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랭 드 보통과 유쾌한 일로의 여행! - <일의 기쁨과 슬픔>

 

알랭 드 보통과 유쾌한 일로의 여행! - <일의 기쁨과 슬픔>


글을 읽기 전에 먼저 ‘창식 씨’의 하루를 생각해 봅니다. 이른 아침에 일어나 세수를 하고, 밥은 먹는 둥 마는 둥 출근을 합니다. 사무실에 도착해 컴퓨터를 켜면 지난밤 연인과 대화를 나두던 기억은 사라지고, ‘일하는 나’만 남습니다. 일하는 나는 기분, 컨디션과 상관없이 수첩에 적힌 일들을 척척 잘 해냅니다. 퇴근 후 집에 돌아가면 지친 몸을 달랠 것은 TV나 맥주, 생각만큼 많지 않습니다. 그러다 잠자리에 들면 이런 생각이 들기도 합니다. ‘내가 왜 일을 하고 있지?’

<일의 기쁨과 슬픔>은 <불안> <여행의 기술> <우리는 사랑일까>의 작가 알랭 드 보통이 쓴 ‘일’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작가는 “우리는 왜 일을 하며, 무엇이 일을 이토록 즐겁게 혹은 즐겁지 않게 만드는가?”란 질문을 던지며, 일을 둘러싼 갖가지 상상을 합니다. 작가가 여정은 흥미롭습니다. 그는 비스킷 공장, 위성 발사 현장 등을 찾아 노동자의 일상, 과학의 숭고미 등을 목격합니다. 또 참치가 바다에서 식탁으로 오는 과정을 체험하고, 기술자와 수천 킬로미터의 송전탑 기행을 하면서 사고 깊숙한 곳으로 들어갑니다.

알랭 드 보통은 본격적인 논의에 앞서 자신이 얘기할 화두의 기초를 든든히 합니다. 일의 의미를, 그것이 본질은 아니라 할지라도, 명확하게 규정한다는 것입니다. 그는 물류 창고로 갑니다. 멋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는 건물에, 자연의 법칙(낮에 일하고, 밤에 자는)을 무시한 공간이지만, 현대인들은 이곳이 없다면 일상적인 생활조차 불가능합니다. 비스킷 공장도 마찬가지입니다. 공정 과정이 수없이 쪼개진 공장에서 노동자의 반복적인 행위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 의문이 들기도 합니다. 하지만 그 작업이 없다면 우리는 우는 아이에게 과자를 줄 수도, 재정이 빵빵한 국가도 만들 수 없습니다. 결국 누구도 누구의 일을 ‘감히’ 아래로 볼 수 없습니다.

그렇다고 ‘일은 가치 있는 것’이라며 마침표를 찍을 수도 없습니다. 작가는 런던 중심부 고층빌딩에 있는 회계사 사무실을 방문해 한 회계사의 지켜봅니다. 회계사는 ‘집요하게 짹짹 울려대는’ 전자음 때문에 고통스럽게 일어나고, 무표정한 사람들 틈에 끼어 회사로 향합니다. 기차 안에서 보는 신문에는 세상의 온갖 잔인한 일들이 가득하지만 별 감흥은 없고, 자신은 안정적인 일상 속에 속해 있음에 안도합니다. 그리고 시간당 500파운드를 벌 수 있는 자신의 시간을 아끼기 위해 쉴 새 없이 하루를 달립니다. (그에게 식사를 제공하는 웨이터는 시급 7 파운드.) 그리고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집으로 돌아와, 와인 한 잔에 위로를 받습니다. 수많은 기업의 회계업무를 처리해주고, 자본주의 사회를 살아갈 총알을 풍부하게 지급받는 것. 이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일의 충돌과 경계를 뛰어 넘는 응시

일들이 충돌하면 상황은 더 복잡해집니다. 알랭 드 보통은 아내의 막내 사촌 결혼식 피로연에서 만난 스코틀랜드의 어느 전력회사 직원과 함께 송전탑 기행을 합니다. 그 중년의 사내는 연애시절 송전탑 아래서 형광등(송전탑 아래는 전력이 높아 따로 전원을 연결하지 않아도 불들 들어온다고 함.)을 켜고 사랑을 속삭인 이야기 등 송전탑에 얽힌 신기한 이야기를 해줍니다. 그러던 중 철새 보호구역 방문자 센터에 들어가 다양한 편의시설이 구비돼 있는 것을 보고, 사내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낍니다. 사람이 사는데 없어서는 안 될 송전탑이지만 늘 흉물 취급을 당하고, 송전탑을 위해 평생을 헌신한 이들에게는 별다른 공간이 없기 때문입니다.

‘지난 2년간 이스트 앵글리아의 밀밭에서 똑같은 떡갈나무를 그리며 많은 시간을 보내’는 화가 스티븐 테일러와 만남은 흥미롭습니다. 그는 5년 전 여자 친구가 죽고 시골길을 걷다가 만난 평범한 나무에게서 ‘자신을 그림으로 그려달라고 외치고 있다는 느낌’에 사로잡혔습니다. 그는 돈과는 무관한 사람처럼 보입니다. 8주 동안 전시를 열었지만 그의 그림은 산 사람은 별로 없습니다. 큰 상관은 없습니다. 행여나 그림을 산 사람이 식구들이 모두 잠든 밤 자신의 그림을 보며, 말로 설명할 없는 느낌을 받으면 그만일 테니까요. 그에게 예술은, 일은 시간과 공간을 뛰어넘는, 때로는 멈추게 하는 그런 것입니다. 그는 묻습니다.

“물을 본 적 있어요?” 테일러가 묻는다. “제대로 본 적이 있냐는 거죠? 전에 한 번도 본 적이 없는 것처럼.” (p. 214)

이밖에도 알랭 드 보통은 일에 대한 많은 이야기를 토해 놓습니다. 위성 발사의 현장에서 과학의 무한한 능력을 목격하면서도, 그로부터 소외받는 사람들, 인간이 인간을 우러러봐야 하는 부조리를 느낍니다. 또 직업 상담사와 함께 구직(이직)자들을 보면서는 모두가 성공할 수 없는 세상에, 모두가 성공하고자 하는 불가능한 욕망을 발견하고, 창업 박람회장에서는 새로운 것에 대한 열정보다 세상을 읽는 눈이 사람들에게 ‘통’하는 것도 봅니다.

세상에는 수많은 일이 있듯 작가의 이야기도 다양합니다. 그는 ‘일의 의미 찾기 미로’ 속에서 중심을 잃지 않기 위해 고군분투합니다. 소소한 일상의 것들에도 관심이 많고, 사람의 감정과 심리 묘사에 탁월한 작가이니 만큼 미로 찾기의 과정 또한 섬세하고 유쾌합니다. 미로의 끝이 궁금하시다고요? 제가 생각하는 답을 말할 수는 있지만, 잠시 유보하도록 하겠습니다. 그 끝을 모른채 알랭 드 보통과 함께 이리저리 느릿느릿 여행을 하는 것은 즐거운 일이니까요. 대신 힌트만 살짝 드리겠습니다. 바로 ‘죽음’입니다. ‘일’과 ‘죽음’. 다시 산으로 가는 느낌이신가요? 불쾌해 마시고, 창식 씨를 구원해줄 방법을 직접 찾아보시길 바랍니다.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1 Comment 7
  1. 양양 2009.09.01 09:03 address edit & del reply

    와..알랭드보통 책이 나왔었군요..몰랐는데..이른 아침에 블로그를 보며 마음 차분히 가라 앉히고 갑니다. 책블로그에서 포근함이 느껴지긴 처음이군요^^

    • 반디앤루니스 2009.09.01 10:24 신고 address edit & del

      이른 아침 찾아주셔서 감사합니다..^^
      더욱이 포근함을 느끼셨다니 더없이 반갑습니다.
      종종 찾아주실거죠?
      오늘도 좋은 하루 보내세요~~

  2. elyu 2009.09.01 13:16 address edit & del reply

    알랭드 보통은 참, 일상에서 앗!할만한 통찰을 찾아내는 능력이 대단한 작가에요^^
    일하기 싫은 요즘~꼭 읽어야 할 책이네요!!

    • 반디앤루니스 2009.09.01 14:23 신고 address edit & del

      어느 장은 일을 하고 싶게 만들고, 어느 장은 일을 하기 싫게 만들고..ㅋ
      책을 재밌게 읽다가 각 장 마지막에 있는 작가의 고민은 함께 생각해볼만 합니다.^^
      아, 그리고 한국 얘기가 가끔 나오는데, 괜히 신기해요~~ ㅋㅋ

  3. Qeem 2009.09.10 21:30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저는 지금 회계 부분을 읽고 있어요...근데 읽다보면서 계속 느끼는 건데 왠지 행복의 건축 이 계속 생각나더라구요~ 동일한 주제는 아니지만 그 세심한 펜터치의 감각이 뭍어나는 느낌은 역시 생활 속의 철학자라 불려지는 알랭 드 보통만의 문학 작품이 아닐까라는 생각...ㅋ
    어쨌든 요즘은 노란색 책 읽는 지하철 공간이 유일한 쉼터가 되고 있어 감회가 새롭습니다 ㅎㅎ

    • 반디앤루니스 2009.09.11 09:31 신고 address edit & del

      지하철이 어느 순간부터 참 좋아요..
      음악도 편히 들을 수 있고.. 책도 보고..
      자리가 생기면 정말 좋은데.. ^^
      근데 제가 행복의 건축을 안 읽어봐서...;;;
      행복의 건축 얘기도 들려주세요~~
      좋은 하루 보내시고요~ ^^

  4. 잇글링 2010.05.28 10:46 address edit & del reply

    [잇글링] EnZZang™님이 발 없는 새의 바람 속 세상 이야기님의 [여행의 기술 - 초보 여행자들을 위한 지침서]을(를) 아랫글로 연결하셨습니다. (보러가기 : http://www.itgling.com/spot/1826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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