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굿바이 동물원》 - 그곳에 현실의 내가 있었다

 

강태식 | 《굿바이 동물원》 | 한겨레출판 | 2012

 

처음부터 눈길을 끌었다. 고릴라 탈을 벗은 한 사내의 모습을 외면할 수가 없었던 것인지 모르겠다. ‘제17회 한겨레문학상 수상작’이란 것만으로도 충분히 믿고 읽을 만하다고 생각했다.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난’ 주인공의 처지가 결코 남의 일처럼 느껴지지 않기도 했다. 하지만 그렇다 해도, 그저 이야기를 통해 별다를 것 없는 평범한 삶에 자족하고 공감하는, 단순한 위로 차원이었다.

 

직장을 잃고 여러 아르바이트를 전전하다가 공무원급 동물원에 취직을 하게 된 주인공의 이야기 자체가 연신 호기심을 자극하며 재미를 더해갔다. 그런데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극의 전개는 신선한 만큼 몸서리치게 만들었다. 있을 수 없는 상황 속에서 왠지 모르게 내 몸을 두르고 있는 것만 같은 두툼한 털옷을 발견하게 됐다. 소설 속 기막힌 판타지가 바로 눈앞에 펼쳐졌다. 더 이상 물러설 곳 없이 내몰린 이 시대의 많은 이들, 그들이 처한 우울하고 참담한 상황은 결코 소설 속 이야기가 아니었다. 그런데 그렇게 막다른 길에서 동물원의 일원으로 살게 된 마운틴고릴라 ‘앤, 만딩고, 조풍년’, 그들의 삶은 오히려 사람이길 포기한 순간 더욱 사람답게 살아야 한다는 열망에 빠졌노라고 외치며 내게 강펀치를 날렸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또한 ‘사람답게’ 살고 싶다는 열망이 꿈틀거리는 사이 진정 사람답게 산다는 것이 무엇인지 되묻고 있었다. 세상에서 가장 무서운 것이 ‘돈’이라며 돈 때문에 인간의 삶을 포기해야 했던 삶으로부터 오히려 ‘돈’ 이상의 또 다른 가치들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은 그들만의 끈끈한 유대와 친밀감으로 ‘사람답게’라는 진면목의 삶을 그려내고 있었다. 재미있다며 낄낄거리다가, 섬뜩 놀라며 하얗게 질리는가 하면, 그 속에서 움 트는 삶의 희열에 박수를 보내며 나 스스로에게도 격려와 용기를 보내게 되었다.

 

기대 이상으로 재미있게 읽었다. 그리고 그 어느 때보다 불편했다. 소설이 반영하고 있는 현실, 그것은 고스란히 내가 당면하고 있는 현실 그 자체였다. ‘처절한 경쟁 사회에서 밀려난’ 주인공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없었다. 결코 현실적일 수 없는 판타지 속에서 그 어떤 이야기보다 노골적으로 현실을 직시하게 만들었다. 과연 이 이야기를 재미있다며 웃고 있는 자신의 모습에 온전히 머무를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쓴웃음을 지으며 자꾸만 자신의 실제 모습을 비추어 보게 된다. 그리고 내내 스스로 인정하고 싶지 않았던, 자꾸만 외면하고 싶은 삶의 밑바닥, 그 깊은 수렁에서 한 가닥의 희망을 찾아 활자 사이를 방황하며 헤매고 있는 스스로를 발견하게 된다.

 

외면하기 바빴던 나의 진짜 모습, 나조차 인정할 수 없었던 나의 현주소와 대면해야 할 시간이 바로 《굿바이 동물원》에 있다고 느껴졌다. 그래서 읽는 내내 불편했다. 웃고 즐기면서도, 그 희극 속에 내재한 통렬한 비극이 온몸에 날을 세웠다. 그런데 씁쓸한 뒷맛이 강렬한 만큼, 충분히 피가 되고 살이 되는 시간이었다. 《굿바이 동물원》과 함께 나 역시 기나긴 방황을 끝내야 할 것 같다. 보약 한 채 든든히 마련했으니, 이제 슬슬 약발을 받아 더욱 가열차게 한 걸음 내디뎌야 할 것 같다. 칭칭 감기다 못해 내 살이 되어버렸을지 모를 고릴라 털옷으로 무장한 밥벌이일지라도 그 속에서 더욱 사람다운 삶을 위해 열심히 '우우우우' 포효해야 할 것 같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지혜의 곳간'님은?
팍팍한 인생살이, "나는 한 시간의 독서로 누그러들지 않은 어떤 슬픔도 알지 못 한다"고 한 몽테스키외의 말에 책을 탐하기 시작한 후, 책 속에 숨어있는 삶의 지혜와 생의 열정을 찾아 방랑 중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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