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읽니?] 박민규,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박민규 |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 | 예담 | 2012

 

“다만 어린아이와 같은 그녀... 어릴 때부터의... 그녀, 태어나기도 전의 그녀... 앞으로 늙어갈 그녀... 그런 그녀의 존재 하나하나가 갑자기 내린 눈처럼 그 자리에 쌓여 있는 기분이었다. 그녀는, 혹은 그녀들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았다. 실제로 그녀는 울지 않았고, 잠시 울음을 참았을 뿐이었다. (…) 주변의 나무처럼 차가운 그녀의 몸을 나는 힘껏 껴안았다. 그녀를... 아니... 그 속의 그녀와, 그 속의 그녀... 또 그 속의 나이테처럼 굳어 있는 모든 그녀들을 나는 안아주고 싶었다. 몹시도 뜨거운 무언가가 밀착된 가슴을 통해 흘러가고 흘러드는 느낌이었다.” (30-31쪽)

 

누군가는 ‘상처받은 사람은 상대를 상처내면서 치유된다’고 말했다. 그는 상처받은 동시에 상처 낸 사람이었고, 당시의 나는 상처받았다 생각했으므로, 나를 상처 낸 이를 이해하는 데 그 말을 떠올렸다. 눈에 보이든 보이지 않든, 모든 상처는 곪고 썩다 결국엔 딱딱하게 굳어 닫혀버린 세계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그 세계로 진입을 시도하는 누군가가 있다면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대한 대답처럼, ‘어쩔 수 없는 없다, 그게 바로 세상이고, 인생이다’ 류의 실망과 절망을 통과한 체념과 단념의 말을 들어야 할 거라고. 그리고 이 말이 문 앞에 선 이에게 상처가 되는 거라고. 들어가고 싶으나 열리지 않는, 그래서 거부당하는 이가 느껴야 할 좌절감이 있으므로.

 

그러므로 사랑이란, 그저 그런 데다 어쩔 수 없는 거 투성인 세상이 저마다 할퀴고 간 상처들이 만나, 그 세상 안에서 바로 그 세상 밖의 존재를 얼핏 보게 되는 게 아닐까. 치유는 서로로 인해 가능했던 세상에 대한 기억, 그 안에 그 혹은 그녀가, 그들의 시간, 그들을 만든 시간들이 존재했고, 바로 그 있음들로부터 오는 게 아닐까. 존재‘들’이 존재하는 대로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라면, 닫힌 문을 굳이 두드리지 않고도 그 안에 웅크리고 있는 그 혹은 그녀를 품 안에 들일 수 있을 테니까. 라고, 박민규를 읽으며.

 

 

 

-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anejsgkrp@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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