 누구나 손을 잽히죠. (웃음) 맥은 우리나라에서 제일 잘 보시는 분이 또 있거든요. 그 분이 두 주 정도 와서 강의를 하셨고요. 기공 같은 경우도 진짜로 잘 아시는 분 모시고 공부를 했는데, 그 분들 이야기는 두 번째 권에 나올 겁니다. (신민식 | 취재 후기 형태로 매권별로 두 분 정도씩 우리가 취재하거나 모셨던 분들의 이야기가 들어갈 예정이예요.)

 

오수석 | 《동의보감》에는 머리부터 발끝까지 증상이 다 있습니다. 저도 동의보감 위주로 진료를 하지만 완벽하게 모든 분야에 잘 할 수는 없거든요. 그런데 《동의보감》을 알리는 취지에 공감하는 한의사 동료들이 아무 대가 없이 와서 강의를 해줬어요. 앞으로도 공부하는 과정에서 우리가 부족한 게 있다면 그 분야의 전문가를 초빙해 모실 생각입니다. 이게 또 우리 자산을 발굴하는 것이기도 하니까요.

 

양방에서 각각 영역별로 전문의가 따로 있지만 한방은 그렇지 않죠?

 

오수석 | 학문 자체가 그래요. 예를 들어, 허리가 아프면 허리 자체만 문제가 있는 게 아니라 자궁이나 위장, 콩밭 등에 같이 문제가 있을 수 있거든요. 말하자면 한의학적 관점에선 인체의 모든 부분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다 연결되어 있다는 거죠. 그래서 한 사람이 다 볼 수밖에 없는 거고요. 지금은 돌아가신 제 은사님하고 공부할 때 있었던 일화인데요. 자주 가는 식당에서 밥을 먹는데 평소보다 음식이 짜요. 그러니까 선생님이 하시는 말씀이, ‘저 안에 있는 주방장 허리가 아플 것이다’라고 하셔서 가보니까 정말 허리가 아프다는 거예요. 그러면 선생님께선 허리가 아픈 걸 어떻게 아셨느냐, 이건데, 짠 맛은 콩팥하고 연관되어 있으니까 자연히 허리가 아플 수밖에 없다는 거죠.

 

원래부터 한의학에 관심이 많으셨나요? 《동의보감》을 만화로 그리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허영만 | 우리 어렸을 때는 한의학이 일상에 늘 같이 있었어요. 잘 아는 동네 할아버지가 한의원을 하셨는데, 거기 갈 때마다 계피를 주셔서 자주 갔었지. 그땐 군것질 거리가 없었으니까 그거 야금야금 깨먹고 돌아다니고 그랬고. 그리고 어릴 때 내가 약했어요. 학교에서 한 여름에 운동장에 세워 놓으면 비실비실 쓰러지고 그랬다고. 그래서 우리 할아버지가 ‘저 놈, 부지런히 먹여라. 부실해서 어디 쓰겠냐.’ 말씀도 많이 하시고 그래서 한약 무지하게 많이 먹었어. 지금 그 힘으로 버티는 지도 모르겠는데, 한약의 맹점이 먹고 바로 효과가 나타나는 줄 모른다는 거야. 그래서 급한 요즘 사람들은 결과가 눈앞에 안 나오니까 한의학을 좀 멀리하는 경향이 있는 거고.

 

 

오수석 | 실제로 급성 전염병이나 감기, 여자들이 심하게 하혈을 하는 경우, 한약도 효과가 되게 좋습니다. 그런데 한의학 쪽으로 치료 기회가 오지 않는 거죠. 일단 병에 걸리면 병원부터 들리고 그 후에 안 되면 한의원을 찾아 오니까 그때는 이미 환자 몸이 뒤죽박죽된 상태여서 한의사들이 그 실타래를 풀어가려면 치료 기간도 많이 걸리고요. 말하자면 한의학이 진단계 시장을 장악하지 못하니까, 애초에 한방으로 치료해볼 수 있는 기회조차 주어지지 않는다는 게 지금의 현실입니다.

 

또 요즘 가장 안타까운 게 한의원에서 아이들이 사라졌다는 점입니다. 앞서 선생님께서 말씀하셨던 것처럼 어렸을 때부터 한약을 먹고 그 효과를 본 사람들은 한방에 애착을 갖고 있겠지만 지금 아이들은 그런 경험이 없다는 겁니다. 더 문제는, 이 아이들이 어른이 됐을 때 과연 자기 자녀들을 데리고 한의원에 오겠냐는 거고요. 그래서 무엇보다 한의학의 저변 확대가 시급하고도 중요한데, 선생님께서 그림으로 《동의보감》의 양생 사상을 표현해주시니까 저희로선 너무너무 고맙습니다.

 

신민식 | 제가 《동의보감》에 관심을 갖게 된 건 우리가 쓰는 언어 중에 그 영향을 받은 게 굉장히 많다는 걸 알고부터예요. ‘이 쓸개 빠진 놈’이란 말이 있는데, 쓸개가 오장육부의 밤낮을 구별해, 쓸개가 빠지면 밤낮을 구별하지 못해 실 없는 소리를 하게 된다는 거죠.

 

오수석 | 소장, 위장, 대장, 방광 등 우리 몸은 오장육부가 구성이 되어 있는데, 쓸개의 역할은 낮에는 육부 편에 붙어 있다 저녁이 되면 오장 편에 붙는다고 합니다. 그렇게 쓸개가 밤낮을 가름질하면서 조정을 하고요. 그런데 이 쓸개가 빠지게 되면, 사람이 왔다 갔다 하기 때문에 지조가 없다는 얘기를 듣는 거죠. 그런데 실제로 요즘은 쓸개 빠진, 즉 쓸개를 드러낸 사람들이 많은데요. 양방에서는 쓸개가 단지 담즙을 분해하는 기관일 뿐이지만, 한의학적으로 봤을 때는 쓸개 빠진 사람들한테 이 쓸개 역할을 대행해주는 침과 약을 쓰면 되는 겁니다. 양방이 보지 않는 정신적인 영역을 보는 거죠. 예를 들어, 《동의보감》에서는 눈밑이 거무티티하고 눈빛이 자신이 없으면서 편도가 잘 붓는 얘들을 쓸개가 약하다고 보는데요. 이 아이들의 경우, 한의사들이 맥을 짚어 ‘엄마 치맛자락을 잘 놓지 않죠?’ 물어보고 쓸개를 강화시키는 약을 주는데, 그러면 얘가 실제로 대범해집니다.

 

 

허영만 | 제가 《동의보감》 원전을 만화로 옮기는 어려운 작업을 시작했는데, 할 수 있는 한 열심히 하고 있어요. 나중에 이 작업이 점점 더 설 자리를 잃고 있는 한의학이나 이 공부를 하시는 분들이 자리를 확보하는 데 도움이 될 수 있으면 좋겠다, 생각을 합니다. 《꼴》 같은 경우도, 실제로 관상을 공부하는 분들이 만화를 보고 혹이 다 후련하다고 하더라고. 그 동안은 한문으로만 된 데다 그림도 이상하게 그려진 걸로 공부를 하니까, 다른 사람들한테 설명해주기 애매한 것들이 많았었는데, 그게 만화를 보면서 해결됐다는 거지. 《허허 동의보감》도 한의학 분야에 있어 우리가 모르는 여러 가지 상식을 전달하는 데 도움이 되었으면 하고.

 

공부하신 내용을 그림으로 녹여내기까지의 과정이 어떻게 이루어지는지 알고 싶습니다.

 

오수석 | 제가 책을 한 번 읽고 그걸 설명합니다. 허영만 선생님은 그걸 적으면서 가만히 듣고 계시고요. 그러면 한의사 분들이 틀린 게 있는지 없는지 한마디씩 거들어주시고, 그 이후에는 한의학에 문외한인 신민식 대표님과 편집자 김미란 씨가 위문 나는 점들을 질문합니다.

 

 

 

허영만 | 설명을 들으면서 중간중간, ‘이런 걸 그러야겠다’ 메모를 하고, 그린 후에는 이렇게 그리면 되는 건지 한의사 분들께 감수를 부탁합니다. 이를 테면, 어려운 한자를 나 나름대로 독자들한테 쉽게 전달한다고 했는데 이게 틀릴 수도 있으니까요. 그렇게 카카오 페이지에 연재됐던 걸 수정한 것도 있고 다시 최종적으로 감수를 거쳐 나온 게 이번에 출간된 《허허 동의보감》 1권.

 

이번에 《허허 동의보감》 1권 내시면서 스토리 구성이라든지 메모하신 게 몇 권이나 되세요?

 

허영만 | 메모는 책 빈 칸에 나만 아는 글씨로 써놓는데, 그러면 상황 같은 걸 따로 쓰지 않고도 그 자리에 바로 글을 집어 넣을 수 있으니까. 그리고 만화적인 아이디어는 생각날 때마다 들고 다니는 대학 노트에 날짜 쓰고, 그 날짜에 무슨 공부를 어떻게 했는지 써놓지. 《동의보감》 책에도 써져 있으니까 그거랑 비교하면서 다시 보고. 그래서 작업할 때 내 책상에는 《동의보감》 하나, 노트 하나, 황인태 원장이랑 공부했을 때의 녹취록, 두 분 더 모시고 공부했을 때의 녹취록, 이렇게 네 개를 펼쳐 놓고 날짜를 봐가면서 빠지지 않게 확인하지. 그래서 이건 절대로 건들면 안 돼.

 

황인태 | 저희들이 공부하면서 같이 이야기한 거 있잖아요. 《허허 동의보감》 1권에는 그 절반 밖에 안 될 거예요. 책 내용의 나머지는 선생님이 순수 창작하신 것들이죠. 이번 책을 보면서 우리가 언제 이런 이야기를 했지, 하는 것도 진짜 많았어요. 그만큼 선생님이 공부를 하신다는 거죠.

 

허영만 | 그러니까 밥 벌어 먹고 살지 (일동 웃음)

 

 

 

1권 중에서 가장 그리기 어려웠던 게 뭔가요?

 

허영만 | ‘정기신’이예요. 그러 배우는 데 총 1년이 걸렸고, 지금 두 번째로 배우고 있는데, 난 아직도 구별을 잘 못하겠어. 이게 이건 것 같고 저게 저건 것 같고. 그래서 이걸 제일 알기 쉽게 그려놓자고 한 게 정은 초고, 기는 촛불이고, 신은 빛이다, 거든. 그런데 좀 안다는 사람들이 이게 아니라고 얘기를 또 하더라고. (황인태 | 그 대목은 동의보감에도 있는 내용입니다) 더군다나 신 같은 경우는 보이질 않는 거니까, 독자들을 이해시키기가 쉽지 않죠. (오수석 | 아우라죠) 그러니까 신이 뭐냐 하면, 한 십 분을 신에 대해서 얘기한다고. 그럼 이걸 어떻게 요약할 수도 없고, 전혀 이해가 되질 않아. 제일 어렵죠.

 

만약 내가 《동의보감》을 혼자서 공부했다면, 제일 어려웠을 게 한자를 우리말로 푸는 거예요. 심지어는 그 어려운 한문을 갖다가 그래도 쓰고 뒤에 접속사만 붙인 것들이 되게 많더라고요. 아마 사전 찾느라고 시간 많이 보냈을 거예요. 그런데 같이 공부하시는 분들 중에 《동의보감》 편찬한 분도 계시고 하니까 그 자리에서 즉시 해결이 돼서 좋죠. 그래도 나 혼자 다시 공부하다가 의문 나는 점이 많이 생겨 용어 사전 같은 걸 샀어요. 그걸 보면서 하니까 많이 도움이 되더라고.

 

오수석 | 말씀하신 것처럼, 예전에 썼던 용어와 지금 우리가 사용하는 용어가 많이 다른데요. 그래서 독자들이 낯설게 느끼는 용어들을 최대한 이해하기 쉽게 전달하는 게 우리의 숙제인 거죠. 예전 선비들이야 ‘정기신’ 하면 웬만큼 이해가 되겠지만, 요즘은 그게 안 되니까 촛불과 같은 그림으로 표현하게 된 거고요. 게다가 어릴 때부터 서구 과학에 의해 사고체계가 형성된 상태에서, 《동의보감》처럼 도가 철학에 근거하고 있는 내용은 이해하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래서 한의학 공부할 때 이런 이야기를 하는데요. 초중고 총 12년을 공부하고 한의대 들어오면 이 때를 벗는 데 24년이 걸린다는 거죠.

 

선생님께선 굉장히 오랜 시간 집중해서 작업을 하시기 때문에 에너지 소모도 많을 것 같는데요.방송이나 인터뷰를 보면서 저 에너지가 어디서 나오는 걸까 궁금하곤 했습니다.

 

허영만 | 내가 지금도 만화를 그리는 이유가 만화를 그리는 거 외에는 할 일이 없어서예요. 인터뷰 10일 후에 잡혔다 그러면 그게 계속 신경이 쓰여, 그래서 잘 안 하는 거고. 그런데 기왕 날짜를 잡아서 한다고 했으면 제대로 해야 할 거 아니야.

 

그런데 요즘은 나도 내 나이를 생각하는 시간이 많아졌어요. 지금 이 상태로 얼마나 갈까, 점점 에너지를 아껴야 할 텐데 하지. 그런데 내가 노는 시간을 용납하질 못하니까. 유일하게 노는 게 술 먹는 거고. 어디 여행을 가더라도 노트에 일 삼아서 손으로 계속 뭔가를 그려야 돼. 일기이자 이걸 다듬으면 또 책이 될 테니까. 천상 뭐 이 짓 하다가 가는 수밖에 없어.

 

요즘 사람들, 아프면 대개 병원을 찾습니다. 한방은 약을 먹어도 한 번에 효과를 볼 수 없고 양방에서처럼 내시경이나 엑스레이를 통해 내가 지금 어떤 문제가 있는지 눈으로 보여주질 못하니까 불안한 마음이 들거든요.

 

오수석 | 의료법 상, 한의원은 의료기기를 못쓰게 되어 있습니다. 지금도 한의사는 전통에 따라 손으로 맥을 짚어 병을 진단하라고 되어 있고요. 그런데 환자들은 눈으로 자신의 상태를 확인하길 원해요. 불안하니까. 그래서 큰 돈을 들여 CT나 내시경 검사하는 것도 마다하지 않고요. 말하자면 현재와 한의학이 대중들과 멀어진 데에는 우리가 객관적인 진단 데이터를 기반으로 설명하는 도구를 잃어버린 데 그 원인이 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실제로 환자가 병원에서 찍은 CT랑 MRI 등을 가져오면 학교에서 양방 의학도 배우기 때문에 한의사들도 자료를 보고 치료에 참조할 순 있는데, 진단 의뢰서 비용은 못 받게 되어 있습니다. 국민 건강을 위해서는 지금과 같은 의료법 상의 차별을 없애고 과감하게 개방하는 게 옳다고 보지만 이게 결국 밥그릇 싸움이니까, 현실적으론 힘이 들죠.

 

인터넷이 발달하면서 각종 의학 정보들을 누구나 쉽게 얻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허허 동의보감》을 읽다 보면 기존의 상식에 반하는 내용들도 등장합니다. 400년 전의 《동의보감》을 현대의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데 특별히 신경 쓰신 부분이 있을까요?

 

오수석 | 일반 독자들이 가지고 있는 건강 상식과 한의학에서 쓰는 용어 등을 어떻게 매칭시켜 독자들에게 제대로 전달할까를 많이 고민했습니다. 그래서 《동의보감》을 같이 공부할 때 신민식 사장님이나 편집자, 허영만 선생님이 일반 독자들의 수준에서 의문 나는 점을 질문하고, 한의사 세 분이 함께 이야기하면서 의견 통일을 볼 수 있도록 했고요. 예를 들어, 대개 운동이 건강에 좋다고들 생각하는데, 《동의보감》에선 운동을 많이 하는 게 오히려 건강에 안 좋다고 이야기합니다. 이는 운동도 자기 몸에 맞춰 적절하게 해야 한다는 말인데, 한의학에서 기본적으로 여자의 땀은 피가 세는 것으로 봅니다. 그래서 여자들이 지나치게 운동을 하면 골다공증이나 조기 폐경이 올 수도 있다고 하고요. 또 한의학적으로 저녁에 땀을 빼고 운동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고 보는데, 모든 기가 모이는 시기인 저녁에 헬스 가서 땀을 뻘뻘 흘리는 건 안 좋다는 거죠. 이럴 때, 현실적으로 저녁밖에 시간이 없는 직장인은 어떻게 하냐,를 질문하면서 이야기를 맞춰 나가는 거고요.

 

 

 

《동의보감》에선 사람과 자연이 함께 움직여 나간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예전과 달리 한경도, 사람도 많이 바뀌었고 이와 같은 차이가 이전에 만들어진 의학적 지침들에 어떻게 반영되는지 궁금합니다.

 

오수석 | 그 부분도 공부하면서 함께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데요. 일단 《동의보감》에 나와 있는 진단 방법은 현재의 시점에 적용하기에 무리가 없습니다. 그런데 약의 경우는 오늘날과 당시 18세기 이전에 살던 사람들의 섭생 자체가 다르거든요. 과거의 사람들은 80% 이상이 태어난 곳에서 백 리 밖을 벗어나지 못한 채 죽었다고 하는데, 씨족과 같은 공동체 단위의 생활이 제한된 환경 속에서 이루어졌다는 얘기죠. 그런데 지금은 교통수단이 발달하면서 마음만 먹으면 전 세계 어디든 자유롭게 돌아다닐 수 있게 됐고, 기술적으로도 컴퓨터와 같은 기기가 생겨나면서 다른 차원의 정신 노동 또한 이루어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따라서 이와 같은 변화의 요소들을 고려해 《동의보감》의 방법론을 어떻게 적용할 수 있을지, 이걸 해결하는 게 우리시대의 숙제가 되겠죠.

 

사람도 그렇지만, 약재로 쓰이는 식물도 토양이나 날씨 등, 환경적인 요인에 많은 영향을 받을 텐데요. 혹시 《동의보감》에 약재가 그 본래의 기능을 다할 수 있도록 하는 성장 조건들이 따로 명시되어 있기도 한가요?

 

오수석 | 《허허 동의보감》에서 구체적으로 그 부분까지 논하지는 못하지만 임상가에서 고민을 많이 하고있습니다. 언제가부터 ‘신토불이’를 강조하면서 우리 것이 우리 몸에 제일 좋다고들 말하는데, 모든 경우가 그렇진 않아요. 중국 약 중에 훨씬 좋은 게 많습니다. (일동 웃음) 단지 수입하는 사람들이 싸구려를 들여와서 그렇지.

 

 

 

황인태 | 아까 약이라는 게 자연이라고 했잖아요. 히말라야에 가면 하루만에 히말라야를 건너는 기러기가 있습니다. 이 기러기의 심장 구조나 혈액 등을 연구하면 협심증과 같은 질병에 맞는 약재를 뽑아낼 수 있겠죠. 그런데 우리나라에는 이런 기러기가 없잖아요. 그래서 약에 있어서 만큼은 절대로 신토불이가 아니라는 거죠.

 

요즘 젊은 친구들, 웹툰으로 만화를 많이 보잖아요. 선생님도 혹시 보시는 웹툰 있으세요?

 

허영만 | 없어요. 난 내 거 찾아보기도 바빠. 남의 걸 들여다볼 여유가 없어요. 내가 이번에 남해안에서는먹지도 않는 걸 동해안에서 먹고 있는 ‘비단멍게’라고 스토리를 쓴 게 있는데 중간에 잘못 쓴 게 있어, 가만히 생각해보다 바꿔 썼어. 그런데 어젯밤에 집에서 또 가만히 생각해보니 다르게 쓰면 좋겠다, 싶은 거야 그래서 바꿨어요. 바꾸고 났는데 안 바꿔도 괜찮지 않나, 라는 생각이 들어 또 원래대로 바꿨어요. 그러니까 완전히 끝날 때까지는 계속 그 생각을 하는 거야.

 

 

 

말씀하신 것처럼 선생님께서 일에 굉장히 집중하시잖아요. 사모님이나 자녀분들이 불평하진 않나요?

 

허영만 | 내가 결혼해서 30대 중반까지 단독주택에 살았는데, 집 앞에 있는 가로등이 우리 방문을 비치는 거야. 내가 전화국에 전화해서 이거 옮겨 주시오, 그랬어. 그걸 옮겼는지 안 옮겼는지 지금은 기억이 나질 않는데, 가로등 때문에 내가 잠을 못 자겠더라는 거지. 그래서 사진 인화할 때 빛 안 들어오게 하는 두꺼운 커튼을 쳐야겠다고 하니까 마누라가 질겁을 해서는, ‘사람 사는 방에 그런 걸 어떻게 치냐’고. 그런데 나는 조금만 밝아도 잠이 깨는 거야. 그 정도로 예민했던 거지. 그래서 여러 사람이 불편했고. 결국은 내가 밥 벌어 먹이려고 한 일인데 나만 나쁜 놈이 되는 거야. (일동 웃음)

 

그러던 게 소위 작업실을 얻어 밖으로 나와서는 많이 달라졌지. 집 생활하고 완전히 구분이 되니까. 그래서 어지간히 급한 일 아니면 작업할 걸 집으로 갖고 들어가지 않아. 집에 들고 가면 뭐해. 그러니까 낮에 최대한 일 보고 저녁 때 술 한 잔 먹고 집에 가고 그러지.

 

 

책에서도 언급하고 있지만, 무엇보다 아는 걸 실천하는 게 어렵습니다. 선생님께선 작업하시는 동안 계속 스트레스를 받으실 테고요. 혹시 《동의보감》을 공부하시면서 실천하게 된 건강 지혜가 있으신가요?

 

허영만 | 자전거 탈 때 숨이 턱에까지 차고 이러다 숨이 멎을 수도 있겠다 싶었는데, 《동의보감》에서는 적게 먹고 움직이지 말라고 하잖아. 내 나이도 있고 이제는 버거운 운동은 하지 말아야지. 또 무엇보다 소식이 좋은데, 실제로 해보니까 소식하고 술 안 먹는 다음 날은 굉장히 편해요. 술을 안 먹더라도 밥을 많이 먹은 다음 날은 기분이 영 불쾌하고. 그런데 사실 이거 하나는 실천하고 있다, 하는 건 딱히 없어. 잘못됐다는 걸 알았으면 이걸 고쳐야 하는데 안 고쳐지는 것 때문에 오히려 더 스트레스를 받아요. (일동 웃음) 술 먹고 맨날 후회하고 그러지.

 

다음 작품으로 어떤 걸 구상 중이신가요?

 

허영만 | 전부터 해보고 싶었던 게 실버만화였는데, 중요한 건 실버들이 만화를 안 본다는 거예요. 그래서나 혼자 그냥 연재 하다 그만 둘 수도 있지만, 한 번 해보고 싶어요. 그리고 다른 건 커피 만화. 상당히 오랜 역사를 가지고 있는 커피가 체계적으로 발전할 수 없었던 데는 생산자가 아주 밑바닥에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거든. 최근에 알아본 바로는 커피를 체계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 게 불과 20년 밖에 안 됐다고 그래요. 그런데 애당초 기본적인 자료가 많으면 그림 그리기가 수월한데, 커피 만화 그리려면 거의 전 세계를 싸돌아 다녀야겠구나, 생각이 들어요. (웃음)

 

 

허영만

 

1955년 1월 175cm에 깡마른 19세 허영만은 이불 한 채 메고 서울역에 내렸다. 여수에서 서울까지 비둘기호 야간 열차로 9시간이 걸렸다. 1974년 한국일보 신인만화공모전에 《집을 찾아서》가 당선되며 만화가로 공식 데뷔했다.

 

1974년 《각시탈》, 1981년 《무당거미》, 1989년 《날아라 슈퍼보드》, 1994년 《비트》, 1999년 《타짜》, 2003년 《식객》 등 40년간 수많은 히트작을 낸 허영만은 10대부터 60대까지 폭넓은 대중들의 사랑을 받으며 한국인이 가장 좋아하는 만화가로 손꼽힌다. 특히 철저한 사전조사와 취재를 통해 탄생한 콘텐츠의 힘 덕분에 허영만의 작품은 '믿고 보는' 만화로 통한다. 더불어 드라마·영화·애니메이션·게임 등으로 제작된 많은 작품이 큰 성공을 거두며 흥행 보증수표로 자리매김했다.

 

작품 연재에 들어가기 전 끊임없이 배우고 관찰하고 4~5년씩 '과외 수업'도 불사하는 그가 2011년부터 매주 수요일 밤을 '과외 시간'을 못 박았다. 유네스코 세계기록유산인 《동의보감》을 정보와 재미를 섞어 교양 만화로 재해석한 《허허 동의보감》을 집필하기 위해서이다.

 

그는 앞으로 《허허 동의보감》의 완간까지 열정을 쏟을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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