곁에 있어줘 고마워, 그리고 사랑해 - <엄마가 사랑해>


 

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엄마가 사랑해>, 숲속여우비, 2009

 

지난 7월 노르웨이에서 반가운 손님이 왔습니다. ‘반갑다’는 말도, ‘손님’이란 말도 조심스럽게 되는 그분은 40여 년 전 노르웨이로 입양된 이모님의 둘째 딸입니다. 모두가 힘들던 시절, 갑작스런 남편의 죽음을 맞은 이모님은 세 명의 자녀를 고아원에 위탁했습니다. 그런데 자식에 대한 그리움과 미안함 한이 없어 다시 데려오고자 합니다. 하지만 당시 6살이던 둘째는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그 짧은 시간 동안 둘째는 벌써 낯선 땅으로 가고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40여 년만의 재회. 두 아이의 어머니가 된 그분은 ‘누구도 미워하지 않는다고, 모두 사랑한다’는 말을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상처는 그렇게 아물었기를 바랐습니다.

갑자기 가족 얘기를 꺼낸 것은 스위스로 입양된 웅이 이야기 <엄마가 사랑해> 때문입니다. 책의 저자는 도리스 클링엔베르그 여사로, 웅이의 어머니입니다. 이야기는 웅이를 입양하기 1년 반 전에 시작합니다. 첫 아들을 낳은 이후 바라던 둘째가 생기자 않자 도리스는 아이를 입양하기로 합니다. 그런데 과정이 만만치 않습니다. 입양 신청을 하고 1년이 훌쩍 지나서야 입양이 확정됐고, 그로부터 거의 반년이 지나서야 아이를 안을 수 있었습니다. 도리스는 기도하는 심정으로 힘들고 긴 시간을 견뎌내고, 아이에 대한 그리움을 키워갑니다.

D-day. 선물을 잔뜩 싸든 가족은 그토록 기대하던 만남을 위해 시내의 병원으로 향합니다. 그런데 좀 이상합니다. 눈앞의 웅이는 사진으로 봤던 것보다 훨씬 작고, 몸통 부위도 이상하게 튀어나와 있습니다. 또 피부 상태는 끔찍합니다. 하지만 도리스와 남편 라이너는 새 생명을 맞았다는 사실만으로 기쁨에 찹니다. 생명은 존재 자체만으로 가치 있는 거니까요. 하지만 기쁨은 그리 오래가지 않습니다. 웅이가 밤마다 ‘고통의 섬’으로 떠나기 때문입니다.

무엇으로도 아이를 달랠 수 없었다. 부드럽게 어루만지고 안아주고 위로를 해주어도 소용이 없었다. 웅은 마치 다른 세상으로 도망을 친 것처럼 보였다. 오로지 자신만이 홀로 존재하고 절망감, 두려움, 갖가지 공포가 살아 움직이는 고통의 섬으로 떠난 듯했다. 그리고는 누가 시키기라도 한 것처럼 옷을 벗기 시작했다. 맨 처음에는 양말을 벗었고, 그다음에는 목욕 가운을, 기어코 속옷까지 벗어던지고는 벌거숭이가 되었다. 저렇게 악을 바락바락 써대며 바닥에서 난리를 부리는 사람이 어린아이일까 하는 의문마저 들었다. (p. 42)

그저 바라볼 수밖에 없어 더 큰 아픔

정성스레 준비한 아이의 침대는 똥과 오줌 범벅이 되고, 도리스와 라이너는 뜬 눈으로 밤을 새우기 일쑤입니다. 하지만 가장 힘든 것은 의사소통이 ‘전혀’ 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웅이가 의사표현을 하지 못할 정도로 어린 아기는 아닙니다. 하지만 언어가 달라 웅이와 부모는 서로를 이해하지 못합니다. 아이가 무엇을 원하는지, 울면 왜 우는지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그저 울음을 멈추기를 기다릴 뿐입니다. 아이를 바라볼 때, 아이의 아픈 기억이나, 자신이 무엇을 잘못하고 있는 건 아닌지 하는 생각이 들기라도 하면 어머니의 마음은 찢어질 듯 아픕니다. <엄마가 사랑해>는 이 답답하고도 절박한 심정을 잘 표현합니다.

이 밖에도 아픔은 많습니다. 저녁을 어른보다도 많이 먹었음에도 불구하고 밤이 되면 휴지통에서 바나나 껍질을 주워 먹을 정도로 심한 웅이의 식탐, 길거리를 나갈 때마다 동정어린 눈빛으로 바라보는 사람들의 시선, 그리고 온 집이 웅이 중심으로 돌아가면서 상실감을 느끼는 큰 아들 라아스까지. 웅이가 입양되고 2년간의 일기인 책은 당시 모든 감정과 경험을 충실히 재현합니다. 그 속에는 우리가 알거나 헤아리지 못했던 아픔과 시련, 그리고 사람이 만들어내는 훈훈한 감동이 있습니다. 그들의 아픔과 기쁨은 생생하게 전달되고, 그들의 이야기는 가슴을 먹먹하게 합니다.

‘일상’이란 말이 어울리지 않을 정도로 치열했던 2년, 이후 웅이와 그의 가족은 어떻게 됐을까요. 저자는 책 말미에 ‘글쓴이의 글 -그 후에 우리가 살아온 길’을 덧붙이면서 이후 웅이와 가족들의 소식을 전합니다. 지금껏 감정 하나까지 섬세하게 묘사했던 것과는 달리 에필로그는 담담합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 목소리가 또 다른 감동과 깨우침을 불러일으킵니다.

몇 날 며칠 밤잠도 못자고 어르고 달래어 키운 어린 아기들, 언제나 편이 되어주고 보호해주던 그런 자식들이 이제는 다 커서 더 이상의 보호막이 필요 없게 된 것이다. (…) 우리 자식들이 자신들의 자유와 미래를 위해 집을 떠나는 것을 지켜봐야 한다. (…) 다른 한편으로는 자식이 어른이 되고, 건강한 지적인 능력을 갖추게 된 것에 대해 감사의 마음을 가져야 한다. 부모로서 우리가 할 일은 그것으로 다 한 셈이다. (…) 그런 깨달음의 지혜를 지금은 여기 이렇게 담담히 적을 수 있다. 그러나 당시만 해도 내 마음은 달랐다. (p. 247~248)

이 문장을 보면 알 수 있듯, 저자가 덧붙인 마지막 글에서는 세월의 흔적이 베어 납니다.  힘든 시간을 잘 견뎌내고 난 뒤에야 겨우 입을 열 수 있는 수줍은 고백입니다. 우리는 힘들게 웅이를 키운 그의 가족을 보면서, 낯선 땅에서 고통의 시간을 겪으면서도 건강하게 성장해 어느덧 아이의 아빠가 된 웅이의 모습을 보면서, 서로를 향한 그들의 마음이 진정 따뜻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따뜻함, 고맙습니다.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6
  1. 카타리나^^ 2009.09.09 10:41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이 책을 읽고 공감하게 될런지는 약간 의문이..
    이상하게 다른 나라 사람이 쓴 이런류의 얘기는
    나와는 다른세상의 얘기같은 기분이 들때가 꽤 있더라구요 ㅜㅡ

    • 반디앤루니스 2009.09.09 11:15 신고 address edit & del

      웅이도 어머니도 나와 다른 사람이라 울림이 더 큽니다.
      특히 둘이 소통하지 못할 때 느껴지는 슬픔은.. 흑!
      그리고 이 이야기는 우리들의 이야기이기 때문에 꼭 한 번은 꼽씹어볼 문제인 것 같네요..

  2. 불탄 2009.09.09 10:5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멋진 책소개의 글입니다.
    요즘에는 책을 읽지 못하고 있었는데 책읽기 좋은 날씨가 이어지고 있으니 주말에는 오프라인 서점에 한번 들러봐야겠어요.
    즐거운 하루 되시길 바랍니다.

    • 반디앤루니스 2009.09.09 11:16 신고 address edit & del

      주말에 산책하시다가 서점에 가서 산책의 마무리를 하시면 참 좋겠네요..^^
      저도 이번 주말에는 산책과 서점 방문을! ^^
      불탄님 반갑습니다~~
      좋은 하루 보내세요~~

  3. 꼬어 2009.09.10 02:43 address edit & del reply

    책도 그렇고 음악도 그렇고 알아가기엔 참 시간이 많이 걸리는 것들인 것 같습니다.
    새로 나오는 것들도 쫒아야겠고, 옛날의 좋은 것들도 찾아야겠고...
    이미 나온 좋은 책들을 읽기에 바빠서 요즘 나오는 책들은 쳐다볼 용기도 안 생깁니다.ㅠ_ㅠ

    • 반디앤루니스 2009.09.10 08:18 신고 address edit & del

      천천히 읽으시면 되죠~~
      전 부담을 갖기 보다 읽고 들을 게 많아 평생 심심치 않겠다는 긍정적인 생각으로 살고있어요~ 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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