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일상의 삶’이 담긴 서울 음식을 찾아서 - 《서울을 먹다》의 기행작가 정은숙

 

편집·정리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도서 이미지 및 사진 제공 | 따비

 

만화에서 그렇듯, 사람의 속마음이 구름 모양의 말풍선으로 머리 위에 떠 보인다면 정오쯤 그 내용은 대동소이할 것입니다. 뭐 먹지? 오늘 뭐 먹을까? 먹을까? 말까? 대체 뭘 먹자고 하지? 이 비슷비슷한 질문들. 헌데요. 답은 다 제각각이란 말이죠. 술 마셔서 해장국을 먹고 싶고, 출출해서 떡볶이를 먹고 싶고, 날 더워서 냉면을 먹고 싶다고들 하니까요. 서울에서 먹고 살겠다고 아등바등하는 흔하디흔한 사람들. 이 사이에서 ‘나’를 보다 ‘나’이게 하는 힘, ‘나’의 입맛대로 살게 하는 힘, ‘나’의 일상을 중심에 놓는 힘은 한 끼 식사일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밥상들이 모여 오늘도 우리 사는 곳에 또 다른 색을 더합니다. 《서울을 먹다》에 등장하는 열일곱 가지의 음식이 여태껏 해온 것처럼요. 그 생생한 이야기를 들려주실 첫 번째 안내자, 정은숙 작가님과 이야기 나눠 봤습니다.

 

반디 | 《서울을 먹다》는 같은 음식을 놓고 두 분 작가님이 각기 쓴 글을 엮은 구성인데요. 두 분의 글은 확실히 그 결과 맛이 다릅니다. 머리글에 보면 황교익 작가님께서는 “인지의 즐거움”을, 정은숙 작가님께서는 “서정의 공감”을 맡았다고 하셨습니다. 이와 관련하여 정은숙 작가님께서는 어떤 면에 주력하여 글을 썼는지 조금 더 부연해 주신다면요?

 

정은숙 | 《서울을 먹다》에는 17가지의 음식이 나오지요. 그 음식들이 있는 공간, 여기서 공간이란 음식을 먹을 수 있는 공간뿐만 아니라 그 공간을 아우르는 거리, 골목까지 포함되죠. 공간이 갖고 있는 맛의 풍경, 그리고 그곳에서 음식을 만들어 온 사람들 그리고 그 음식을 먹고 즐겨 왔던 사람들의 이야기에 중심을 두었지요. 그동안 잊고 있었던 그 시절에 대해, ‘아 그랬지’, ‘그 땐 그랬구나’라는 서정의 공감을 유발하는 것이 저의 역할이었죠. 추억을 떠올릴 수 있고 그 시절을 상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족하지만 그곳에 가서 그 음식을 먹고 싶다고 생각할 수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으로 써 내려갔죠.

 

반디 | 《서울을 먹다》에 실린 작가님의 글에서는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안타까움이 느껴집니다. 일례로 재개발 탓에 흩어져버린 왕십리 곱창의 이야기나 “훗날에, 이 책이 예전 서울의 모습을 찾아보는 사료로만 남는 일이 없었으면 한다.”라는 말이 그 심정을 대변하고 있는데요. 세상 모습이 급속도로 변화하는 이때에 왕십리 곱창과 같은 음식을 지키자면 음식과 그 문화를 대하는 우리들에게는 어떤 자세가 필요하다고 보시는지요?

 

정은숙 | 《서울을 먹다》의 음식을 선정하는 기준 중에 가장 중요한 것은 서울에 살고 있는 시민들의 ‘일상의 삶’을 담고 있는 음식이어야 한다는 것이었죠. 우리의 ‘일상의 삶’과 연결된 음식 그리고 공간에 대해 우리는 등한시하는 경향이 있죠. ‘무조건 발전’을 외치던 시대를 지난 간 지금에도 서울사람들이 만들어 낸 공동체의 산물인 음식골목 등이 보잘 것 없다하여 너무 쉽게 사라지는 것이 안타까워요.

 

잘 갖추어진 관광명소뿐만 아니라 보통사람들의 삶의 모습이 오롯하게 숨 쉬는 뒷골목, 시장, 그리고 음식골목도 궁궐만큼 매력적이고 관광적 가치가 있다는 것을 모르는 것 같아요. 문화는 한 방향이 아니라 다양한 방향으로 가는 것이 좋죠. 전통도 중요하겠지만 우리 주변의 것들, 일상의 삶에 대한 관심을 갖는 것이 필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주변음식의 속을 들여 다 보면 책에서 생활사박물관에서 느낄 수 없는 배울 수 없는 나와 밀접한 삶의 체험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알아주었으면 해요.

 

 

반디 | 《서울을 먹다》는 단순히 유명한 음식점을 나열한 책이 아닙니다. 그 음식에 얽힌 서울의 역사와 문화까지 담아냈는데요. 그렇게 작업하자면 현장 취재 외에도 별도의 공부가 필요했을 것 같습니다. 실제로 책은 여러 문헌을 인용하고 있는데요. 그 중에서도 주로 참고하신 책이나 자료는 무엇이었나요?

 

정은숙 | 《개벽》, 《별건곤》, 《삼천리》 같은 근대잡지에는 당시의 생활상을 엿 볼 수 있는 흥미진진한 기사, 수필, 소설 등이 많이 게재되어 있죠. 음식을 통해 당시의 모습을 그리는데 도움이 많이 됐어요. 《서울을 먹다》는 일제강점기 시절, 한국전쟁, 1960~80년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있죠. 객관적인 공감대를 형성하기 위해 시대별로 맛의 풍경을 담고 있는 소설, 노래, 시, 신문기사 등 찾으려고 노력했죠. 많이 부족하지만요!

 

반디 | 책은 열일곱 가지의 서울음식을 다루고 있습니다. 하지만 취재 과정에서는 훨씬 많은 음식을 만나셨을 것 같은데요. 이런저런 이유로 본문에서 빠졌지만 혹시 개인적으로 독자 분들에게 소개하고 싶은 음식이 있었나요? 이야기해주세요.

 

정은숙 | 17가지 음식 이외에 배꽃 아래에서 먹는 태릉갈비, 그리고 조선족 및 중국인이 운영하는 음식점이 모여 있는 가리봉조선족거리 음식이 취재대상이 되었으나 실제 게재되지 못했지요. 개인적으로 청계천을 배경으로 ‘추어탕’에 대해 쓰고 싶었으나 뒷심이 좀 약했습니다.

 

반디 | 취재 과정에서 만난 이들과의 인터뷰를 곳곳에 인용하고 계십니다. 음식을 만들고 먹는 것은 결국 사람의 일임을 실감케 하는데요. 취재원의 입을 여는 것이 어렵지는 않으셨는지, 가장 인상적인 취재원은 누구였는지, 그들과의 만남에서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가 있으신지 궁금합니다.

 

정은숙 | 보통 웃음을 띤 ‘안녕하세요’라는 인사말로 취재가 시작되죠. 처음부터 취재라는 것을 알리고 하는 경우도 있지만 현장에서 자연스럽게 진행되는 취재를 선호하죠. 뭐, 현장주의라고 할까. 보통의 사람들이 다 취재원이죠. 그때 단순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이 인사에요. 되도록 자연스러운 분위기 속에서 이야기를 나누기 위해 노력하죠. ‘맛있어요’, ‘이건 뭐죠’ 등의 단순한 표현에서 점점 음식에 관련된 개인사까지 얘기를 나누게 되죠. 취재를 하다보면 유달리 입을 여는데 어려운 분이 계시지만 시간을 두고 말씀드리며 대부분 잘 말씀해 주시지요. 때론 질문에서 벗어나 너무 많은 말씀을 해주셔서 곤란할 때도 있죠. (웃음)

 

 

《서울을 먹다》의 경우는 역시 어머니들이죠. ‘금천교시장 좌판에서 떡볶이를 파는 구순이 넘는 김정연 할머니와 영등포역 근처에서 감자탕을 팔 던 60대의 정순자 어머니가 유독 기억에 남아요. 김정연 할머니는 개성이 고향인 실향민으로 북녘에 두고 온 어린 자식들을 평생 그리며 홀로 떡볶이를 팔아 오셨지요. 좀처럼 이야기를 하지 않으려는 할머니의 이야기를 끄집어내기 위해 같은 실향민인 저의 어머니의 얘기까지 끄집어냈죠. 공감대 형성이 중요하니까요. 평생 북녘에 두고 온 세 아이를 그리며 그 또래의 아이들에게 떡볶이를 팔아 온 할머니. 할머니의 맘속의 자식들은 아직도 유년의 모습인 듯 했죠. 할머니의 간장떡볶이에는 자식에 대한 그리움이 가득하죠. 할머니의 인생이야기를 듣는 중 옆에 계시던 황교익 선생님이 갑자기 없어지셨죠. 나중에 알고 보니 할머니의 이야기에 뭉클한 감정을 억제하지 못할 것 같아 자리를 뜨셨다고 해요. 날카로운 비평으로 냉철하다는 인상이 강한 황교익 선생님은 의외로 감성이 넘치는 분이시죠!^^

 

정순자 어머니는 고생이라면 고생을 많이 하신 분이신데 세상을 보시는 눈이 너무 선하고 순박하시어 작은 감동을 받았지요. 사진 찍히는 것을 어린아이처럼 좋아 하셨는데. 개발이 되면서 웃는 눈매가 고운 어머니가 내놓는 감자탕은 더 이상 먹을 수 없게 되었지요.

 

 

 

반디 | 음식에 얽힌 사람들의 삶과 기억을 접하다 보면 나 자신의 이야기를 하고 싶은 욕구도 생길 것 같은데요. 이북 출신 어머니와 이남 출신 아버지 사이에서 성장하신 만큼 다양한 음식을 먹어보기도 하셨을 테고요. 《서울을 먹다》에서 신림동 순대를 소개하며 살짝 등장한 유년의 이야기처럼요. 맛에 대한 추억담이 주가 되는 글쓰기(에세이)를 본격적으로 해 나갈 생각은 없으신지요?

 

정은숙| 기회가 있을까요! 지금까지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고 글로 엮는 것이 좋은데! 허나, 기회가 된다면 맛에 대한 기억, 추억을 통해 가족이야기를 쓰고 싶어요.

 

반디 | 책이 나오기까지 두 분의 필자, 그리고 한 분의 조력자(도서출판 따비 대표 박성경)가 있었다고 하셨는데요. 차후에 세 분이 또 합을 맞추어 《서울을 먹다》와 같은 책을 기획할 계획이 있으신지요. 예를 들어 ‘부산을 먹다’라든가 ‘전주를 먹다’와 같은 발상으로 이번 작업이 계속 이어질는지 궁금합니다.

 

정은숙 | 글쎄요! 사석에서 농담으로 ‘먹다’라는 시리즈를 하자라고 얘기가 나오기도 했죠, 아직 구체적인 얘기는 모르겠네요(저만 모를 수도^^). 혹 기획된다면 한국을 두루두루 먹을 수 있겠네요. 멋진 일이네요!!! 그리고 평상시 관심이 있던 중국동북부에 파생된 조선요리, 일본에서 파생된 조선요리까지 ‘먹을 수 있다’면 좋겠네요.

 

반디 | 일본의 출판기획사에 소속되어 활동하신다고 알고 있습니다. 실제로 작가님께서는 국내보다 일본에 더 많은 책을 선보이셨죠. 주로 한국문화를 소개하는 내용이고요. 일본과 한국을 매개하는 그런 활동을 시작한 계기가 궁금합니다. 책을 발간하며 경험한 현지의 반응이랄지, 작가님의 소감 같은 것도 함께 들려주세요.

 

정은숙 | 일본에 한국관련 문화를 소개하는 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라. 처음부터 작가가 되려 한 것은 아니었어요. 1998년, 당시 제가 일본에서 돌아 와 한국에서 잠시 쉬고 있을 때였죠. 그 때, 일본 유학시절에 알게 된 출판관계자께서 아르바이트로 한국 관련 책자에 주석을 다는 일을 부탁하셨죠. 몇 번의 아르바이트를 한 후, 어느 날 ‘서울의 맛집’을 소개하는 책자를 한 번 써보지 않겠냐는 제안이 왔죠. 맛있는 것은 실컷 먹을 수 있겠다 싶어 무조건 승낙을 했죠. (웃음) 그렇게 아르바이트로 시작한 일이 본격적으로 기행작가로 활동하게 된 계기가 되었죠.

 

최근에 일본에서 나온 저의 책을 보면 사실 한국인들도 찾아 가기 쉽지 않은 시골의 풍광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담은 경우가 꽤 있죠. 근데, 책을 들고 그곳을 직접 찾아 가는 일본인들이 꽤 있다는 거예요! 도심에서 느낄 수 없는 한국의 맛과 인정에 매력을 느끼는 것 같아요. 더 열심히 발로 뛰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어요!

 

반디 | 《서울을 먹다》 이전에는 두 분 작가님의 또 다른 책들이 있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처음으로 음식에 관해 쓴 글이 있고, 또 맛의 세계를 열어준 음식이 있을 겁니다. 음식기행작가로 불리는 지금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음식을 맛보셨을 텐데요. 그 중에서도 현재 작가님들 활동의 기원이 된 ‘첫 번째 음식’이 있다면 무엇이었나요?

 

정은숙 | ‘막걸리와 해장국’이 아닐까 싶네요. 막걸리는 맛도 맛이려니와 막걸 리가 갖고 있는 정서가 좋아서 각 지역의 막걸리를 찾아 마셨지요. 그것이 기회가 되어 《막걸리 기행》이라는 책자도 나오게 되었고요. 막걸리는 사람을 만나는 좋은 매개체가 되었죠.

 

술을 많이 마시는 민족이니만큼 쓰라린 속을 달래주는 해장국 또한 많이 발달했죠. 다양한 해장국문화가 흥미로웠지요. 일본의 경우, 굳이 말하면 해장에 좋은 음식이라고 하면 재첩을 넣은 된장국 정도로 해장에 좋은 음식(해장국)으로서 명확하게 인식되어 있는 것이 없죠. 그래서 그런지 해장국음식이며 숙취드링크제에 대해 굉장히 재밌어 했죠. 자랑할 만한 한국의 특별하고 재미난 음식문화라고 생각하며 ‘해장국’을 즐겨 먹고 기사를 썼죠. 활동의 기원이라기보다 활동의 기운이 됐다는 게 더 맞을 것 같네요!(^^)

 

반디 | 절기상 하지를 앞두고 있습니다. 이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여름인데요. 아무리 철을 타지 않는다는 요즘 음식이라도 실은 ‘그때 그 맛’이 있는 법이죠. 《서울을 먹다》에 등장하는 서울음식 중 여름을 맞는 독자 분들에게 권하고 싶은 음식이 있다면요?

 

 

정은숙 | 역발상이라고 할까! ‘이열치열’의 ‘함흥냉면’이 어떨까요! 매콤한 양념에 얼얼해진 혀와 입천장에 뜨거운 육수가 닿은 순간의 짜릿함과 시원함이 오히려 여름의 더위와 스트레스를 한 방에 풀어 주지 않을까요!

 

도심이지만 푸르름이 좋은 계절이죠. 도심 한 가운데 간이탁자에 앉아 서울의 밤하늘을 지붕 삼아 골뱅이무침을 앞에 두고 시원한 맥주를 벌컥벌컥 들이키는 것도 그만이죠. 시원하게 목을 타고 들어가는 맥주에 향긋하고 쫄깃한 골뱅이를 씹고 있다 보면 도심의 더위도 갈증도 낭만이 되죠.

 

 

정은숙

 

1967년 강원도 두메산골 양구에서 태어났으나 말을 배우기 시작할 무렵부터 논과 산으로 둘러싸인 서울 변두리에서 자랐다. 대학원에서 관광경영을 공부하고 뒤늦게 일본으로 유학을 갔다. 1998년 한국으로 돌아와서 한국문화와 관련된 책을 기획, 취재, 집필, 번역하여 40여 권의 책을 일본에서 출간했다. 이북 출신의 어머니와 이남 출신의 아버지의 영향으로 어려서부터 남북을 아우른 음식을 접한 까닭으로 음식에 대해 개방적이다. 그 덕분일까, 먹고 마시고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며 음식과 사람에 대한 호기심이 강해 이야기를 묻고 듣는 것을 좋아한다. 할 수 있는 한 앞으로도 사람들의 삶과 기억이 담긴 주변의 음식 이야기를 찾아 써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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