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법의 풍경》 - 권력화된 법을 우리 가까이로

 

 

김두식 | 《헌법의 풍경》 | 교양인 | 2011

 

이 책을 읽는 내내 '전문집단은 지식을 독점함으로써 하나의 계급이 되고, 독점된 지식은 점점 무식해진다.'는 말이 떠올랐다. 이반 일리치가 한 이야기인데 독점된 지식은 경계를 분명히 함으로써 지평을 넓힐 수 없다는 의미일 것이다. 당장에 내가 속해 있는 의학이란 분야도 서양의학을 습득한 의사들이 지식을 독점하며 다른 의학과의 연관성이나 제 3의 가능성을 철저히 배제시킨다. 독점된 지식은 다소 일방적인 성격의 공급체계를 통하여 권력이 되고, 경계 지워진 사고는 다른 가능성과 다양성을 무시한 채 고집스럽게 자신을 정당화시키기에 급급하다.

 

법 역시 전문가집단의 소유물이 된 채, 좀처럼 보통 사람들과 친해지지 않는 모습이다. 오히려 독점을 통한 권력을 더욱 강화시킴으로써 거리감을 두려하는 느낌이다. 의학 역시 비슷한데, 용어와 개념을 이해하기 어렵게 만들어 거리감을 공고화 한다. 조금 다른 면으로는 우리나라가 법 전문가들을 배출하는 방식이 상당이 획일화되고 좁은 것을 들 수 있다. 사법연수원이라는 유일한 통로를 통해 나온 사람들의 구분법은 단지 졸업기수 차이밖에 없다. 그렇게 얽힌 사람들이 판사, 변호사로 나뉘는 까닭에 법적 판단에 개인적 이해가 얽히지 않을 수 없는 구조를 형성한다. 법의 객관성과 공정성에 대해 다시금 고민하게 만든다.

 

이와 같은 내부의 한계를 지닌 법은 사법독립이라는 면에서도 그리 당당하지 못했다. 법체계와 정치권력 사이의 거리두기에 실패한 사법체계가 이중으로 행해온 지금까지의 모습은 그 자체로 권력과 폭력이었다. 그리고 이 권력과 폭력이 쉽게 이해할 수 없는 단어와 개념들로 채워졌을 때, 두려움은 극대화된다. 그런 법에 인민이 친숙해질 일은 만무할 뿐이다.  법에 대한 두려움과 회피는 결국 자신이 법의 주인이라는 사실과 법을 통해 주어진 권리의 망각으로 이어진다.

 

망각이 폭력을 더 키워온 것 역시 사실이고 역사다. 법의 진정한 목적은 평화라 이야기한다. 동시에 평화를 얻는 수단은 투쟁이건만, 법이 말하는 우리의 권리와 법에 대한 우리의 권리를 망각한 현실은 법이라는 폭력을 더욱 키웠을 뿐이다. 《헌법의 풍경》이 처음 출간된 게 8년 전인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내가 이 책의 내용에서 어떤 신선함, 자각 같은 것을 느낀 것은 나 역시 망각의 늪에서 유유자적하고 있었던 게 아닐까 되돌아보게 한다. 동시에 참 답답했던 최근의 현실 안에서도 사람들이 점점 변화에 대한 여론을 만들어내고 소소하지만 다양한 행동을 만들어내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가 점점 법이라는 권력화된 타자를 우리 가까이로 조금씩 끌어들이려 노력하고 있다 느끼게 된다. 이 책이 그런 노력에 있어 근본적 이해를 도울 수 있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민욱아빠’님은?
현직 외과의사입니다. 서울에서 수련생활을 마치고 제주로 내려와 생활한 지 1년 6개월이 되어가는 '제주이민자'입니다. 의사라는 직업을 가지고 산다는 것의 많은 의미를 생각해보려 노력하고, 계급적인 견지에서 사회를 어떻게 바라보고 행동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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