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들의 천국》 - 그리고 '우리들의 천국'

 

이청준 | 《당신들의 천국》 | 문학과지성사 | 1976

 

“우리는 이 섬을 다시 꾸며야겠습니다.” (…) 그는 섬을 다시 꾸미겠노라고 선언했다. 섬을 다시 꾸며서 이번에는 정말로 이 섬에 발을 딛고 사는 모든 사람들이 이곳을 자기의 행복스런 낙토로 믿게 해주겠노라고 힘있게 다짐했다. (65쪽)

 

잘 살게 해주겠다. 행복하게 해주겠다. 이렇듯 뭔가를 해주겠다는 다짐으로 맺어진 사이가 있다고 치자. 일대일의 사적 관계부터 다대일의 지배 구도가 성립되는 공동체까지, 그 경우는 무수하다. 헌데 모양새가 달라도 공통으로 부닥치게 될 문제가 있다. 행복은 해줄 수 있는 것인가? 행복을 행하는 자는 누구인가? 너와 나의 행복은 같은 것인가? 네가 행하는 행복이 강제된 것이라면? 나는 너와 다른 행복을 추구해도 되는가? 우리는 저마다 행복할 수 있는가? 이들 질문을 무시한다면 행복은 어느 한쪽만을 충족하는 다짐이 될 수밖에 없다. 점 하나를 찍어 놓고, 그것에 기를 쓰고 닿으려고 하는 혼자만의 경주가 될 수밖에. 《당신들의 천국》에서 “행복스런 낙토”를 장담한 ‘조백헌’의 첫 발걸음도 그러했다.

 

‘조백헌’은 나환자들의 삶터인 소록도에 새로 부임해온 원장이다. 인권 및 복지 면에서나 병의 치료 면에서나 예전보다 개선된 듯 보이는 섬에서도 주민들은 여전히 과거의 상처에 휩싸여 있다. 이런 상황을 바꿔 보고자 ‘조백헌’은 나환자 축구팀 창단에 이어 득량만 간척사업을 제안한다. 하지만 낙원을 말했던 이전 원장, 그로부터 비롯된 배반의 세월을 기억하는 주민들에게 “행복스런 낙토”에 대한 불신은 깊기만 하다. 이에 ‘조백헌’은 모두가 함께하는 공사에 앞서 훗날의 낙토를 결코 자신의 것으로 하지 않음을 약속한다.

 

   끝내는 저들이 이 땅의 주인이 될 수도 없었던 것을!
   그리고 이렇게 나는 아쉬운 사람도 하나 남김 없이 섬을 떠나야 했던 것을!
   원장은 알 수 없는 회한과 원망으로 몹시도 가슴이 아파왔다. 무엇보다도 그 돌기둥 위에 그토록 오래 간직해온 한마디조차 남겨두지 못하고 섬을 떠나게 된 일이 견딜 수 없도록 안타까웠다. (329쪽)

 

그러나 주민들과 계속 갈등하던 ‘조백헌’은 “이 섬 사람들의 공로를 온통 저의 것으로 만들어 또 다른 동상을 짓고 싶어하는”(334쪽) 저의 속내를 마주하고, 끝내 조용히 섬을 떠난다. 7년 후의 소록도에는 원장이 아니라 섬 주민으로 돌아온 ‘조백헌’이 있다. 그가 장담한 “행복스런 낙토”를 경계했던 자들이 “저들을 한 인간으로서가 아니라 특수한 조건과 양보 위에 그것을 수락할 수 있는 문둥병 환자로서만 이해하려 하심으로써 오히려 저들로 하여금 원장님 자신의 문둥이 천국을 짓게 하고 계신 것”(392쪽)이었음을 깨우쳐준 덕분이다. 이제 ‘조백헌’은 나와 너의 행복, 그것을 가능케 하는 “참다운 사랑이란 일방이 일방을 구하는 일이 아니라 그 공동의 이익을 수락하는 데서만 가능한 것”(412쪽)을 안다. 또한 행복으로 나아가는 자유를 사랑으로 행하고자 여기 와 있다. 《당신들의 천국》의 이러한 결말은 지금도 유효하다. 이청준은 “나는 어느 땐가 그것이 ‘우리들의 천국’으로 바뀌어 불려질 때가 오기를 소망했고, 필경은 그때가 오게 될 것을 확신했다. 그리고 아마도 그때가 오게 되면 ‘당신들의 천국’이라는 사시적(斜視的) 표현이나 그 책의 존재는 무용지물이 될 것이었다.”(4쪽)라고 썼다. 이를 뒤집으면, 개개인과 공동체가 저마다 분열된 오늘날은 여전히 ‘당신들의 천국’이 판치고 있다고 해야 할 게다. 그래서일까, 오래된 불행 속에서 ‘조백헌’의 말이 이청준의 전언으로 들려와 닿는 까닭은.

 

   “그리고 그렇게 하면서 이 섬은 그 자신의 힘을 기르면서 진실로 그의 자유와 사랑을 행하고 그들이 운명을 선택적으로 살아갈 수 있게 될 날을 참을성 있게 기다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위해서는 이형께서도 아마 이형 나름대로 힘을 보태야 할 일이 생길지도 모릅니다……” (419쪽)

 

* 7월 31일로 이청준 타계 5주기를 맞았습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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