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눈팔기》 - 어쩌다 마주친 삶

 

 

나쓰메 소세키 | 《한눈팔기》 | 문학동네 | 2011

 

한 겹의 삶은 없다. 한낱 지나간 시간이 현재를 덮쳐 오고, 저마다의 사는 일이 교차하고, 나는 마음의 이쪽저쪽을 쉴 새 없이 오간다. 그 사이 삶에는 오랜 행보의 더께가 쌓인다. 두 겹, 세 겹, 네 겹…… 높기보다는 깊은 층. 사람들은 그것을 삶이라 일컫는다. 하지만 쌓아 놓기만 할 뿐 하나하나 들추어 보지 않는 탓에, 그러자니 겁나는 탓에, 겹겹이 층을 이룬 단면을 볼 일이 별로 없다. 오히려 거대하게 뭉친 하나의 덩어리가 삶이려니 하고 산다. 그런데 사람들은 왜 깜짝 놀라는가. 익숙한 덩어리에 작은 겹이 덧대어질 때, 왜 처음처럼 허둥대는가. 왜 그것은 삶의 외부가 되는가.

 

   겐조는 자신의 배후에 이런 세계가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잊을 수 없었다. 이 세계는 평소에는 먼 과거로 존재했다. 그러나 경우에 따라서 갑자기 현재로 변화하는 성질을 띠고 있었다. (…) 과거의 감옥생활 위에 현재의 자신을 쌓아올린 그는 반드시 현재의 자신 위에 미래의 자신을 쌓아올려야 했다. 그것이 겐조의 인생관이었다. (79쪽)

 

하지만 삶은 “인생관”대로 되지 않는다. 먼 곳을 떠돌며 공부를 하다가 고향으로 돌아온 ‘겐조’는 얼마 안 가 ‘시마다’의 방문을 받는다. ‘시마다’는 ‘겐조’가 어린 시절 양아버지로 따랐으나 돈 문제로 그와 집안 간에 절연하다시피 한 만큼 반갑지 않은 손님이다. 하지만 그런 속마음과 달리 ‘겐조’는 ‘시마다’를 비롯하여 자질구레한 감정과 관계를 떨치기가 쉽지 않다. “자신의 배후”, 그러니까 외부에만 있다고 여겨온 세계가 삶 안에 서서히 자리 잡는 것이다. 여기까지 《한눈팔기》의 도입이다.

 

문득 생각해 본다. 외부에서 찾아온 ‘시마다’는 애초에 ‘겐조’의 삶 안쪽에 있는 사람이다. 뿐만 아니라 ‘겐조’를 번민케 하는 아내, 누이, 형과 같은 이들도 이미 그의 세계를 이루는 하나하나의 겹이다. 새롭게 출현하거나 갑자기 찾아든 것은 사실 없다. 삶이 더께를 걷고 제 모습을 드러냈을 뿐. ‘겐조’는 어쩌다 그 단면과 마주치고 말았다. 이후라면 삶을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글쎄, “알아도 그곳에 도달할 수 없는 거”(262쪽) 아니고?

 

이쯤 되면, 한 겹의 삶은 없다, 라는 말에 여지를 남겨야 할 것이다. 이런 확신을 뒤바꾸는 것이 삶의 일이다. 어쩌면 한 겹의 삶이 있다는 식으로도 말해질 터. 어느 쪽이든 살아가는 한 어쩌다 마주치기도 할 터. 그것의 범위는 언제나 자기 자신이다. 내 안에서 도드라진 외부까지도. 확실히 말할 수 있는 것은 이 정도다. 제아무리 소세키라도 답을 내리지는 못했다. 다만 질문했다. 《한눈팔기》라는 한 편의 소설은 그 증거다.

 

   인적이 드문 거리를 걸으면서 겐조는 자신의 일만 생각했다.
   ‘너는 결국 무엇을 하러 이 세상에 태어났는가?’
   그의 머릿속 어딘가에서 누군가 이런 질문을 던졌다. 겐조는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가능한 한 대답을 회피하려고 했다. 그러자 목소리는 더욱 겐조를 추궁했다. 몇 번이고 똑같은 질문을 되풀이했다. 겐조는 끝내 울부짖었다. (261쪽)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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