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석철 트리오: Love is a song] - 리얼 루프

 

 

윤석철 트리오 | [윤석철 트리오: Love is a song] | 미러볼뮤직 | 2013

 

사전 정보 없이 무심코 듣다가 4번 트랙 「Three Points Of View」에서 귀가 솔깃했다. 같은 소절을 똑같이 반복하고 있는 피아노……이건 루프가 아닌가. 트리오라는 정보마저 없었다면 어떤 디제이가 옛날 재즈 LP에서 디깅한 소스로 여겼을 것이다. 뒤늦게 앨범 소개글을 뒤져봤더니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아이디어를 재즈와 접목시켰다는 얘기가 나온다. 말 그대로다. 「Three Points Of View」의 피아노는 루프→즉흥→루프→즉흥 이런 식으로 진행한다. 드럼은 정박의 패턴을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피아노와 발맞춰 움직인다. 신선한 구성이다.

 

첫 트랙부터 다시 살펴보니 힙합과 일렉트로닉의 잣대에 걸려드는 부분들이 여기저기 모습을 드러낸다. 「No Matter」의 베이스 인트로는 어느 힙합 트랙의 인트로처럼 들리고, 곡의 후반부는 신디사이저의 영롱한 배경음이 오버더빙 되어 엠비언트의 분위기까지 풍긴다. 이어지는 「We Don't Need To Go There」에서 이들이 의도한 접목가 가장 세밀하게 펼쳐진다. 어쿠스틱 대신 일렉트릭 피아노가 쓰이긴 했지만 처음에는 그냥 재즈 트리오 같다. 드럼은 빠르게 부지런히 움직일 따름이고 베이스는 밑을 충실히 받친다. 그런데 이게 중간의 변주를 한 번 거치더니, 일렉트릭 피아노는 어느새 같은 마디를 계속 반복하고 있고 드럼은 초반의 부지런함을 드럼앤베이스의 뉘앙스로 몰아간다. 이 흐름이 무척이나 자연스러운데, 그러니까 초반엔 재즈 트리오의 현장감을 풍기다가 후반엔 약간 느슨한 스퀘어푸셔(Squarepusher)가 되어 있는 것이다. 6번 트랙 「음주권장경음악」도 흥미롭다. 트리오가 만들어낸 리얼 루프 위에 다른 일렉트릭 피아노의 즉흥이 끼어들고, 중반부엔 우주의 기운을 머금은 신디사이저의 솔로가 들어가 있다.

 

이렇게 튀는 트랙들 사이에 재즈 트리오의 일반적인 합을 들려주는 「Show Must Go On」과 「막무가내」가 자리 잡고 있는데, 이 두 곡은 단순히 접목을 결여한 잉여가 아니라 재즈의 현장감을 담보해내는 정체성의 균형추 역할을 한다. 「Three Points Of View」 같은 곡으로만 앨범을 채웠다면 컴퓨터로 하면 될 일을 뭣 하러…… 라는 핀잔을 들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윤석철 트리오는 앨범의 핑퐁 구성으로, 또 개별 트랙 내에서의 구성으로 자기들이 만든 리프가 리얼 루프라는 사실을 계속 인지시킨다. 이들의 리얼 루프는 언제든 스톱될 수 있고 언제든 반복의 관성을 어길 수 있다. 그 어그러짐의 가능성을 손놀림에 담아두기 때문에 그것이 명백히 루프인 순간에도 긴장이 감돈다. 이 미세한 긴장감은 「Trampoline」에서 단적으로 드러난다. 트리오는 또 다시 리얼 루프를 만들어 돌리지만 작은 리듬의 변칙들을 스리슬쩍 담아낸다. 두 악기는 루프의 패턴을 계속 유지하고 한 악기는 거기서 뚝 떨어져 나와 솔로를 펼치다 다시 루프로 복귀하기도 한다.

 

「Trampoline」의 루프와 변칙과 솔로가 고스란히 시각적 이미지로 형상화되는 건 이들이 만들어낸 또 다른 매력이다. 곡을 듣고 있으면 주기적으로 통통 튀어 오르는 모습과 스탭을 잘못 디디는 모습, 그물 위를 두서없이 나뒹구는 모습이 어렵지 않게 그려진다. 1집에 있던 곡을 새롭게 변모시킨 「안녕히 주무세요」는 이미지가 더 선명하다. 곡이 진행함에 따라 이불 속에 포근히 들어가, 잠이 쏟아지고, 꿈나라로 떠나는 스토리가 차례로 펼쳐진다. 트리오는 이 스토리를 위해 루프와 일렉트로닉과 재즈의 질감을 고루 섞어 버무린다.

 

맨 뒤의 두 곡이 너무 편하게 들리는 것이 흠이라면 흠이다. 「Love Is A Song」은 디제이 소울스케이프(DJ Soulscape)의 곡을 리메이크한 것인데, 드럼이 원곡보다 더 부드럽고 솔로 부분도 모난 구석 없이 편하게 흘러간다. 마지막 곡 「Muse」는 처음의 페이드 인 되는 드럼만 솔깃할 뿐 그냥 낯익은 칠아웃 트랙 같다. 이 두 곡이 트리오의 전체 역량을 의심할 좋은 빌미가 될지도 모르겠다. 국내에 쟁쟁한 재즈 앙상블이 어디 한 둘인가. 하지만 재즈는 언제나 모색과 접목의 장르였고 윤석철 트리오는 자기들이 재즈 다음으로 좋아하는 장르를 가져와 유의미하고 재미있는 결과를 도출해냈다. 기꺼이 높은 점수를 주고 싶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호떡바보'님은?
흥미로운 직장과 알바와 각종 잡일을 하며 보낸 최근 10년 동안 음악에 관한 글도 꾸준히 써 온 두 딸내미의 아빠. 어려운 책과 졸린 영화와 재미있는 만화 보기를 좋아하는 정신연령 20대의 청년. 음악취향Y를 본거지 삼아 오늘도 여기저기 쏘다니고 있음. 한국대중음악상 선정위원이며 친구들과 '한국힙합-열정의 발자취'를 썼으며, 놀랍게도 철학책 3권에 관여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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