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맛] 최제훈, <위험한 비유>

단편소설 분량을 아시는 분! 통상적으로 200자 원고지 80∼100매 안팎입니다. 감이 잘 안 오실 텐데요. A4(글자 크기 10일 때)는 빡빡하게 쓴다고 치면 10~12매에 해당합니다. 앉은 자리에서 다 읽자면 한 시간도 안 걸리는데 수치로 환산하면 결코 짧지 않습니다. 그러니 쓰는 입장에서는 어떻겠어요. 하고 싶은 이야기 한 가지도 온전히 담지 못하는 것이 단편소설이라는 형식입니다. 그렇지만 장편 못지않은 단편을 써내는 것이 소설가라는 사람이죠. 이 형식은 그들에게 한계일까요, 아니면 가능성일까요?

 

한국일보문학상을 받은 소설가 최제훈은 “소설의 정의나 역할에 대해서는 고민하지 않는다. 그런 짐을 소설에 미리 지우기보다 자유롭게 풀어놓고 그 가능성을 마음껏 따라가보고 싶다.”라며 소감을 밝힌 바 있는데요. 한 마디로 “나에게 소설은 가능성이다!”라고 답하는 것 같죠. 이 말이 잘 와 닿지 않는다면, 역시 소설을 통해 확인할 수밖에요.

 

나는 당신이다. (166쪽)

 

당신은 나다. (184쪽)

 

《문학동네 2012년 봄호》중에서

 

처음과 마지막이 완벽한 대구를 이루고 있습니다. ‘나’가 열고 ‘당신’이 닫는 이야기는 대체 무엇일까요. 단 두 개의 문장만으로는 <위험한 비유>가 도대체 어떤 맛인지 ‘예측 불가’입니다. 그래요. 이 소설은 ‘예측 불가’ 자체입니다. 여덟 개의 에피소드가 계속해서 이어지는데요. 인물, 시공간, 사건들이 매번 완전히 달라집니다. 정작 이야기보다 그 자체의 무한한 속성을 체험하게 된다고 할까요. 파편 같은 소설을 아우르는 것은 ‘나’와 ‘당신’의 대구입니다. 저에게는 ‘소설’과 ‘작가’ 혹은 ‘작가’와 ‘소설’을 이르는 것처럼 보입니다. 한 가지 의미로 규정되기를 거부한다는 점에서 정의나 역할에 연연하는 세상에는 위험한 비유겠죠. 하지만 뭔 상관? 이야기를 탐하는 이들에게는 곧 매혹적인 초대장인 걸요.

 

《문학동네 2012년 봄호》는 자전소설인 <위험한 비유>와 함께 작가초상 <소설가 J의 작명법>을 싣고 있습니다. 소설가 정이현이 쓴 것으로 최제훈과 동문수학한 시절이 있다고 합니다. 합평모임 중 자신의 소설에 쏟아지는 비판에 “누나, 근데 말이에요. 왜 꼭 다 똑같이 써야 하죠?”라고 되묻던 한 청년을, 정이현은 회고합니다. “그의 물음표가 내 후두부를 어떤 충격으로 강타했는지 고백할 기회가 없었다. 소설은 ‘다 똑같이’ 쓰는 게 아니라는 사실을, 저마다의 무엇이라는 사실을 그제야 깨달은 거다.”라고 이어지는 다음 문장에서 저는 잠시 그녀가 되어 봅니다. 그 시절부터 현재까지, 또 앞으로도 최제훈의 물음표는 두루두루 전이될 것 같습니다.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최제훈
1973년 서울 출생. 2007년 《문학과사회》 신인문학상으로 등단. 한국일보문학상 수상. 소설집 《퀴르발 남작의 성》, 장편소설 《일곱 개의 고양이 눈》이 있다.

 

* 현재까지 발표 작품
《퀴르발 남작의 성》 | 문학과지성사 | 2010
《일곱 개의 고양이 눈》 | 자음과모음 | 2011
<위험한 비유> | 《문학동네 2012년 봄호》에 게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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