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라얀의 전설적인 데카 레코딩] - 여름의 노래·브람스 교향곡 3번

 

Herbert Von Karajan | [카라얀의 전설적인 데카 레코딩] | DECCA | 2008

 

격렬함의 끝은 허무

 

브람스가 작곡한 총 4편의 교향곡 중에서 2번과 3번은 평소에 우리가 알던 브람스의 이미지와 조금은 다른 느낌을 준다. 계절에 비유하자면, 1번 교향곡은 겨울, 2번은 봄, 3번은 여름, 4번은 가을이라 말하고 싶다. 삶의 환희가 느껴지고 따스함과 넉넉함이 느껴지는 D장조의 교향곡(2번)과 여름에 내리쬐는 햇볕처럼 강렬하면서 막힘이 없는 3번 교향곡은 그의 음악세계가 우울 일변도가 아닌, 얼마나 다채롭고 매력적인 색깔들로 가득 차 있는지 보여준다. 그 중에서도 3번 교향곡은 내면에서 터져 나오는 듯한 격정과 뜨거움이 일품인데, 어느 한 부분도 머뭇거리거나 주저함 없이 쏟아지는 선율과 전개의 논리성, 남성미가 물씬 풍기는 강인한 소리, 그리고 그 끝에 조금씩 느낄 수 있는 작곡가 특유의 씁쓸함까지 생각한다면 이 곡이 가진 카멜레온 같은 매력을 거부할 사람은 아무도 없으리라.

 

막힘없는 악상 전개를 보아도 짐작할 수 있듯이 브람스는 이 곡을 비교적 짧은 시간동안 써냈다. 그가 교향곡 3번의 작곡에 착수한 것은 1883년 5월쯤으로 보이며 여름휴가 기간 동안 중부 독일의 휴양도시 비스바덴(Wiesbaden)에 머무르며 상당 부분을 완성시켰다. 어느 정도 초고가 정리된 것이 그 해 10월이니까 거의 반 년 만에 완성시킨 셈이다. 물론 길이가 짧은 편에 속하고 그 이후로도 몇 군데 수정을 거듭하며 실질적인 작곡기간은 조금 더 길어졌지만, 첫 번째 교향곡을 완성하기까지 21년이 걸린 것을 감안하면 6개월이 조금 넘는 시간은 정말이지 새발의 피 수준인 셈이다.

 

하지만 앞서 말했듯 이 작품에는 상당히 다양한 텍스처의 악기조합과 조성의 변화, 자연스러운 주제 동기의 전개가 곳곳에 숨어있다. 특히 6/4박자라는, 쉽게 쓰이지 않는 박자로 구성된 1악장이 매우 인상적인데, F-A♭-F로 이어지는 관악기의 화음에 풍성한 현악기의 선율이 뒤를 따르며 듣는 사람의 마음을 설레게 한다. 3번 교향곡이 차별화되는 지점이라면 바로 이 부분부터가 아닐까. 주선율과 반주로 구분은 되지만 이전 세대에 비해 여러 개의 선율이나 모티브가 대위법적으로 얽히는 구조를 좋아했던 브람스의 이전 작품들-특히 교향곡 1번의 1악장-과는 다르게, 이 작품은 선율과 반주의 역할이 비교적 확실하게 분리되어 있고 한 번 들었을 때 멜로디라인을 잡아내기가 훨씬 수월하다.

 

특히 멜랑콜리한 정서의 극치를 보여주는 3악장은 첼로의 고음역에서 제1바이올린으로 선율이 이행되는 과정의 관현악법이 매우 뛰어나 주목할 만하다. 4악장 역시 브람스의 작품들 중에서 손에 꼽힐 정도로 격렬하고 생동감이 넘치며 패기가 느껴지는 피날레다. 악장의 첫머리부터 시작된 F단조의 선율은 저음역대에서 꿈틀거리다가 어느 순간부터 갑자기 용솟음치며 급박하게 터져 나오기 시작한다. 한 가지만 첨언하자면, 4악장의 격렬함이 잦아드는 곡의 종지 부분이 매우 인상적이다. 후속작품으로 탄생한 교향곡 4번의 회한어린 1악장과 묘하게 오버랩되는 느낌을 주기 때문이다. 모든 것을 집어삼킬 것 같던 기세로 달려들던 음표들도 결국 시간의 흐름 앞에서는 어쩔 수 없음을 보여주는 느낌이라고 해야 할까.

 

추천음반

 

카라얀이 1960년도에 빈 필을 지휘, 데카에서 남긴 녹음이 굉장히 훌륭하다. 비교적 젊은 시절의 녹음이고 당시 최고 음질의 기술력을 자랑하던 데카의 화력이 돋보이는 역작이다. 다소 풀어진 느낌이 들더라도 자유롭고 독특한 느낌을 원한다면 오이겐 요훔과 베를린 필의 1956년 브람스 교향곡 전곡 녹음의 일부도 추천할 만하다. 다만 취향에 따라서는 극단적으로 강조되는 부분이 마음에 들지 않을 수도 있으니 유튜브 등에서 미리 감상하고 구매하기를 권한다. 번스타인과 빈 필의 81년 녹음은 폭풍과도 같은 카리스마가 느껴지며 지휘자 자신의 강점을 최대한으로 부각시킨 훌륭한 예술작품이다.

 

최근의 녹음으로는 래틀과 베를린 필의 전집(EMI)과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BR Klassik)의 연주를 꼽을 수 있겠다. 래틀과 베를린 필의 연주는 그 방향점이 분명하여 애매한 곳이 없고, 또렷한 팀파니의 소리가 리듬감을 한층 더해주어서 듣는 사람에게 쾌감을 안겨준다. 얀손스와 바이에른 방송교향악단의 연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인다. 래틀과 베를린 필의 연주보다 각진 느낌은 덜하지만 한층 풍성한 잔향을 앞세워서 독일음악의 정통성이 느껴지는 소리를 들려준다. 이 정도 범위 안에서라면 무엇을 선택하든 후회 없는 선택을 하리라 자신한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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