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교향곡 5번] - 중심에 다가서다

 

 

김선욱·정명훈·서울필하모닉 오케스트라 | [베토벤: 피아노 협주곡 5번 [황제], 교향곡 5번] | DG | 2013

 

오케스트라는 무엇인가?

 

이 질문은 미국의 지휘자 레너드 번스타인이 자신이 직접 진행했던 '청소년 음악회'의 소제목이기도 하다. 오케스트라의 가장 근원적인 기능과 소리에 대해 질문을 던진 것이다. 세상에는 정말 많은 오케스트라가 있고 형태, 규모도 제각각이다. 가장 기본적인 2관 편성(목관악기를 종류별로 2대씩 사용하는 편성. 수가 늘어나면 3관, 4관이 된다)에 50명도 되지 않는 현악기 주자를 가지고도 최상급의 소리를 들려주는 오케스트라가 있는가 하면, 전체 단원의 수가 100명이 넘어감에도 불구하고  그 규모에 걸맞지 않게 부실하고 불안한 앙상블을 선사(?)하는 곳도 있다. 그렇다면 훌륭한 오케스트라는 과연 어떤 공통점을 가지고 있는 것일까. 왜 그동안 우리나라에는 세계음악계에 내놓았을 때 적어도 부끄럽지 않을 만한 음악을 들려주는 관현악단이 손에 꼽을 정도인 것일까?

 

일단 훌륭한 오케스트라라면 기능적인 면과 음악적인 면을 모두 충족시킬 수 있어야 한다. 물론 음악적인 측면도 어떤 면에선 '기능'의 범주에 들어갈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앙상블'만' 기가 막히게 잘 맞추는 오케스트라는 세상에 이미 많은데다가 그런 걸로 따지자면 군인들처럼 칼같이 각지게 악기를 연주하는 북한의 경음악단이 최고일지 모른다. 물론 가장 중요한 것은 악보를 충실하게 재현해 내는 것이다. 하지만 사람들의 마음을 들썩이게 하는 그 이상을 끌어내려면 악보에 쓰여 있지 않은 그 너머의 무언가를 찾아내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살아있다'는 느낌을 주는 펄떡거림과 삶의 환희를 안겨줄 수 있어야 한다. 단순히 연주자 백여 명을 앉혀놓고 각자의 파트만 충실하게 연주하게 하는 건 아무나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그만큼 단순한 목표도 없다. 하지만 그 이상의 것을 보여주고 인정을 받는 것은 아무나 하는 게 아니다. 서울시향과 정명훈, 김선욱의 이번 베토벤 레코딩이 더욱 소중하게 느껴지는 이유는 그래서 일지도 모르겠다.

 

정음(淨音), 신중하게 가다듬은 소리

 

서울시향이 낸 이번 앨범의 가장 큰 장점은 소리의 집중력과 밀도다. 위에서 언급한 연주자의 숫자에 관한 이야기를 떠올려보자. 좋은 오케스트라와 지휘자는 연주자가 몇 명이 되든 자신들의 소리를 단일한 하나의 음색으로 통일시킬 줄 안다. 저음의 현악기로부터 시작된 정확한 조율-단순한 음정의 정확성을 이야기 하는 것뿐만 아니라 다른 악기와의 균형감을 위한 음색의 선정을 의미한다-은 개별 악기 각자가 너무나도 개성적인 음색을 갖고 있는 목관 파트의 사운드와 합쳐지는 데 큰 영향을 끼친다. 또한 호른 파트 역시 중요한 문제가 될 수 있다. 악기 자체가 고른 소리와 음정을 유지하기 꽤나 어려운데다 작품 안에서는 금관과 목관 사이의 연결고리로써 음색 블렌딩에 결정적인 역할을 유지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특유의 ‘업무분장(?)’을 센스 있게 지키기가 쉽지 않다. 

 

서울시향의 이번 레코딩은 이전에 출시했던 라벨, 드뷔시, 차이콥스키 녹음보다 확실히 발전된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특히, 극적인 감정의 기복과 풍성한 소리는 인상적이었으나 일부분에서는 울림이 다소 과하게 느껴졌던 차이콥스키에 비해 필자 개인적으로는 이번 베토벤 녹음의 손을 들어주고 싶다. 이전의 녹음들에 비해 더욱 선명하고 야무지며 카랑카랑한 맛이 살아있고, 팀파니의 어택이 선명하면서도 다른 악기들과의 이질감 없이 자연스럽게 섞여있는 점이 상당히 마음에 든다. 또한 젊은 피아니스트 김선욱이 협연한 피아노 협주곡 5번「황제」의 연주도 좋은데, 김선욱 특유의 폭넓은 다이내믹 레인지와 선명한 타건이 돋보이며 특히 2악장에서의 침착한 프레이징은 매우 인상적이다. 느린 악장이라고 해서 필요 이상으로 늘어지거나 흐릿해지지 않으며 목관과 주고받는 부분의 호흡 조절도 훌륭하다.

 

이후에 발매될 서울시향의 음반들이 더욱 기대되는 이유는 무언가를 제대로 해나가고 있다는 느낌을 주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단지 한국 오케스트라라고 해서 적당 적당히 연주해도 그 놈의(?) 애국심 때문에 무조건적으로 박수를 쳐주는 시기는 지났다. 애호가들의 귀는 점차 그 수준이 높아져 가고 있고 하향세에 접어드는 음반시장에서 그들이 굳이 돈을 내고 음반을 사야 한다면 반드시 그만한 이유가 있어야 한다. 앞으로 이들의 연주가 더 많은 이들의 귀를 수준 높게 만들어 주기를 바란다. 우리도  ‘찰지게’ 연주하는 오케스트라를 한 번 가져보고 싶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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