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맛] 정한아, <예언의 땅>

고향에 가려면 고속버스를 타야 합니다. 그 안에서 내다보이는 풍경은 비슷비슷한데요. 산과 논밭만큼이나 흔한 것이 아파트입니다. 서울 톨게이트를 빠져나와 경기 지역을 쭉 내달리다 보면 띄엄띄엄 아파트 단지가 펼쳐지곤 하죠. 누군가가 살고 있을 집들. 하지만 그것은 때로 평범한 집을 벗어난 모습이기도 합니다. 이를테면 허허벌판의 땅 위에 덩그러니 세워진 아파트 같은 것이요. 사람이 모여드는 주요한 생활권을 다소 벗어난 그 모습은 기묘하게 다가옵니다. 어떤 사람들이 살까? 살만할까? 그런 생각도 들고요. 물론 문제는 없겠지요. 대형마트며, 관공서며, 직장이며, 서울이며 다 차로 다닐 수 있는 근거리에 있는 걸요. 기묘하기보다는 오히려 평범하다고 해야겠죠. 이런 삶은 많은 사람들이 꿈꾸는 바입니다. ‘지은’과 ‘영준’이 그러했듯이. 하지만 꿈의 공간인 아파트에서의 머묾에도 균열이 찾아듭니다.

 

아이는 사흘만 머물다 갈 거라고 했다. (254쪽)

 

<예언의 땅>의 첫 장에는 ‘아이’가 등장합니다. ‘지은’과 ‘영준’ 부부에게 사흘 간 맡겨진 ‘아이’는 ‘영준’의 조카로 이혼한 동생 부부의 딸입니다. ‘지은’의 시부모님이 데려다 키우고 있지요. ‘아이’를 잠시 돌보게 된 ‘지은’은 그동안 이 아파트로 이사 오기까지 지나온 시간을 떠올립니다. 내 집 장만의 꿈을 가지고 둘 다 아등바등 살았습니다. 삼십사 평형 아파트가 지어질 곳은 “흙먼지밖에 날리지 않았지만, 그들에게는 암시와 예언으로 가득한 땅”(255쪽)이었죠. 헌데 그 땅을 갖겠다고 바쳐진 시간 동안 그들은 많은 것을 잃었습니다. ‘어머니’의 죽음, 유산된 뱃속 아이, 벌어진 부부관계는 ‘지은’을 무력하게 만들었어요. 지친 사람은 ‘지은’만이 아닙니다. ‘영준’도 “벽에 갇혀 있는 기분”(269쪽)을 느끼죠. 두 사람에게 남겨진 실체라곤 내 집이라는 예언이 성사된 아파트뿐입니다.

 

‘아이’가 돌아간 후, ‘영준’은 비로소 그들의 것이 된 아파트에서 결별을 고합니다. 일찍이 암시된 장면인 양 두 사람은 아무도 놀라지 않습니다. 침묵합니다. 이 순간, ‘지은’이 “영준과 손을 잡고 저 땅 위를 걸었”(272쪽)던 언젠가를 생각하는 연유는 무엇일까요? 그때 그 텅 빈 땅에 떠돌던 예언은 집과 삶에 관한 것, 두 가지였을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집에 딸린 옵션처럼 얽혀버린 삶은 이제 아파트와 분간이 되지 않아요. 분간하기에는 “너무 많은 시간이 지난 것 같”(272쪽)습니다. 정한아는 <예언의 땅>을 통해 보여주고 싶었던 게 아닐는지요. 언 땅에서 시작된, 텅 빈 아파트가 되어 버린 삶을요. 꿈의 이면을요. ‘영준’은 ‘지은’의 질문에 무어라 답할까요? 이런 삶의 공모자인 우리는 답할 수 있을까요?

 

지은은 영준에게 묻고 싶었다. 얼어붙은 땅이 녹기까지는 얼마나 많은 시간이 걸리는지, 그 속에서는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그것이 삶인지, 죽음인지, 긴 잠인지, 아니면 곧 깨져버릴 꿈인지. (272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정한아

1982년 서울 출생. 건국대 국문과를 졸업하고 동대학원 박사과정 재학중. 대산대학문학상, 문학동네작가상 수상. 소설집 《나를 위해 웃다》, 장편소설 《달의 바다》, 《리틀 시카고》가 있다.

 

* 현재까지 발표작

<예언의 땅> | 《문학동네 2013년 봄호》에 게재

《리틀 시카고》 | 문학동네 | 2012

《나를 위해 웃다》 | 문학동네 | 2009

《달의 바다》 | 문학동네 | 2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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