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읽니?] 헤르만 헤세, 《정원 일의 즐거움》

 

헤르만 헤세 | 《정원 일의 즐거움》 | 이레 | 2001

 

출근길 공기가 서늘합니다. 퇴근 무렵에는 날이 부쩍 어둡고요. 출퇴근길, 변화를 느끼기에는 짧은 틈이지만, 회사원에게는 그것이 전부이지요. 안 그래도 짧은 계절이 더없이 순식간에 지나가고 맙니다. 이러다가 급격하게 얼어붙는 날씨.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에 머무르기도 전에 겨울이 닥쳐옵니다. 회사원의 계절만 이렇게 유별날까요? 어쩌면 모두 같은 환절기를 보내리라 생각합니다. 그 길목에서는 헤르만 헤세 같은 소설가도 다르지 않았을 겁니다.

 

이번 여름의 대부분은 궂은 날씨 때문에, 몸이 아파서, 그리고 이런 저런 일 때문에 언짢게 잃고 말았다. 그러나 여름에서 가을로 넘어가는 이 시기는 다르다. 마지막으로 무더운 밤들이 이어지고 처음으로 과꽃이 피어나는 이 시기에 나는 내 몸의 모든 숨구멍을 통해 자연을 빨아들인다. 이때가 나한테는 1년 중 가장 마음이 충만한 때다. (…) 이제 나는 저녁 식사를 한다. 약간 어스름한 방 안의 어둠 속에 앉아서 과일과 빵을 먹는다. 7시가 되기 전에 불을 켜야 할 것이다. 어떤 때는 좀더 일찍 켜기도 한다. 어둠과 안개, 추위와 겨울에 이따금은 익숙해질 것이다. 그리고 세계가 한때는 그처럼 찬란하게 빛나고 완벽한 모습을 띤 적이 있었다는 것을 기억하지 못할 것이다.

 

<여름에서 가을로 가는 길목> 중에서

 

결혼하고 작은 농가에 정착한 헤르만 헤세는, 이후 나이가 들어서도 정원에서 오전 시간의 대부분을 보냈다고 합니다. 700킬로그램에 이르는 포도를 수확하거나 해바라기 꽃밭을 가꾸는 등 크고 작은 일들을 벌였다고요. 《정원 일의 즐거움》에는 그곳에서의 단상과 시편입니다. 요즘 가방에 넣고 다니며, 출퇴근길, 짧은 틈에만 읽고 있습니다. 그때마다 가을의 장(張)을 넘기는 기분입니다. 여름을 사로잡았던 속도감 넘치는 다른 책들을 내려놓고 한 번 읽어 보시라 권하고 싶은데요. 아쉽게도 현재 절판되었다고 해요. (저는 누가 길가에 내놓은 책더미에서 우연히 발견했어요! 하하하!) 구미만 잔뜩 당겨 놓은 것이 미안해서, 한 구절 더 읽는 것으로, 이 가을, 이 아쉬움을 붙들어 봅니다.

 

세실리 클라루스에게
이 지상 위에는, 그리고 식물의 세계에는 어린 시절 이후로 아무것도 변한 것이 없습니다. 그래서 안심이 되는군요.〔1933년〕

 

<잃어버린 고향처럼-헤세의 편지에서> 중에서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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