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도 아시다시피》 - 나는 당신을 몰라요

 

 

천운영 | 《엄마도 아시다시피》 | 문학과지성사 | 2013

 

여기, 한 여자로부터 태어난 아이가 있다. 아이는 그이고 그녀이며 누군가의 아비이거나 어미이고 또 나이다. 모두, 엄마를 가진 사람이고 한 여자를 엄마이게 한 사람이다. 그런가 하면 모든 엄마는 한 여자로부터 태어난 아이이고 한 여자이고 그녀다. 한 여자를 엄마이게 하고 엄마가 된 여자다. 나이 들어 엄마가 된 여자, 엄마로 나이든 여자. 그녀가 엄마다. 그리고 너는, 아직 엄마가 아니다. 엄마를 가진, 엄마가 되지 못한 여자다. 나이 드는 여자다. 

 

   (…) 너는 세면대를 두 손으로 짚고 서서 눈을 지릅뜬다. 거울을 쏘아본다. 거울 속에 화장을 짙게 한 나이 든 여자가 너를 노려보고 있다. 노기인지 부끄러움인지 모를 안면의 홍조. 거울 속에서 네가 맞서려 하는 것은 너를 지겨워하는 너의 나이 든 얼굴이다. 무언가 뜻대로 되지 않아 잔뜩 부아가 난 노인네의 얼굴. 너의 양 어깨에 올라타고 네 목줄을 거머쥘 노인네.   

 

   너는 세면대 물을 틀고 손을 갖다 댄다. 살 표면에 응고되어 있던 피딱지가 물에 녹으면서 피가 새어 나온다. 너는 어깨를 옴츠리며 눈살을 찌푸린다. 손바닥을 들어 입술에 갖다 붙인다. 혀를 살짝 내밀고 눈을 감는다. 너는 피의 맛을 음미하고 있는 듯 보인다. 달고도 시린 고통의 맛. 너는 거울 속의 노인을 향해 미소를 지어 보인다. 무언가 우기고 싶어 하는 인위적이고 어색한 미소다. 심호흡을 하고, 옷매무새를 가다듬고, 화장을 고친다. (65-66쪽, 남은 교육)  

 

너는 엄마와 대치한다. 젊음을 잃고 사랑받지 못한 채 엄마라는 허울을 뒤집어쓴 늙은 여자를 응시한다. 그녀의 상실감을, 분노를 마주한다. 엄마는 너를 본다. 자신이 잃은 젊음을 상기한다. 여자인 채로 남은 스스로의 욕망을 확인한다. 그런 엄마를 너는 본다. 그녀가 “너를 노려보고 있다.” 무수한 엄마들과 엄마가 아닌 여자, 그 사이에 ‘너’가 있고 그 모든 여자들을 향한 《엄마도 아시다시피》의 시선이 있다. 

 

   (…) 내 속에서 나온 기형아를 부둥켜안고 적잖이 속을 썩였다. 숨기고 변명하고 부정하고 타박하고. 너 죽고 나 죽자는 심정으로 절벽 끝에 서기도 했다. 그런데 절벽 끝에서 본 그 기형아들의 얼굴이 모두 내 얼굴이었다. 나를 닮은 것이 아니라 바로 나였다. 내가 낳은 기형아들을 꽉 끌어안고, 뛰어내린 후에야, 내가 어떤 사람인지를 알게 되었다. 내가 그들의 창조자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들이 바로 나를 가르치는 엄마였다. 

 

   다행이었다. 참으로 다행이었다.
   엄마가 있어서. 

 

   (…) 나는 나의 엄마로, 나의 자식으로, 당신의 엄마, 당신의 자식으로. 나의 장래 희망은 여전히 엄마다. 장차 커서 좋은 엄마가 되고 싶다. (277-278쪽, 작가의 말)

 

강요된 애정과 책임감에 짓눌려 악으로 뭉치고 비난과 욕설로 쏟아져 나온 그녀들의 욕망이 낯설다. 너는 그녀를 알지 못했고, 또한 알아채지 못했다. 엄마라는 화장의 얼룩을, 그 얼룩의 일그러짐을, 그것을 지우고 드러난 여자의 맨얼굴을. 그 모든 얼굴이 바로 너 자신이라는 사실을. 그리고 나는, 그런 너를 알지 못했다. 모든 엄마를 닮고 그 엄마를 닮은 나일 수 있는 너를.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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