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 대신 - 《안녕, 내 모든 것》의 소설가 정이현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사진 제공 | 창비

 

소설이란 무엇인가? 이 질문에 대한 답은 이 지구에 있는 소설가만큼이나 무수합니다. 추측컨대, 그 답은 결코 ‘시간’과 무관하지 않을 겁니다. 이 순간에도 사람은 흘러가는 ‘시간’ 속을 살고, 그런 삶에 대해 쓴다는 것은 결국 ‘시간’에도 응답해야 한다는 뜻이니까요. 《안녕, 내 모든 것》은 정이현 작가님의 지난 ‘시간’을 담고 있습니다. 세상에 내보낸 소설들에게 안녕이라고, 미안하다고, 고맙다고 말하고 싶다는 작가님에게는 이 소설도 그러할 텐데요. 어쩌면 그 말을 전하기 이전에 인사는 이미 되었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시절을 떠나보내는 방식으로 쓰인 소설입니다. 미안하고 고맙다는 말을 대신하는 그 응답을 이제 우리도 접할 수 있게 되었네요. 자, 책의 첫 장을 펼쳐 볼까요?

 

 

반디 | 《안녕, 내 모든 것》의 출간을 축하드립니다. 작년 봄부터 올해 여름까지 ‘내 모든 것’이라는 제목으로 계간 《창작과비평》을 통해 연재되었던 소설이죠. 연재시기에 맞춰 써 나가셨다면 차후에 마지막 원고를 탈고하셨을 때의 심경이 남달랐을 것 같습니다. 원고 전체를 다시 모아 책으로 만드는 과정도 그렇고요. ‘작가의 말’을 통해서도 밝혀 주셨지만 그 시간들을 조금 더 부연해 주신다면요?

 

정이현 | 《안녕, 내 모든 것》은 계간지 창작과비평에 2012년 여름호부터 2013년 봄호까지 4회에 걸쳐 연재되었던 작품입니다. 2012년 봄 알랭드보통과 함께 쓴 소설 《사랑의 기초》의 마지막 작업을 마치자마자 잠시도 쉬지 않고 곧바로 연재 준비에 돌입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로부터 일년 여가 넘도록 이 작품에 꼼짝없이 붙들려 있었고요. 그동안 계절이 어떻게 왔다 갔는지, 이 세상에 무슨 큰 사건이 터졌는지도 잘 모를 정도로 소설의 세계 속에서 허우적거리며 살았습니다. 저의 하루는 ‘소설을 쓸 수 있는 시간’과 ‘그렇지 못한 시간’으로 양분되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꼭 해야만 하는 일상의 일들을 수행하는 동안에도 어서 책상 앞에 가 앉고 싶어 애가 타기도 했어요.

 

반디 | ‘프롤로그’를 지나 두 번째 챕터인 ‘노란 뚜껑의 작은 유리병 속에’는 “김일성이 죽었다.”라는 문장으로 시작합니다. 그리고 김일성이 죽었던 1994년 즈음을 살았던 아이들이 소설의 전면에 등장하고 있는데요. 90년대는 작가님의 다른 소설에서도 종종 이야기되는 시절이죠. 작가님의 개인적인 경험이 반영되었는지 궁금합니다. 자신의 삶에서 90년대를 어떻게 기억하고 계시나요?

 

정이현 | 저는 1991년에 대학에 입학했습니다. 90년대는 제 이십대라는 생물학적 연대기와 거의 일치하는 시간이지요. 개인적으로 ‘지금 나라는 인간의 팔할은 구십 년대가 만들었다’고 할 만큼 그 시간에 빚진 것들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잊지 못하는, 구십 년대 적인 상징적인 장면은, 대학 입학식을 마친 다음날 첫 수업에 들어갔을 때 십여 분만에 강의가 끝나고 학생들이 모두 뿔뿔이 어디론가 흩어지던 풍경입니다. 캠퍼스 한가운데 섰는데 굉장히 외롭고 쓸쓸하고 허무했어요. 어, 청춘드라마에서 본 대학생활은 이렇지 않았는데, 어, 어, 혼잣말만 반복했던 기억이 납니다. 남들은 다 어디론가 갈 곳이 있나보다, 라는 추측이 혼자인 저를 더 비참하게 했지요. 어쩌면 그때 어디론가 바삐 사라지던 그들이 실은 하나하나 다 갈 곳이 없었다는 것, 나름대로 어딘가에 ‘짱박혀’ 있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이상하게도 문학이라는 곳에 마음이 이끌리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모든 해는 각각 다른 방식으로 기억된다. 공통의 합의가 쉽게 이루어지는 해도 있다. 1979년은 대통령이 총 맞아 죽은 해, 1988년은 서울올림픽이 개최된 해라는 명명에 보통 한국인이라면 별다른 이의를 제기하지 않을 것이다. 반면 어떤 해는 그렇지 않다. 이를테면 1994년. (101쪽)

 

반디 | 《안녕, 내 모든 것》 뿐만 아니라 영화와 드라마 등 여러 매체를 통틀어 90년대가 회자되는 시기입니다. 90년대만의 분위기 때문일까요? 아니면 어느 때나 현재로 소환되는 과거란 있다고 봐야 할까요? 작가님께서는 일련의 현상을 어떻게 바라보시는지 듣고 싶습니다.

 

정이현 | 90년대가 이런 저런 문화 장르에서 소환되고 있을 뿐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이론적으로 정리하려는 성숙한 노력은 상대적으로 부족하다고 생각합니다. 비단 90년대와 관련해서만은 아니지만, 문화 텍스트 안에서 하나의 시대가 다만 소재주의적 입장에서 호명되고 소비되는 경우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반디 | 90년대와 더불어 소설의 키워드로 꼽을 수 있는 것은 서울입니다. 소설 속 서울의 풍경은 조악합니다. 그럴싸하지만 부서지기 쉬운 과자집을 다닥다닥 세워 놓은 곳 같아요. 어른들은 그런 서울을 닮아가고 있고요. 하지만 세미, 준모, 지혜는 어른들과 달리 그곳에서 저마다의 단단함을 가지고 살았는데요. 이들 삶의 무대를 서울로 정한 이유가 있다면요?

 

정이현 | 저는 한국사회의 90년대가, 여러 가지 면에서 십대 후반의 시간과 닮아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미숙하지만 열정과 에너지로 부글부글 끓던 시기였다는 면에서도 그렇고, 그럼에도 불길한 어떤 징후들이 곳곳에 나타났다는 면에서도 그렇고요. 제 인물들을 그 세속의 한복판에 놓아두고 싶었습니다.

 

반디 | 세 아이는 결말에 이르러 비밀의 공모자가 됩니다. 이것을 공유하게 된 데에는 단순한 우정 이상의 공감대가 있다고 생각됩니다. 예컨대, 더 이상 (삶에) 모욕당하지 않겠다는 마음 같은 것이요. 물론 저의 오독일 수도 있겠습니다. 그래서 작가님께 여쭙고 싶습니다. 삶에 대한 세미, 준모, 지혜의 마음이 교차하는 대목을 읽어주신다면요?

 

정이현 | 그렇게 읽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더는 모욕당하지 않기 위해 스스로들 무언가를 직접  한다는 것. 그 의지가 중요한 것이겠죠. 원하시는 것과 가까운 답일지는 모르겠지만, 이 문장들이 떠오릅니다.  

 

“내가 끔찍이 두려워 한 것은 혼자 남겨지는 게 아니었다. 이 세상에 혼자인 사람이 오직  나 혼자 뿐인 거였다.” (228쪽)

 

   스무살이 되는 해는 1997년이다. 가깝지만 머나먼 숫자였다. 유리잔 밑바닥에 남은 우유 찌꺼기처럼 희뿌옇고 탁했다. 1998년에는 1991년이, 1991년에는 1994년이 그렇게 느껴졌었다. 시간은 늘 체력장 오래달리기 같았다. 눈을 감고 뛰다보면, 저 앞에 도무지 내가 따라잡을 수 없을 것 같은 속도로 달리던 아이가 어느 순간 내 뒤로 처져 있는 거다. 늙어간다는 건 따라잡을 아이가 점점 줄어들다가 결국 아무도 없어진다는 거겠지. 앞만 보고 뛰는 일도 뒤를 돌아보는 일도 두려울 것이다. 그러면 좀 쓸쓸할 것 같기도 하다. (63쪽)

 

반디 | 작중인물은 어른이라면 제 속에 아이를 가지고 있거나, 아이라면 제 속에 어른을 가지고 있습니다. 사람의 ‘성장’을 바라보는 작가님의 가치관이 소설에 반영되었다는 생각이 드는데요. 《안녕, 내 모든 것》을 성장담으로 볼 수 있고, 그 ‘성장’이 여러 가지를 뜻할 수 있다면, 작가님께서는 ‘성장’을 무엇이라고 정의하고 싶으신지요?

 

정이현 | 네. 저는 기본적으로 모든 소설은 인간(들)의 성장에 대한 기록이라고 생각합니다. 물론 여기에서 성장이란, 마음의 키가 확 자란다거나 ‘성숙한’ 존재가 되었다는 것과는 거리가 멀어요. 저에게 ‘성장’은 어떤 변화를 뜻합니다. (사실 저는 비관주의자에 가까운 편이라, 인간은 본질적으로 크게 변하지 않는다고 믿습니다만) 그래도 출근길에 나무가 있든 말든 신경 쓰지 않고 휙 지나던 사람이 소설의 말미에서 ‘아 저기 나무가 있었구나. 잎이 다 졌네’라고 혼자 생각하게 되는 만큼의 변화면 충분하다고 생각합니다. 또 다른 면에는, ‘성장’이란 세상을 움직이는 보이지 않는 비밀을 갑자기 이해하게 되는 한 순간이라는 생각도 듭니다.

 

반디 | 소설과 소설 사이. 모든 작가는 그러한 공백을 가지게 됩니다. 그런 시기가 작가님께는 요즈음일 것 같은데요. 한 편의 소설을 마무리하고 다른 한 편의 소설을 시작하기 전의 공백을 어떻게 보내실지 궁금합니다. 《안녕, 내 모든 것》을 출간한 이후의 근황을 들려주신다면요?

 

정이현 | 공백이기는 한데, 사실 완전히 빈 상태는 아니에요. 《안녕, 내 모든 것》과 관련된 이런 저런 인터뷰나 행사들이 아직 남아 있어서요. 이미 내 손을 떠난 작품에 대해, 특히 그 내용에 대해 이런 저런 자리에서 자꾸 이야기하게 되는 것이 어쩐지 민망하기도 하고 간혹 힘들 때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또 자꾸 객관적으로 이야기하고 타인에게 설명하는 과정을 통해, 한 작품을 떠나보낸 뒤에 필연적으로 들이닥치는 어떤 슬픔과 허망함을 잊게 되기도 하는 것 같아요. 8월 중순에 휴가를 다녀온 뒤로는 정말로 칩거하며 일상인의 생활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읽고 싶은 책들이 산처럼 쌓여 있기도 하고요. (집에 정말로 산처럼 쌓아놨어요 ㅎ)

 

반디 | 소설을 쓰지 않을 때는 책을 읽기도 하실 텐데요. 90년대의 어느 날부터 지금까지 변함없이 즐겨 보고 여전히 영향을 받는 책이 있는지요? 그것은 작가님의 스테디셀러라고도 말할 수 있겠는데요. 독자 분들에게 몇 권 소개해주신다면요?

 

 

정이현 | 이성복 《뒹구는 돌은 언제 잠 깨는가》, 《남해 금산》, 《그 여름의 끝》
그리고 오정희, 이청준 선생님의 모든 소설들.

 

반디 | ‘작가의 말’을 통해 살기 위해 소설을 쓴다는 말씀을 해주셨습니다. 한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산다고 믿던 때도 있으셨다고요. 지난 십여 년 동안 작가님께 삶이 갖는 의미가 보다 묵직해졌다는 느낌입니다. 소설 쓰기를 통해 그것이 가능했을 텐데요. 계속해서 소설을 쓰는 작가님의 삶을 그려본다면 10년 후, 20년 후, 30년 후의 모습은 또 어떨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정이현 | 한 번도 생각해본 적 없는 모습들입니다. 그러고 보니 어릴 때부터, 미래에 대해서는 그다지 큰 관심이 없는 편이었습니다. 제 관심은 언제나 현재 뿐입니다. 10년, 20년, 30년 후에도 그 각각의 현재를 충실히 살고 있는 사람이면 좋겠어요.

 

   한때는 소설을 쓰기 위해 산다고 믿었다. (…) 그런데 나는 어느 때보다 열심히 썼다. 쓰기 위해 산다는 선언이 얼마나 오만했는지 뒤늦게 알게 되었다. 수많은 작가들이 더 치열하게 살아간다는 것도, 내가 운이 썩 좋은 편이며, 어떤 소설도 삶보다 귀하지 않다는 것도 알게 되었다. 내가 쓰지 않으면 살 수 없다는 것 또한. 그렇다. 나는 살기 위해 쓰는 사람이었다. 아직 모르는 게 더 많다. (251쪽, ‘작가의 말’ 중에서)

 

반디 | 지금까지 한 이야기보다 앞으로 할 이야기가 더 많으리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작가님의 차기작을 궁금해 하는 독자 분들이 많을 텐데요. 일종의 ‘업무기밀’이겠지만 살짝 들을 수 있을까요? 근래의 관심사나 구상 중인 소설에 관한 이야기, 혹은 별도의 연재 계획 등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정이현 | 장편 계획은 아직은 전혀 없습니다. (심지어 출판계약도 없어요^^) 지금껏 네 편의 장편을 내놓았는데 하나하나 다 애정을 가지고 있지만, 착상을 조금 더 묵히지 못하고 이런 저런 사정에 의해 서둘러 집필에 들어갔다는 아쉬움이 공통적으로 있습니다. 이번에는 이런 아쉬움이 들지 않도록, 아주 천천히 움직여 볼 생각입니다. 무엇보다 제 마음이 가는 방향대로 몸을 맡겨볼 작정이에요.

 

대신 당분간은 단편 작업에 충실할 계획입니다. 개인적으로 단편 쓰기도 좋아하고 남의 단편 읽기도 좋아하는데 그 좋아하는 일을 오랫동안 하지 못해서 힘들었거든요. 빠르면 내년, 아니면 후년 쯤 지금부터 새로 쓸 단편들을 모아 단편집을 냈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너의 아이가 살고 있는 아침의 집에 너는 꿈에도 들어가지 못하리라.’
   서른을 며칠 앞둔 어느날, 책에서 이런 구절을 읽었다. 나는 나직하게 중얼거려보았다. 안녕, 아침의 집. 안녕, 내 모든 것. (228쪽)

 

반디 | 나이가 들면서 그 숫자만큼 더해지는 것도 있지만 시시각각으로 떠나보내야 하는 것들도 있습니다. 이를 아는 독자 분들이 《안녕, 내 모든 것》에 감응하리라는 생각이 듭니다. 언젠가 작별한 것들을 떠올리면서요. 작가님의 그것은 소설에 담겨 있을 텐데요. 마지막 질문을 통해 직접 듣고 싶기도 합니다. 지금, 작가님께서 ‘안녕’이라는 전언을 보낸다면 그 대상은 무엇이라고 할 수 있을까요?

 

정이현 | 그럴 수 있다면, 세상에 내보낸 제 소설들에게, 안녕, 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하이’와 ‘바이’의 의미가 함께 담겨 있는 안녕일 거예요. 미안하고 또 고맙다는 말도 괄호 안에 담아서요.

 

 

정이현

 

서울에서 태어나 2002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에 단편소설 <낭만적 사랑과 사회>가 당선되어 작품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으로는 《낭만적 사랑과 사회》와 《오늘의 거짓말》, 장편소설로는 《달콤한 나의 도시》, 《너는 모른다》, 《사랑의 기초: 연인들》이 있다. 이효석문학상, 현대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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