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직 오지 않은 날에 대한 믿음 - <배움: 김대중 잠언집>

 

최성 엮음, <배움: 김대중 잠언집>, 다산책방, 2007

 

2009년 8월 18일 오후, 김대중 전 대통령이 서거하셨습니다. 질곡의 한국 정치사를 온몸으로 겪은 김대중 전 대통령. 한 해 두 명의 지도자를 잃을까 걱정스런 마음에 한 달이 넘게 그의 병세에 귀를 기울였는데, 끝내 다시는 뜨지 못할 눈을 감고야 말았습니다. 올해 우리는 두 명의 지도자와 이별했습니다. 2009년은 아마도 잔인한 해로 기억될 것 같습니다. 한편으로는 그저 ‘함께 있음’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닫게 됩니다. 손 한번 맞잡은 적 없어도, 더 이상 곁에 없다는 사실만으로 마음 한쪽이 저려옵니다. 

우리는 어떻게 고인을 위로해야 할까요. 또 허전한 우리의 마음은 무엇으로 채워야 할까요. 오늘은 고인의 공과를 따지기 전에, 그의 삶을 모두 기억하기 전에, 고인의 목소리가 듣고 싶습니다. 아픈 몸, 목소리도 내기 힘든 상황에서 간절히 남기고 싶어 했을 그 한 마디. 행여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배움>을 펼칩니다. <배움>은 <김대중 옥중서신> <새로운 시작을 위하여> <김대중 자서전> 등에 있던 고인의 따뜻한 말들을 모은 잠언집입니다. 여행길에서 사진을 찍기보다 조용한 곳을 찾아 메모하기를 더 좋아했다는 고인이 남긴 조언들. “선생님, 무슨 말씀을 하셨나요.”

“나는 내 생명을 너무나 귀중하게 여기기 때문에 내 사명을 계속 추구하지 않을 수 없다. 내 사명은 국민과 정의와 인간의 존엄성을 위해 헌신하는 것이다.”(p, 32)

고인은 모든 생명을 귀중하게 여겼습니다. 모든 생명은 존중받을 자격이 충분하고, 우리는 그 생명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이지요. 고인은 그 정언명령에 따라 자신을 귀히 여겼습니다. 그 방식은 ‘사명의 추구’입니다. 사명, 저 같은 범부에게는 낯선 단어입니다. 하지만 고인은 자신이 서있는 곳이 어디인지 끝없이 물었기에 사명을 생각하게 됩니다. 과거로부터 무엇을 배웠는지, 현재 무엇을 공헌을 하고 있는지, 후손을 위해 무엇을 남길 것인지. ‘역사적 존재’로서 고인은 모두가 잘 사는 세상을 위해 자신이 할 일이 무엇인지 고민합니다.

긴 터널 속에서의 빛

“5․17 사건으로 사형언도를 받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을 때, 나의 마음은 걷잡을 수 없이 불안과 공포에 시달렸다. (…) 그런데 신군부는 자기네들과 손잡으면 살려주겠다고 계속 유혹했다. (…) 그러나 굴복할 수는 없었다. 죽음도 두렵지만, 내가 믿는 하느님과 국민의 역사가 두려웠다.”(p. 91)

고인은 공포와 짙은 외로움에 고통 받기도 했습니다. 모든 생명을 존중하는 것도, 역사적 존재로 산다는 것도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특히 사형언도를 받았을 때, 그는 스스로 두려움을 고백했습니다. 죽음의 발자국 소리가 조금씩 다가올 때 그 심정은 어땠을까요. 사랑하는 사람들을 다시는 볼 수 없다는 불안감, 자신이 하지 못한 것들에 대한 미련은 그를 끝까지 괴롭혔을 것입니다.

그 고통을 이긴 것은 ‘믿음’과 ‘용기’입니다. 고인은 ‘마지막 승자는 국민’이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국민이 언제나 승리하는 것은 아니지만, 유일한 승자는 국민일 수밖에 없다는 믿음. 그렇기에 그는 국민과 같은 편에 서고자 했습니다. 또 ‘두려고 겁이 나더라도 할 일은 해야 한다’는 신념은 그에게 용기를 주었습니다. 용기는 긴 어둠의 터널 같은 고통과 외로움 속에서도 길을 잃지 않게 하는 빛이 되었습니다. 그의 죽음에 많은 국민들이 슬퍼하고, 안타까워하는 모습을 보면 고인의 선택은 틀리지 않았던 것 같습니다.

“나와 함께 가는 사람들, 비록 뜻이 조금은 다를 수 있고 또 나와 아예 딴판으로 다른 생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도 있지만, 이들이야말로 내게는 스승이 아닐 수 없다. 아니,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야말로 더 큰 스승일 게다.”(p. 109)

고인은 ‘용기’와 ‘신념’을 말하고도 부족한 마음이 들었는지, 마지막으로 우리들에게 스승을 남기고 떠났습니다. 그가 말한 스승은 존경받는 정치인도, 스승은 위대한 철학자도, 신성한 종교인도 아닙니다. 그저 지금 ‘내’ 곁에 있는 또 다른 ‘나’, 바로 당신입니다. 서로 귀를 기울이고, 마음과 마음 사이에 가는 끈 하나 생기면 서로에게 스승이 될 수 있는 것이지요. 그는 셋이 가면 그 가운데 하나는 스승이 있다고 합니다. 그런데 어찌 수천만이 살고 있는 이 땅에 스승 하나 없겠습니까. 남겨진 우리가 지치지 않고 스승을 찾고, 귀를 열어 스승이 되는 것이 고인의 마지막 바람일지도 모르겠습니다. 

고인은 지금 어디쯤 가고 있을까요. 자신을 그리는 땅의 소리에 발목이 잡혀 발길을 멈췄을지도, 남겨진 이들에게 못다 전한 마음이 있어 자꾸 뒤돌아볼지도 모릅니다. 또 평소 자신이 존경하는 사람들(‘백성을 하늘같이 받들고 헌신하는 사람들, 행동하는 양심이 되어서 무엇이 되느냐보다는 어떻게 사느냐에 힘쓰는 사람들, 성인으로부터 초동에 이르기까지 사람을 보고 배우되 그것을 내 것으로 재창조한 사람들)에게 머리 숙여 마지막 인사를 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하늘은 넓습니다. 부디 천천히 가시기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배움>의 마지막 말을 전하고, 하늘 한 번 보러 가렵니다.

“인간의 역사에 아직도 많은 죄와 고난이 남아 있음에도 불구하고, 큰 눈으로 볼 때 세상은 보다 정의롭고 보다 살기 좋은 방향으로 전진하고 있는 게 사실이다. 과거에 비추어 봤을 때 우리는 이러한 진화가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점점 더 많이 이루어지리라는 것을 의심할 이유가 없다. 이는 단순한 신학의 논리가 아니라 과학의 증명이기도 하다. 그러므로 우리는 미래에 대한 믿음과 희망 속에 조용하고 평화로운 마음으로 모든 악과 고난을 받아들이고 또 이를 극복하도록 노력해야 한다. (p. 203, ‘아직 오지 않은 날에 대한 믿음’)

반디
(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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