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어떤 길에서 본 각자의 얼굴, 그 기록 - 《백 행을 쓰고 싶다》의 소설가 박솔뫼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이미지 제공 | 문학과지성사

 

어느 날은 "아무도 만나지 않았다."라고 생각합니다. 다른 길 위에서도 서로에게 접어들 수 있다면, 의미가 될 수 있다면, 그것이 사람과 사람의 만남일 텐데요. 사실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수많은 지나침이 무의미하다는 것을요. 같은 길 위에 있다 해도 만나지지 않을 것을요. 하지만 단지 보았을 뿐인 얼굴들을 떠올려 볼 수 있을 겁니다. 만남의 순간을 그려 볼 수 있을 겁니다. 이야기는, 어떤 소설은 때로 그렇게 태어납니다. 이 상상의 기록을 통해 우리는 더 가까이 만나지기도 할 테죠. 《백 행을 쓰고 싶다》가 그것을 확인시켜줄지도 모르겠네요. 소설을 쓴 박솔뫼 작가님부터 만나 볼까요?

 

 

반디 | 《백 행을 쓰고 싶다》가 출간되었습니다. 작가님의 두 번째 책인데요. 첫 번째 책인 《을》과 동일하게 장편소설입니다. 두 편의 장편소설이 쌓였다는 건 소설집과 또 다른 무게감으로 다가올 듯합니다. 탈고하고 책을 접한 소감이 어떠신지요?

 

박솔뫼 | 네. 사실 첫 번째 두 번째 책 모두 장편이라 소설집이 새로 나온다면 그게 좀 새삼스러운 기분일 듯합니다. 책을 내기까지 이런 저런 일들과 시간들이 있어서 나왔구나 결국 드디어 이런 기분이었습니다. 그리고 책이 손에 들어오는 느낌이 좋았습니다.

 

   "좋아해."
   규대의 입술 사이에서 더운 바람이 나왔다. 오아애의 입 모양으로 흘러나온 바람은 천천히 유유히 내 귓가로 들어갔다.
   "어떻게? 얼마나?"
   "책 한 권이 다 끝나고 나서 다음 책을 쓰는 만큼 사랑해."
   "자세히 설명해봐."
   "그러니까."
   "이런 이야기야."
(68쪽, 《백 행을 쓰고 싶다》 중에서)

 

반디 | 《백 행을 쓰고 싶다》는 책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소설에서 '책이 된다'라는 것은 삶의 완성을 말하는 비유로도 느껴집니다. 뭔가를 '쓴다'는 것이 '산다'와 겹쳐 보이기도 하고요. 이 말을 빌리자면 대부분의 인물이 자신의 책을 잘 써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그것이 단지 그들의 탓만은 아닌 것 같아요. 책이 될 수 없는, 그들이 사는 세계는 어떤 곳인가요?

 

박솔뫼 | 결국에 이러저러한 장면들과 시간들이 있지만 슬프고 쓸쓸하면서 거친 곳이었으면 혹은 그런 글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반디 | 그들의 세계는 기도의 학교, 바다, 도시, 수도 등으로 구체화 됩니다. 《백 행을 쓰고 싶다》를 이루는 이들 장소는 낯설고 멀게 느껴지다가도 우리 사는 곳과 닮은 데가 있어요. 서울, 부산, 인천 등지가 떠오르기도 하고요. 실재하는 배경을 참고하셨는지 궁금한데요.  참고하셨다면 그곳의 어떤 정서를 가져오고자 하셨나요?

 

이곳은 바닷가 큰 도시로 도시의 어디에서나 짠냄새가 떠돌았다. 짠냄새, 바다냄새, 바닷가냄새, 해초와 모래가 섞인 냄새였다. 학생들은 옷가게에 가듯, 카페에 가듯 바다에 갔다. 시험이 끝나거나 방학이 시작되기 전날이면 나는 대형 쇼핑몰에 갔다. 쇼핑몰은 인공섬에 있었다. (…) 이상하게도, 연못 길에서는 바다냄새가 나지 않았다. 1년에도 몇 번씩이나 그곳에 가서 바다냄새가 나지 않는구나, 바다냄새가 나지 않네 하고 혼잣말을 했다. 도시에서 유일하게 짠냄새가 나지 않는 곳에 서서 바다를 보며 시간을 보냈다. 바다는 언제나 깊고 무섭고 크고 이국적이었다. 어느 바다건 바다는 모조리 이국적이었다. 모든 이국적인 것들은 사람을 초조하게 한다. 어디에서나, 어딘가가 있구나 하는 것을 알려주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언제까지나 이곳에 서 있을 것 같다. 언제까지나, 시간의 끝을 늘리고 늘려서, 언제까지나의 언제까지나 이곳에 서 있을 것 같았다. (21쪽, 《백 행을 쓰고 싶다》 중에서)

 

박솔뫼 | 다 어느 정도는 영향을 주었겠지만 직접적으로 구체적인 장소를 떠올리진 않았습니다. 부산이냐는, 부산과 비슷하다는 질문은 받았지만 딱히 부산을 생각하며 쓰지는 않았습니다.  평소 바다가 있는 도시들을 좋아하기 때문에 바다 냄새가 나는 도시들을 자주 생각해서 여러 곳들이 겹쳐지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서울 도시사 관련 책을 읽으며 밤섬에 관해 읽었던 것이나 고베에 갔을 때 보았던 쇼핑몰 같은 것도 그 중 하나이고요. 물론 서울은 바다가 없지만요.

 

 

반디 | 소설 속에서 가장 눈에 띄는 인물은 '규대'입니다. 무기력한 인물들 사이에서, 그런 세계에서도 거의 유일하게 바깥과 싸우고 있다고 느껴지는 사람이에요. "백 행을 쓰고 싶다."로 시작하는 이 소설에서 "책 한 권이 다 끝나고 나서 다음 책을 쓰는 만큼의 사랑"을 약속하는 사람이기도 하고요. 작가님께서 바라보는 '규대'는 어떤 사람인가요?

 

박솔뫼 | 어떤 거리에서 지나칠 것 같은데 규대는 계속 거리를 헤매다가 가끔 집에 있고 다시 거리로 나가고 그러다 다시 또 지나칠 것 같은 이미지가 있습니다. 그런 것들을 떠올리며 쓴 것 같습니다.

 

반디 | '규대'뿐만 아니라 '원대'와 '윤희' 등 여러 인물의 이야기가 맞물려 전개됩니다. '규대'가 '나'에게 들려주는 긴 이야기에는 '규오'와 '대니얼'이라는 허구의 인물들이 나오고, 후반부에는 잠깐이지만 강한 인상을 남긴 '연주'와 '창희'가 등장합니다. 그런 만큼 소설을 탈고하고도 미련이 남고, 다른 소설에서 더 쓰고 싶은 인물이 있다면 누구인가요? 그것은 어떤 이야기가 될까요?

 

박솔뫼 | 창희에 대해 좀 더 쓰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창희가 아주 잘 사는 이야기일 듯 합니다.

 

원대와 같은 병실을 쓰는 환자는 열다섯 살짜리 남자애였다. 그 애는 작은 동그라미를 무서워했다. 남자애의 쌍둥이 남동생은 심장병이었나 백혈병이었나 아니 어쩌면 들어보지도 못한 희귀병으로 신생아 때부터 병원에 드나들었다. 엄마와 매일같이 남동생을 지켜야 했던 그 애는 병실에서 시작된 기억들뿐이었다. 커다랗게 부풀어 오른 또래 아이들의 반투명한 머잇속 종양들과 친절한 의사가 현미경에 눈을 대보라고 해서 본 암세포를 그 애는 잊을 수가 없었다. 그 애의 이름은 창희였다. (235쪽, 《백 행을 쓰고 싶다》 중에서)

 

반디 | 동시대에도 많은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 많은 이야기 중 무엇을 접하고 계실지 궁금합니다. 이야기라면 소설뿐만 아니라 시도 빼놓을 수 없죠. 작가님은 왠지 시와 가까이 지내실 것 같습니다. 특히 《백 행을 쓰고 싶다》의 어떤 대목들은 한 편의 시처럼 느껴지기도 하는데요. 가능하다면, 훗날에 자신의 소설에 꼭 한 번 등장시키고 싶은 시가 있으신지요?

 

박솔뫼 | 이전에 《뿔바지》라는 시집을 번역한 김태용 님이 저에게 저의 문제점은 시를 읽지 않는 것이라고 한 적이 있습니다. 아주 좋아하는 시집들이 몇 개 있고 시인들도 몇 분  계신데 시집을 다른 사람들보다 많이 읽지는 않습니다. 가끔 오래 읽는 것들이 있고요, 시를 좀 더 읽고 이런 질문에 대답해야 할 것 같습니다.

 

글을 읽고 눈앞의 세계가 대체 어떤 것인지, 당신이 느끼고 있는 것이 진짜인지, 아니라면 무엇인지를 묻게 만드는 것, 그렇게 흔드는 것, 나아가게 하는 것, 나는 그런 글에 영향을 받고 그런 글의 도움을 받는다. 뭐 당분간은 그럴 것이라고 생각한다. (444쪽, 《세계의 문학 2011년 가을호》 중에서)

 

반디 | 독자와는 주로 지금까지 출간된 장편소설을 통해 만나 오셨습니다. 더 관심이 깊은 분들이라면 '젊은작가상'이나 '웹진문지문학상' 등의 수상작품집, 문예지, 또 다른 경로에서 작가님의 단편소설을 접했겠지요. 발표하신 단편소설이 꽤 되는 줄 압니다. 그 중에서도 어떤 소설에 애정을 갖고 계신지 궁금하고요. 첫 소설집 출간은 언제쯤이 될지도 듣고 싶습니다.

 

박솔뫼 | 목표는 올해 출간입니다. 그렇게 되길 간절히 바라고 있습니다. 그게 다 나름대로 다른 의미에서의 애정이 있어서 하나를 꼽기가 힘드네요. 쓰면서 재밌었던 것은 <안해>와  <너무의 극장>입니다.

 

현재 우리가 극장 밖에 있다면 그러니까 셰익스피어의 세계 밖에 있다면 나는 아주 가볍게 종이를 찢을 것이다. 하지만 우리가 여전히 몹시 셰익스피어 안에 있다면 나는 트로피를 뺏는다. 혹은 뺏는 것이 늦어 죽임을 당합니다. 아, 정녕 그뿐이란 말인가 탄식하며 고개를 흔듭니다. 그뿐이 아닌 것 또 다른 방법 그 모든 것을 뒤집을 만한 것. 중얼거리며 고개를 계속 흔듭니다. 그리하여 결국 결정을 내린 나는 너무하지 않은 것을 향해 달려나가며 발?을 살피고 남자애의 어깨 너머를 주시해. 그러다 그곳에 다다르면 언제고 종이를 찢을 것이다. 그럴 것이다. 그렇게 뛰어가다가 죽지도 죽이지도 않았습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곳에 닿으면 말이야. 그러니까 계속 달린다. 계속 빠르고도 빠르게 할 수 있는 가장 너무한 것을 향해. 동시에 가장 너무하지 않아서 너무 너무하지 않은 것을 향해. 달린다. 달려 나간다. (110쪽, 《제3회 웹진문지문학상 수상작품집》, <너무의 극장> 중에서)

 

반디 | 연수차 독일 베를린에 가 계신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문화재단의 지원을 받아 가시는 만큼 글쓰기나 책 읽기의 계획을 따로 가지고 계실 것 같은데요. 그런 것이 꼭 아니라도 작가님께서 앞으로 서너 달이 될 긴 여름을 어떻게 보내실지 '시시콜콜하게' 들려주세요.

 

박솔뫼 | 온 지 한 달 되었네요. 저도 잘 보내고 싶은데 주변에서 가기 전부터 잘 보내라 좋겠다 부럽다 이런 이야기를 하도 많이 해서 뭘 해야 하나 이런 생각을 온 직후로는 많이 했는데요. 이제서야 제가 어딜 가든 특별히 뭘 하는 사람이 아니라는 오래전부터 아주 잘 알고 있던 사실을 다시 깨달았네요.  그냥 걷고 좀 읽고 멍하게 있는 시간들을 보냈고 보내고 있고 앞으로도 그러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리고 저는 여름사람이라 여름이면 대체로 즐거운 기분으로 보냅니다. 여름은 최고!

 

 

반디 | 소설의 도입에 작가님은 "세상 어딘가에서 백 행을 쓰는 사람이 있을까? 있다면 어떻게 쓰고 있을까."라고 쓰셨습니다. 《백 행을 쓰고 싶다》를 읽은 독자라면 '백 행을 쓰고 싶다!'라고 생각하는 분도 있을 것 같은데요. 세상 어딘가에서 백 행을 쓰는 사람, 소설처럼 긴 이야기를 쓰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박솔뫼 | 어느 거리에서도 우리는 절대로 만나지 않겠지만 어떤 길에서 우리는 각자의 얼굴을 보기도 합니다. 건강히 지내세요.

 

오늘도 내일도 모든 거리와 골목에는 사람들이 입을 벌리고 손으로 이마를 짚고 달려가기도 한다. 화를 내기도 하는 것처럼. 이제 그만두고 싶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쓰고 싶다. 이제 그만두고 싶다고 쓰는 사람을 본다. 나는 모든 것을 본다. 그 모든 것을 본다. 어제처럼 오늘도. 내일처럼 어제도. (242쪽, 《백 행을 쓰고 싶다》 중에서)

 

박솔뫼

 

2009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 수상. 장편소설 《을》과 《백 행을 쓰고 싶다》를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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