꼴통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참토론


 

위르겐아우쿠스트알트, <꼴통들도 고개를 끄덕이는 참토론>, 뿌리와 이파리, 2004


우리는 매일, 매시간 논쟁을 하며 삽니다. 심지어 술자리에서도 게임을 할지 말지에 대해서 토론을 하지요. 늦은 시각 방송되는 손석희의 백분토론도 인기가 있습니다. 네티즌들은 자신이 지지하는 토론자의 영웅담(상대를 캐바르는)을 실시간으로 중계하기도 합니다. 우리의 일상은 논증과 그 논증이 부딪히는 토론의 연속이라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그런데 사실 직접 토론에 임해보면, 이거 녹록치 않습니다.

토론에 관한 책을 몇 권 읽었습니다만, 그 중 제일 낫습니다. 토론자로서의 기본 자세부터 토론의 기획, 사회자의 역할, 올바른 논증 구성법, 토론을 해치는 오류들, 연설할 때 효과적인 사소한 몸짓과 화술 등의 방법론들이 그득합니다. 일독을 권합니다.

우리는 왜 토론을 해야 할까?

일부 사람들은 토론이 밑지는 장사라고 생각합니다. 권위가 있는 사람은 권위로, 돈 많은 사람은 돈으로, 힘 센 사람은 힘으로 상대를 강제하는 게 쉽기 때문입니다. 자기보다 가진 것 없고, 힘도 약하고, 못난 사람이랑 나란히 앉아서 그들을 설득하는 수고를 뭣하러 하느냐 이거지요. 하지만 사적 영역에서는 몰라도 공론의 장에서는 개인의 어떤 우월성도 주장의 근거로 인정 받을 수 없습니다. 하긴 사생활에서도 우월함을 뽐내는 사람들은 '따'당하기 십상이지요.

또 다른 일부는 토론에 대해 과한 기대를 품었다가 실망하고 회의를 가집니다. 토론이 구체적 결과를 도출해낼 때에만 의미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불행히도 많은 토론들에서 때로는 시간의 제약에, 때로는 쟁점들 간의 중간점을 찾지 못하는 등의 이유로 합의를 이루지 못하는 경우가 숱합니다. 하지만 토론은 과정 자체로서 배움의 가능성을 내재하고 있습니다. 자신의 주장이 얼마나 타당한지는 비판적 검증, 그리고 경쟁하는 주장들과의 비교를 통해 비로소 드러납니다. 게다가 그 과정의 결과는 항상 열려 있습니다. 누구의 어떤 의견도 합의로써 결론으로 채택될 수 있고, 또 그 결론은 새로운 인식의 등장으로 언제든 다시 포기될 수도 있습니다. 

토론은 합의로써 이해 당사자들 간의 화합을 도모할 수 있습니다. 합의는 서로 간의 약속이므로 설령 불만이 있어도 마땅히 따라야 할 당위가 됩니다. 혹, 지금 당장은 결론을 도출해내기 어렵다고 할지라도 그 과정 자체로서 배움이 있습니다. 그러니 최소한 본전 이상은 해주는 게 토론인 것이지요. 우리, 토론해야 합니다.

토론의 절대 규칙!

토론은 진술과 진술이 부닥치는 논쟁의 장場입니다. 싸움터를 방불케 하는 열띤 경우도 비일비재합니다. 때로는 인신공격, 책임전가, 비난, 술수들이 난무합니다. 합리적인 논증과 토론을 하기 위해서는 최소한의 규칙은 필요한 것이겠지요. 그 규칙은, '진술에 대해서만 집중할 것'입니다. 우리는 논쟁에서 상대 진술의 뒤를 캐려는 유혹을 자주 받습니다. 촛불의 배후를 캐려던 임영박군의 행태를 우리도 쉽사리, 부지불식 간에 저지를 수 있다는 것이지요. 배후가 있건 없건, 청계광장을 메웠던 수많은 촛불들은 그들의 논거를 가지고 자신을 태워 '진술'하고 있는 겁니다. 그 '진술'과 '논거'가 타당한지 부당한지, 설득력이 있는지 없는지, 실현 가능한지 불가능한지가 논박의 대상이 되어야 합니다.

쉬운 예로, "흡연은 건강에 해로우니까 우리는 금연해야 한다." 라는 진술을 수 십년 경력의 흡연자가 했다고 합시다. 여기서 '지도 흡연자인 주제에 누구를 가르쳐?' 한다면 토론을 잘못된 방향으로 가져가는 것이지요. 진술은, 누가 어떤 의도로 했는지는 이야기 할 게 아닙니다. 진술 자체에 집중해 비판적으로 검증해야 합리적인 토론이 되는 것이지요.

상대주의를 넘어서

토론은 때로 심각한 난관에 봉착합니다. 바로 상대주의의 난관입니다. 우리는 결코 상대를 이해할 수 없다는 견해입니다. 너는 너고 나는 나인데 어떻게 생각이 같을 수 있겠냐는 주장에, 토론이 원천봉쇄 됩니다. 상대주의는 상당히 개방적이고 자유적인 데다 쿨해 보이기까지 합니다. 그런데 사실 상대주의는 단순한 말놀음에 지나지 않습니다. 상대주의는 세상에 대해서 아무 것도 말해주지 않기 때문입니다. 토론을 안 하겠다고 하면 어찌할 바 없지만, 최소한 토론의 장에서는 이러면 안 됩니다.

상대주의의 예를 들면, '우리는 서로 간의 문화를 이해할 수 없다.' 라는 진술이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뜻대로 살 테니 관여치 말라는 뜻이나 마찬가지이지요. 이런 주장에 토론이 가능할 것 같지 않습니다만, 그렇지 않습니다. 이런 주장에 대해서는 더더욱 비판의 칼날을 들이대야 합니다. 서로의 문화가 다르기 때문에 토론할 게 생깁니다. 상대의 문화에 대해 가설을 세우고, 그 가설에 대해 비판하고, 검증하면서 심도 있는 이해에 다다를 수 있습니다. 이를 통해 내 문화를 이해할 수도 있지요. 서로 생각이 다르다는 건 당연합니다. 생각이 다르기 때문에 논쟁과 토론이 유효합니다. 각자의 생각과 세계관이 대변하는 '진술'들을 비교하고, 무엇이 더 설득력이 있는지 평가할 때 우리들의 삶이 옳게 변화할 수 있습니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슛돌이'님은?
어떤 강도 똑바로 흐르지 않는다. 그러나 어떤 강도 바다로 가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나 또한 그렇다. 내가 가는 길이 항상 똑바르진 않겠지만, 어떤 경우에도 바다를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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