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안은 없다》 - 마가렛 대처는 틀렸다, 대안은 있다

 

 

베르트랑 로테·제라르 모르디야 | 《대안은 없다》 | 함께읽는책 | 2013

 

2년 전, 우리는 놀라운 광경을 목격했다. 자유시장경제의 선봉에 서있던 미국에서 늘어가는 빈부격차와 금융기관들의 부도덕성에 대한 대규모 항의 집회가 열렸다. 그것도 금융자본의 심장부인 월스트리트에서. 자본의 탐욕과 횡포에 분노한 사람들이었다. 보이지 않는 착취와 억압에 짓눌려있던 시민들이 금융위기를 계기로 눈을 뜬 것이다. 그들의 문제의식은 명료했다. '공정한 사회'였다.

 

미국 정부는 2008년 발생한 리먼 사태 이후 엄청난 공적자금을 쏟아 부었다. 사회안전망을 확충하거나 공교육 인프라를 구축해야 할 때만 해도 국고는 늘 텅텅 비어 있었는데(?) 말이다. 이는 거의 모든 다른 국가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돈잔치를 벌이느라 상황을 악화시킨 범인들은 따로 있었지만, 그로인해 국민들이 짊어질 무거운 짐은 안중에도 없었다. 도대체 왜? 금융 시스템을 구해내기 위해서! 소수의 금융 재벌을 보호하기 위해서!

 

역사가 인류에게 남긴 교훈은 분명했다. 흑자가 늘어나면 국가 타도를, 적자가 심해지면 국가 만세를 외치는 법이었다! (90쪽)

 

일련의 과정에 대해서 생각해보자. 대안은 없었는가. 아니면 대안을 생각할 수 없었는가. 그것도 아니면 대안이 싫었는가. '바보들이 지껄이는 소음과 격정에 찬 무의미한 이야기'라는 다소 도발적인 부제를 전면에 내세운 책 《대안은 없다》는 바로 이 근원적인 물음을 던진다.

 

신자유주의자들이 사랑하는 '티나'와 '낙수 효과'

 

언젠가부터 신자유주의를 옹호하는 자들은 '대안은 없다'는 수사적인 선동문구를 애용하기 시작했다. 그 기원에는 철의 여인, 마가렛 대처가 있다. 그녀의 별명 티나(TINA)는 대처리즘의 결정체인 이른바 'There Is No Alternative(대안은 없다)'의 머리글자를 따서 만든 신조어였다. 티나는 이념 설파를 위한 이데올로기 무기였다. 숙의의 과정도, 민주적 의견 교류도 없었다. 대안은 없다고 못을 박아버리면, 상대방의 의견에는 귀를 닫겠다는 말이다. 이는 '자유'를 주장하면서 '자유'를 박탈하는 것이다.

 

아, 물론 그들도 무작정 티나만 부르짖지 않는다. 나름대로 열심히 이유를 가져다 붙인다. 대표적으로 '낙수 효과'를 들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도 어떤 분이 '낙수 효과'를 참 좋아하셨다. 책에서는 그 구동원리에 대해 친절히 설명해주고 있다.

 

이를테면 낙수 효과란 이런 것이다. 우리 눈앞에 피라미드가 하나 있다고 가정해보자. 피라미드 맨 꼭대기에는 백만장자와 투자 은행 경영자, CAC40(프랑스 대표 40개 기업의 주가를 가중 평균해 만든 지수) 상장 기업 사장이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그들은 무거운 돈다발에 깔려 죽을 판이 된다. 호주머니까지 꽉 차서 더 이상 돈을 찔러 넣을 자리마저 없다. 그러면 넘쳐난 돈이 바닥으로 흘러내려 피라미드 아래에 있는 가난한 사람들의 머리 위로 쏟아진다. 팁, 자선, 기부 등 온갖 형태의 은혜로운 빗줄기가 가난한 자들의 머리를 적시는 것이다.(78쪽)

 

그렇다면 이 '은혜로운 빗줄기'는 현실에서 어떤 식으로 구현되는가.

 

어느새 자선은 평등을 대체했다. 이러한 풍경을 보고 있자니 흡사 19세기로 되돌아간 것만 같았다. 이웃들이 훤히 지켜볼 수 있게 자기 집 대문 앞에 가난한 사람들을 길게 줄 세워 놓고 수프를 나눠 주던 과거 부르주아의 행태를 떠올리게 했다. '나눔'은 부르주아들에게 정신적 평온을 가져다주었다.(78-79쪽)

 

대안은 없었지만 변명은 있다?

 

자, 이제 생각해보자. 우리 주위에 얼마나 많은 분야에서 대안을 찾을 수 없는지. 도대체 이토록 다양화된 세상 속에서 정녕 다른 선택지를 깡그리 무시할 수 있는 모범답안이 존재할 수 있는 것인가. 그들에 따르면 원자력, 임금동결, 걸프전, 민영화, 규제 철폐, 감세, 정리해고에 대한 대안은 없단다. 하지만 반대로 그린에너지, 임금인상, 평화해결, 공영화, 규제 강화, 증세, 고용안정에 대한 대안은 참 많다.

 

그리고 '대안이 없어야' 하는 분야는 점점 늘어나고 있다. 이제 티나만으로는 힘이 달린다. 그래서 설득력을 확보하기 위한 작업이 동시에 진행된다. 티나의 효과를 톡톡히 본 세력은 언어의 힘을 깨달은 것이다. 바로 실행에 옮겼다. 그리고 야금야금 사람들의 사고를 좀먹기 시작했다.

 

일테면 평등이란 단어는 '형평성'이란 단어로 대체됐다. 임금은 '노동 비용'으로 바뀌었다. 사회보장제도 납입금은 '사회 부담금', 이윤은 '부의 창출'로 둔갑했다. 대량 해고는 처음에는 '사회 대책'이라는 다소 파렴치한 단어로 불리다가, 이내 '고용 구제책'이라는 훨씬 파렴치한 표현으로 바뀌었다. 조합원은 졸지에 손톱, 발톱 다 빠진 온순한 '노사 파트너'로 전락했다.(23-24쪽)

 

언어가 본연의 의미를 잃어 버렸다. 교묘한 계략이 진행되는 과정은 항상 같다. 식상한 레퍼토리지만 그만큼 잘 먹혀들어간다는 반증이기도 하다. 이 모든 것들은 '대안은 없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다 틀리면? 대안은 없다며 호언장담했던 일이 종국에는 명백히 잘못됐음을 깨닫게 될 때는? 걱정은 없다. 국가가 있기 때문이다. 울고불고 국가를 찾으면 된다. 국가는 막대한 혈세를 들여 기꺼이 그들을 구제해줄 것이다. 그전까지는 마음 놓고 실컷 챙기는 데만 집중하면 된다.

 

먼저 위기가 절정에 달하자 특권층은 말도 안 되는 변명을 더듬더듬 주워섬겼다. 그 다음 국민의 분노를 잠재우고 시간을 벌기 위해 애꿎은 희생양을 국민 앞에 끌어다 앉혔다. 마지막으로 전문가들이 모든 사태를 정당화하고 현 체제를 계속 유지하게 해줄 수 있는 그럴듯한 각본을 꾸며 냈다.(99쪽)

 

이 길을 쳇바퀴 돌 듯 순환하는 것 외에 대안은 없는 것인가. 진짜 없는가. 없다면 너무 억울하지 않은가.

 

희망의 시작은 '대안은 있다'

 

'대안이 진짜 없을까'라는 의문 자체로 희망은 시작된다. 협동조합을 보라. 시민햇빛발전소는 또 어떻고. 대안이 없다는 생각에만 머물러 있었다면 과연 이렇게 훌륭한 선택지를 볼 수 있기나 했을까. 의미가 퇴색된 언어에 휘둘려 그들이 말하는 대로 '대안이 없다'고 곧이곧대로 믿는다면, 이제 막 뿌리를 내리기 시작한 사회복지와 대안경제는 질식해버리고 말 것이다.

 

그들은 '대안은 없다'에 새로운 색을 덧입혔다. 이미 이성을 상실할 대로 상실한 시민들에게 이번에는 이성 대신 감성에 호소하기로 했다. 포퓰리즘을 공포 현상으로 몰아세우며 여론 몰이에 나선 그들은 국민들이 긴축 재정에 대해 조금이라도 거세게 반발한다 싶으면 금세 겁탈당하기 직전의 처녀처럼 겁에 질린 괴성을 고래고래 질러 대며 공포감을 조장했다.(171쪽)

 

부유층은 자신들만의 의료와 교육을 발전시키며 극빈층을 텅 빈 국고 앞에 무력한 상태로 내버려둘 것이다. 그리고 그 칼끝은 서민층과 중산층을 향해 서서히 죄어올 것이다. 듣기만 해도 정신이 혼미해지는 주문, '대안은 없다'. '대안은 없다'로 사고가 굳는 순간, 대안은 정말 '영원히' 없어진다. 의심하라. 대안은 분명히 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레토최적'님은?
보리처럼 살고 싶은 사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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