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방기행문》 - 사라지는 것들에게, '언니도 한잔 마셔'

 

 

유성용 | 《다방기행문》 | 책읽는수요일 | 2011

 

마음의 방랑벽이 다시 찾아왔다. 흉포한 여름이 지나가니 남은 건, 어디에도 마음 두지 못하는 공허함이었다. 새의 날갯짓에 허공의 깊이를 가늠해 보는 게 유일한 살아있음의 흔적이었다. 어느 가을 오후, 길을 떠나지도 못할 거면서 또 다시 난 여행서를 펼쳤다. 무심하게, 스치듯 말이다. 내 손에 들린 책은 여행생활자란 동명의 책을 통해 유명해진 유성용의 『다방기행문』이었다. 사라지는 것들과 버려지는 풍경을 찾아 나선 여행이라는 말이 내 심장의 안쪽을 저리게 했다. 제목에서 짐작 가듯 여행생활자는 전국의 다방을 기행 했다. 파란색 스쿠터에 단봇짐 하나 싣고 떠난 여행이 그리 멋져 보이지 않아도 무엇 하나 챙겨 갈 것 없는 지금의 내 인생이 거기에 겹쳤다. 그리고 다방거피에 얽힌 몇 토막의 짧은 기억들이 스쳤다. 아버지, 친구, 그리고 알록달록 화장에서 배어져 오던 그녀들의 분내가 코끝을 찡하게 했다.

 

“카페베네 같은 년”(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다는 뜻)이란 말이 나올 정도로 지금의 우리에겐 원두커피의 맛과 향을 강조한 커피전문점이 그 옛날의 다방을 대체한지 오래다. 7000원짜리 점심을 먹고 6000원짜리 스타벅스 커피 한잔을 마시는 게 일상적 풍경이다. 하지만 나는 아직도 사람들의 시선을 피해, 후미진 골목 어딘가에 숨어있는 다방이란 간판을 보면 지친 몸을 그곳의 낡고 더러운 소파에 의탁하고 싶어진다. 유성용의 글이 내겐 그랬다. 정서적으로 그의 여행은 나의 삶의 취향에 부합했다. 나는 다방세대이다. 엄마의 싸늘한 말투에 못 이겨, 아버지를 찾아 다방을 기웃거렸던 사람들만이 공유할 수 있는 그곳의 기억은 모던하고 세련된 지금의 커피전문점에선 얻을 수 없는 무엇이다. 아마도 앞으로 남은 생을 커피전문점에서 일상적 풍경을 연출하며 살지라도, 끝끝내 나는 인스턴트 다방커피의 향기와 계란 동동 띄운 쌍화차와 쑥차의 맛을 잊지 못할 것이다. 때문에 여행생활자는 평생을 나로 살아도, 나를 버리고 떠났다고 말하는가 보다. 사라져 가는 것들을 굳이 찾아 나선 이유도, 그 사라지는 것들 속에 자신이 포함되어 있음을 알아서다. 

 

가인다방, 정인다방, 정다방 등등, 단순하고 촌스러운 그곳의 이름들 앞에서 스쿠터는 잠시 멈춘다. 여행자의 파란색 스쿠터는 경기도 북부를 시작으로 강원도, 경상도, 전라도의 국도와 외딴 길을 따라 달리는 듯한데, 뚜렷하게 여행경로가 드러나진 않는다. 마치 지도 대신, 다방 간판을 이정표 삼아 정처 없이 떠도는 것 같다. 애초부터 유성용의 여행은 방랑에 가까웠다. 자신을 규정하는 모든 것들을 버리고 떠난 여행에 목적지가 있을 일 만무하다. 그가 길에서 본 풍경은 낡은 것들뿐이다. 아무도 찾지 않아 문을 닫은 시골 동네미용실, 손님이 술 마시러 마실 나간 이발사를 되레 기다려야 하는 이용원, 도시가스가 도시의 모든 땅 속을 점령한 시대에 연탄불을 때워 손님을 모시는 허름한 여인숙, 그리고 늙은 마담만이 꾸벅꾸벅 졸며 앉아 있는 다방들. 스치는 모든 것들이 내일을 기약할 수 없는 사라지는 것들이다. 하지만 천원짜리 커피 손님에게 늙은 마담이 내어 오는 팥죽 한 그릇의 따스함이 그곳에 있었고, 반짝이는 바다를 거울삼아 머리를 깎는 한적한 어촌마을의 늙은 이발사의 손길은 지친 여행자의 고단함을 나눠들었으며, 문 닫은 미용실의 슬레이트 처막은 습설을 피하는 나그네의 든든한 피신처가 되어줬다. 

 

이렇듯 사라지는 것들은 사라지는 삶을 애처로이 감싸 안아주고 있었다. 매일 밤마다 누군가를 대신해 글을 대필하던 후배를 통영에서 만나고, 도시에서 잘 나가는 IT개발자로 살고 있는 친구를 울산에서 만나 2박3일 같이 보내도, 만남과 인연이라는 것은 마치 사라짐을 예고하는 전조처럼 읽혔다. 그런데도 우리는 사라지지 않는다고 착각하며 산다. 그것이 우리를 살게 하는 희망이겠지만, 착각의 대가는 의외로 크다. 이따금씩 자신의 보잘 것 없는 삶을 망연히 바라보게 될 때가 있다. 황무지 같은 내면을 바라보고 있노라면, 이유를 알 수 없는 슬픔과 허무만이 차오른다. 나는, 이 순간이 우리의 삶에서 기별도 없이 사라진 무언가를 애타게 찾는 순간이라 생각한다. 무엇이 사라졌는지도 모르면서 사라짐이 남긴 흔적만으로 통증을 느끼는 것은, 우리 또한 사라지고 있다는 증거일 게다. 지금의 나를 설명하는 것은 욕망이다. 무언가가 되고 싶고, 쓰고 싶어 나는 밤마다 자판을 두드린다. 하지만 아침이 되면 지난밤에 써놓은 문장들이 의미 없어져 버리고, 휴지처럼 내게서 버려진다. 그 날카로운 허무의 칼날에 베여 상처 입었고, 정신을 차려보니 가방을 꾸리고 있었다. 책 속의 여행생활자처럼 평생 나로 살아왔지만 나를 두고 떠나고 싶어진 거다. 

 

“사는 일이 애초에 허망하고 쓸쓸하다지만, 슬픔과 허무는 이 세속을 벗어나 있는 어떤 정체불명의 감정이 아니고, 오히려 끊임없는 욕망 실현의 장에서 쌓여온 상처쯤일 것이다.”

 

어린 시절, 아버지를 찾아 동네 다방에 들락거렸다. 어느 날, 엄마의 성화에 못 이겨 슬리퍼를 신고 다방을 찾았다. 아버지는 친구들과 함께 무슨 일로 목청을 높이고 있었다. 나를 본 아버지는 민망했는지 저쪽에 앉아 기다리라고 말하면서 다방 레지에게 “우리 딸한테 시원한 주스 한잔 내줘”라고 말했다. 나는 이런 대기시간을 예상했기에 학교에서 숙제로 받아온 글짓기 숙제를 낡은 테이블에 펼쳐놓았다. 그 순간 엄마의 화장품 냄새보다 향기롭고 짙은 분내가 풍겨왔다.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거리는 짧은 원피스를 입은 다방 언니가 내 곁에 서 있었다. 그녀는 내게 주스 대신 계란 동동 띄운 쑥차를 내줬다. 저녁때가 다 돼서 출출할 거라면서 그녀가 건네 준 쑥차는 정말로 맛있었다. 그리고 그녀는 뜬금없이 내게 질문을 했다 “넌 커서 뭐가 되고 싶어?” 어린 나는 그녀의 아찔한 분내에 얼이 빠져버린 나머지 얼떨결에 “소설가”라고 대답했던 것 같다. 그녀는 뭐가 그리 좋았는지 한참동안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글짓기 숙제를 도와줬다. 이 기억 때문에 나는 지방출장 때마다 다방을 곧잘 찾았다. 물론, 늙은 마담이 내온 쑥차는 옛날의 그 맛이 아니었고, 다방 레지들은 그때의 언니처럼 내 머리를 쓰다듬어 주지도 않았다. 

 

아버지와 함께 그날 저녁, 집으로 돌아오던 길에 나는 아버지에게 물었다.

“아빠, 쑥차 정말 맛있었다. 다음에 또 사줘.”

“맛있냐? 하긴 커피보다 쑥차가 맛은 차라리 좋겠다.”

아버지는 무심히 답했다.

뜨거운 물에 인스턴트 커피가루를 넣고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섞은 커피 맛이 좋을 리 없다. 그렇다. 다방커피는 맛없다. 하지만 인생의 맛이라는 게 살아보니, 쓴물에 프림 두 스푼, 설탕 세 스푼 넣는 다방커피와 별반 다를 게 없더라. 

 

사라진다. 사라지기 전에 나의 흔적을 찾아, 나 또한 어느 이름 모를 역에서 천원짜리 다방 커피를 시키고 죽치고 있을지도 모른다. 후락한 그곳에서 늙은 마담과 늙은 손님들의 불편한 눈길을 받으면서 말이다. 혹여 오봉나갔다 들어온, 그 동네의 유일한 젊은 아가씨인 분내 나는 레지가 재수 없다며 내게 말이라도 건네면 기꺼이 언니에게도 커피 한잔 사줄 것이다.

 

“언니도 한잔 마셔.”

 

오늘의 책을 리뷰한 ‘취한미남’님은?
절망, 불운의 꼬리표를 달고 폭풍 같은 3년 여의 시간을 보냈다. 뭐 하나 되는 일이 없는 이 시기에, 나는 정말 우연히도 책을 다시 집어 들었다. 만약 책이 없었다면, 지난 3년의 시간을 나는 진정 불행한 사람으로 살았을 것이다. 하지만 책이 있어 나는 견뎠고 조심스레 희망도 품었으며, 새로운 꿈도 갖게 됐다. 책은 인간을 구원하지 못한다. 책 많이 읽는다고 해서 인생이 하루아침에 역전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책을 가까이 함으로써 인간은 生의 의지를 끈덕지게 붙들고 늘어진다. 못 믿겠다고? 지금의 내가 그 산증인이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1336 1337 1338 1339 1340 1341 1342 1343 1344 ··· 3094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