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혹하는 자전거》 - 당신이 라이더라면

 

 

 

미하엘 엠바허·베른하르트 앙게러 | 《유혹하는 자전거》 | 미메시스 | 2012

 

저자에 대한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따로 검색을 하였는데 한글로 된 것이 별로 없다. 아무튼 건축 디자이너이자 '세계 최고의 자전가 수집가 중 한 명'이라는 미하엘 엠바허 씨의 2011년 작. 이 책은 그가 수집한 자전거들을 소개하는, 일종의 컬렉션 북이다. (홈페이지인 http://www.embacher-collection.com 에 가 보면 그의 소장 목록을 확인할 수 있다. 디자인도 깔끔하고 인터페이스도 간료하다.) 

 

강한 기시감을 주는 한국어판 제목. 원제는 'Cyclepedia : A tour of iconic bicycle designs'이다. 나는 건조한 원제 쪽에서 단아함이 느껴져 훨씬 마음이 끌린다. 

 

짧은 서문과 자전거 디자인의 약사(略史)에 몇 장을 할애한 뒤, 책은 곧장 자전거의 박람회장으로 줄달음질친다. 구성은 간단하다. 한 자전거마다 보통 한 장에서 한 장 반 정도가 할애된다. 제품이 등장한 시기나 디자인의 특성, 사회에 미친 영향 등의 소개 글이 작은 폰트로 적혀 있고, 그 외의 하얗고 매끈매끈한 여백에는 탐미적으로 찍힌 자전거를 세워 놓았다. 한 쪽은 부분 사진, 한 쪽은 전신(全身) 사진이다. 220 쪽이 약간 넘는 분량에 100 대의 자전거가 소개되어 있다.

 

 

'세계 최고의 자전가 수집가'라는 호칭을 어느 정도 이해할 수 있는 것은 독서의 과정에서이다. 그는 단지 비싸고 이름난 자전거만을 모은 것이 아니라, 자전거 디자인의 역사, 혹은 자전거 기능의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작품들을 지속적으로 모아 왔다. 그래서, 개인의 컬렉션에서 100 대를 뽑았을 뿐인 이 결과물에 '자전거 백과사전'이라는 다소 오만한 이름이 허용되었을 것이다. 건조한 문체는 길지 않은 분량에 집요하게 들어차 있는 정보들과 어우러져 있는데, 나는 여기에서 저자의 자전거에 대한 애정을 엿보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생소한 기술적 표현들과 함께 '얼마나 아름다운가!', '이 곡선이라니!' 따위의 영탄법을 나열했다면 오히려 그 미학을 느끼기가 쉽지 않았을 것이다. 

 

마음에 드는 자전거의 제원을 메모해 두거나, 예쁜 배색 등을 보고 가벼운 즐거움을 느끼며 책장을 넘기면 누구라도 한두 시간 내에 독서를 마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생각하는, 이 책의 독서를 더욱 즐겁게 누리는 길은, 한 권을 따로 구입하여 침대 맡에 놓아두고, 자기 전에 짬을 내어 두어 개 정도의 자전거를 천천히 그리고 탐욕스럽게 살펴보는 것이다. 과연 소개 글에서 설명하는 기능을 실현해낼 수 있을까, 앞 장의 자전거와 갖는 디자인의 차이는 무엇일까, 이 색 말고 이런 색이 들어갔더라면 어땠을까, 이런 자전거는 누가 타는 것이 어울릴까 등등을 상상하면서. 이런 측면에서 보자면 '유혹하는 자전거'라는 한국어판 제목도 영 터무니없는 것은 아니다.

 

 

하나의 물건이 아름다움과 실용성이란 두 가지 미덕을 동시에 간취하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그렇기 때문에 양자를 완벽히 겸비한 사물을 만났을 때에는 그 감동이 오히려 지극하다. 자전거가 바로 그런 물건이라고 생각해 오신 분들이라면 이 책을 반드시 구입하고 볼 일이다. 나도 읽는 내내 꿀 같은 침이 주루룩 주루룩. 단 좋은 종이를 쓴 탓인지, 아니면 제품 사진에 저작권료가 있는 탓인지, 가격은 낮다고는 할 수 없는 28,000원. 나는 오늘부터 중고서점에 매복 들어간다. 넉넉한 분들은 두 권 사셔라.

 

오늘의 책을 리뷰한 ‘최대호’님은?
사실 아직도 이 책을 못 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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