치열한 삶, 그리고 Let it be - <좌안1: 마리이야기>

 

에쿠니 가오리, <좌안1: 마리이야기>, 소담출판사, 2009


최근 들어 치열한 삶에 대한 생각을 종종 한다. 가끔 목사님 설교에 등장하는 높은 교육열의 동네 아줌마들 이야기, 4살부터 영어 교육을 하고 초등학교 때는 중학교 과정을 공부하고 중학교 때는 고등학교 공부를, 고등학교 때는 미국 대학 입시 준비를 하는 그렇게 치열하게 살아가는 사람들 이야기를 들으며 나는 ‘왜 그렇게 치열하지 않을까’, ‘왜 나는 꿈이 없을까’ 따위의 치열한 삶에 대한 부러운 생각이랄까.

그렇게 살아오지도 않았고 그렇게 살지도 않을 거라서 항상 멀게만 느껴지던 그네들의 이야기. 그네들이 듣는다면 혀끝을 찰지도 모를, 준비하지 않고 그냥 살아내는 삶에만 익숙한 내게 간만의 에쿠니 가오리 소설은 묘한 ‘내 편’이라는 위안을 받는다. (그래서 항상 그녀의 소설을 좋아하는지도 모르겠다.) 허구(Fiction)라지만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는 순간 묘한 위안을 받는 이유는 아마도 그런 ‘내 편’이라는 느낌 때문이었으리라.

삶은 애쓰지 않아도 충분히 치열하다

요즘 별로 삶이 재미가 없다. 아니 쭉 그랬었던 것 같다. ‘왜 내 삶에는 치열함이 없는 것일까?’ 생각해 보면 그냥 그저 그랬던 학생 시절 부모님께 제대로 반항해 본적도 없고, 입시 준비로 그렇게 스트레스 받은 적도 없다. 심지어 그렇게 힘들다던 IMF시절 취업도 별로 힘들이지 않고 대기업에 입사했다. 그래서인지 내겐 삶에 치열함이 결여된 느낌이랄까, 힘들이지 않고 인생을 살아 온 게 아닌가 하는 일종의 부끄러움의 감정이 느껴진다.

하지만 책을 읽는 내내 주인공 ‘마리’가 겪는 그 ‘치열한 삶’을 보면서 나와 많이 닮아 있다는 생각을 해본다. 부모님 몰래 만나던 이성 친구하며, 전기 대학 시험의 낙방, 그렇게도 공부라면 자신 있던 내게 어느 날 날아온 대학 시절 두 번의 학사 경고 그래서 떠났던 군대로의 도피. 그 뒤에 영화처럼 찾아온 사랑과 3년간의 남부럽지 않은 연애. 우연히 입사하게 된 선배 회사에서의 다시는 그렇게 할 수 없을 만큼 미친 듯 일에 매달리기도 하고….

잠깐씩 책을 덮고 있노라면 하나하나 떠오르는 그날의 어쩌면 치열했던 기억들. 누군가처럼 뭘 하겠다는 목표를 세우고 꾸준히 노력은 하지 않았지만 내 삶에도 그들 못지않은, 아니 오히려 그네들과는 비교할 수 없는 치열함이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

Let it be

이런 류의 소설을 두고 성장 소설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다. 대여섯 살 아이 때부터 50살이 되어 20대 여자 아이의 엄마가 될 때까지의 이야기 10대 주인공은 남자를 따라 가출하고 뒤늦게 대학을 가지만 길에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져 어렵게 들어갔던 대학도 포기해 버린다. 하지만 그 남자의 죽음, 그리고 남겨진 아이.

요즘 주식 시장을 보면서 그런 생각을 해본다. ‘아, 저렇게 오를 줄 알았으면 미리 사둘 걸.' 웃긴 일이지만 심지어 시뮬레이션도 해본다. ’음, 집담보로 대출을 받아서 저 주식에 투자를 했으면 얼마를 벌 수 있었을지도‘하면서 말도 안 되는 후회를 하곤 한다. 뭐 인간관계는 말할 것도 없이 그런 일 다반사다. 그때 마다 하는 생각 - 누군가의 시구로 기억되는데 - “지금 아는 것을 그때도 알았다면….” 부질없다는 것을 알면서도 한동안은 그런 생각에 젖어 든다.

소설을 보는 내내 비슷한 생각을 해본다. 몇 페이지 사이에 몇 년이 흘러가는 소설이라 그런지 (소설 속) 과거의 기억과 현재가 너무 또렷해서 그런지 그런 생각이 훨씬 강하다. ‘이그~ 대학은 졸업하지’, ‘그냥 결혼하는 게 나았잖아’ 등등. 하지만 소설의 뒤로 가면 갈수록 그때(과거) 알지 못해 실수하고 넘어졌던 것들이 그녀를 얼마나 성장시키고 있는지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해본다. 지금 아는 걸 그때 알았던들 뭔가 바뀔게 있을까? 대학을 졸업한들 그 사람과 결혼을 한들 전체 인생에 있어 큰 변화가 있었을까? 하지만 그걸 몰라 실수하고 넘어진 덕분에 성장해가는 주인공을 보면서 차라리 모르는 게 약이었구나 싶다.

뭔가 알아내고 그래서 합리적인 방법을 찾아 실수 없이 해나가려는, 하지만 방법론을 찾았음에도 그것을 찾는 과정의 스트레스에 힘이 빠져 정작 실행하지 못하는 요즘 내 모습과 마리의 모습이 묘하게 대비 되면서 나도 모르게 중얼거린다.

고통은 행복을 맛있게 하는 양념?

가끔 ‘행복’에 대한 담론을 나누는 선배 형과 “자그마한 인간의 행복이라는 거, 만들기보다는 찾는 거 아닐까” 하는 이야기를 나눈 적이 있다. 가출, 버림받음, 사랑 없는 동거, 늦은 대학 생활을 포기한 사랑의 죽음, 엄마의 외도에 이은 가출, 반항적인 딸, 익숙해진 막연한 잠자리, 결혼에 대한 거부 반응. 책을 읽은 뒤 떠올려 보는 마리 인생이다. 보통 사람이 겪는 일이라고 하기에는 나름 파란만장한 삶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쯤 50이 되어서야 또 하나의 스쳐간 사랑을 인지하는 모습을 보면서 과장되어 있어 굴곡의 높낮이는 다를지언정 내 삶도 비슷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본다. 오르락내리락.

요즘은 좀 많이 내려가는 시기이긴 하지만 소설의 마지막 페이지를 넘기며 ‘올라갈 타이밍도 오겠지? 그래서 사는 재미가 있는 거겠지?’라고 막연히 생각하고 웃어 낸다. 그런가 보다. 그렇게 고통과 즐거움이 병행하는 게 인생이고 그 안에서 즐거움을 찾는 것이 그렇게도 갈구하던 행복인가 보다. 그래서 고통은 그 행복을 더 맛있게 해주는 양념쯤이 아닐 런지.

간만에 에쿠니 가오리 소설을 읽으며 푹 빠져 살았다. 다행이 이번은 불륜이나 못갖춘마디 같은 사랑 타령이 아니어서 군더더기 없이 담백하게 읽을 수 있었다. 독서 자체가 하나의 즐거움이리라. 자, 이제 다음 나를 기다리고 있을 행복한 즐거움은 무엇일까.

오늘의 책을 리뷰한
‘JoopKim’님은?
내 의지와 상관없이 보이는 것, 들리는 것에 지쳐, 보고 싶은 것만 보려고 책으로 눈을 가리고, 듣고 싶은 것만 들으려고 헤드폰으로 귀를 막고 사는 평범한 10년차 ‘직딩’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705 706 707 708 709 710 711 712 713 ··· 75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