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베르트:겨울 나그네] - 그리운 그의 노래 다시 들을 수 없어도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 제랄드 무어 | [슈베르트:겨울 나그네] | DG | 2010

 

바리톤 디트리히 피셔 디스카우(1925~2012, 이하 디스카우)는 독일에서 태어난 독일가곡(Lied)의 스페셜리스트였다. 하지만 그의 노래는 비단 독일만의 것이 아니었다. 평소에는 무뚝뚝하게만 들렸던 독일어도 디스카우가 부르면 실연을 당한 젊은이의 만국공통의 애절함 그 자체였고, 장엄하고 무거운 관현악곡의 이미지가 강했던 독일 음악 또한 소박한 피아노 반주와 노랫소리 하나만으로도 세상 사람들을 충분히 울릴 수 있는 다양성을 가지게 되었다.

 

또한 디스카우는 바리톤의 담백한 맛이 무엇인지 가르쳐 준 가장 큰 음악가였다. 그의 목소리는 고음역대에서 트럼펫이 울부짖는 것 같은 쩌렁쩌렁한 테너의 목소리(이탈리아에 많을 법한)는 아니었다. 그렇다고 어둡다 못해 정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심해를 떠올리게 하는 러시아의 베이스 가수들 같은 목소리도 아니었다. 리트(독일가곡)속 주인공들이 대개 그렇듯이 뻔뻔하거나 영악함과는 거리가 멀고 쉽게 상처 받고 우유부단하기까지 하지만 마음만은 순수한 청년을 떠올리게 하는 미성의 바리톤이었다. 즉, 밋밋해 보이는 캐릭터지만 그 자체가 역설적인 매력을 뿜어낸다고 해야 할까.   

 

그래서 그런지 리트 이외의 작품에서의 디스카우는 오페라보다 종교음악에서 더 확실하게 빛을 발했던 것 같다. 오페라가 요구하는 능청맞은 표정을 살리는 데에는 호불호가 갈렸지만 종교음악들에서는 주위의 환경에 자연스럽게 녹아들면서도 자신만의 소리를 잃지 않는 멋진 가창을 들려주었다. 가령, 칼 리히터와 함께한「마태 수난곡」이라든가 클렘페러의 든든한 서포트가 매력적인「독일 레퀴엠」은 모두가 손가락을 치켜세우는 음반이지만, 칼 뵘의 지휘 아래 백작 역을 맡았던「피가로의 결혼」이나 조금은 촐싹거려도 좋은 캐릭터인 파파게노를 너무 진지하게 노래해버린「마술피리」등은 음반 전체의 높은 완성도에도 불구하고 애호가들이 디스카우에게 그리 큰 점수를 주지 않는 경우에 해당한다. (그래도 바그너 작품에서의 디스카우는 훨씬 인기가 좋을 것이다)

 

하지만 누가 뭐래도 디스카우 예술세계의 정수는 슈베르트의 가곡이었다. 수도 없이 부르고 녹음한「겨울 나그네(원제는 ‘겨울 여행’)」「백조의 노래」「아름다운 물레방앗간 아가씨」를 비롯한 슈베르트의 노래들은 지금까지 리트 해석의 전범으로 남아있다. 외르크 데무스, 제랄드 무어처럼 반주의 묘미를 살릴 줄 아는 피아니스트와 함께 한 녹음은 감정을 안으로 삭이는 듯한 디스카우의 목소리와 정감 넘치는 피아노 반주가 이상적인 조화를 이룬 음반으로 꼽힌다. 이를 통해 연주자와 특정 작곡자의 작풍이 이렇게 잘 맞는 경우가 또 있을까 싶을 정도로 모두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던 디스카우는 참 행복했던 예술가라는 생각이 든다.

 

1992년 12월 31일, 65세의 나이로 바이에른 오페라 극장에서 은퇴무대를 가지면서 그가 불렀던 곡 역시「겨울 나그네」였다. 인간의 삶이란「겨울 나그네」첫머리의 가사처럼 "이방인으로 왔다가 다시 이방인으로 떠나가는("Fremd bin ich eingezogen, Fremd zieh' ich wieder aus.)" 것이라지만,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서 디스카우는 이방인이 아니었다. 푸근한 목소리로 우리들을 울고 웃게 해 주었던 그를 어떻게 이방인이라고 할 수 있을까. 물론 시간이 흐르면서 슈베르트의 가곡을 훌륭하게 소화하는 바리톤은 앞으로도 많이 나올 것이다. 하지만 디스카우만이 가질 수 있었던 감성, 그 따스함을 되돌린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세상의 모든 짐을 벗어놓은 그가 하늘에서는 슈베르트의 반주에 맞춰 노래를 부를 수 있기를 기도해본다. 고인의 명복을 빌며...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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