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편소설의 맛] 윤고은, <해마, 날다>

여느 때보다 특별한 금요일입니다. 긴 휴일을 보장 받은 중생들이 질세라 밤거리를 점령할 테니까요. 누군가는 노래할지도 모릅니다. ‘부처 핸섬!(put your hands up!)’이라고요. 그만큼 반가운 연휴를 맞이하여 나름의 계획을 세웠을 겁니다. 여행을 떠나는 분들도 있겠고요. 오랜만에 대청소를 하거나, 밀린 드라마를 몰아서 보기도 하겠죠. 예상컨대 걔 중에서 가장 압도적인 계획은 술자리겠죠. 평일 내내 밥벌이의 지옥도를 체험한 중생들은 이런 연휴를 놓치지 않습니다. 겉보기에는 아름다우나 실은 더욱 치명적인 (술)지옥 속으로 걸어 들어가기를 자처하지요.


술의 부작용으로는 지갑분실, 콩깍지, 전화질, 통곡, 막말, 허세, 허기, 구토 등이 있습니다. 이 모든 만행에 대해 “그래/난 취했는지도 몰라/실수인지도 몰라/아침이면 까마득히 생각이 안 나”라며 구슬프게 읊조려도 별 소득은 없습니다. 당신은 ‘취중진담’이 용서되는 김동률이 아니고, 주정에는 목격자가 있기 마련이며, 그리하여 이미 소문난 진상이 되어 있겠죠.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나 봅니다. “끊어진 필름을 친구나 애인, 가족, 혹은 직장 동료가 보관하는 것보다는 전문적으로 폐기 처분해 주는 곳에 맡기는 것이 어떤가.”라고 제안하는 윤고은 작가의 이야기, 꽤 솔깃하지요.

 

사용자의 혈중 알코올 농도가 0.05% 이상이면 발신이 정지되는 휴대폰이 등장했다. (112쪽)

 

그저 동참할 뿐이다. (135쪽)

 

《세계의문학 2010년 여름호》중에서

 

소설은 ‘해마 005’의 홍보 문구에서 시작합니다. 음주 전화 전문 콜센터로, 획기적인 발명에도 불구하고 저런 기능이 없는 구형 휴대폰이 보다 많이 거래되고 있으니 음주 통화를 양성화하자는 취지의 광고를 하고 있습니다. 주인공 ‘나’는 그곳에서 술에 취한 ‘당신’들의 전화를 받는 직원입니다. ‘당신’들은 ‘여보세요.’나 ‘누구세요.’가 아니라 ‘어디세요.’라고 묻는 ‘나’에게 “회사 생활의 시작과 종말, 연애의 시작과 종말, 결혼 생활의 시작과 종말, 그 외에도 아주 사소한 시작과 종말들”을 털어놓습니다. 어찌 보면 시작도 종말도 아닌 불완전한 어디쯤이 ‘당신’들의 위치인 셈이지요.

 

뇌에서 기억을 입력하는 장치를 뜻하는 해마는 그러나 저장하는 곳은 아닙니다. ‘당신’들이 ‘해마 005’를 찾는 것도, 훗날 ‘당신’이 되어 버린 ‘나’가 ‘해마 005’에 전화를 거는 것도, <해마, 날다>를 읽던 제가 ‘이런 게 있었으면!’ 하는 것도 그래서겠죠. 말을 들어주되(입력) 곱씹지(저장) 않는, 그러니까 “그저 동참할 뿐”인 상대라니, 가련한 중생들에게 이만한 자비가 또 있을까요. 물론 이것은 소설입니다. 하지만 “마시거나, 잠들거나, 말하”지 않고는 이 삶을 견디지 못하는 ‘당신’의 마음을 헤아리고 있습니다. 일순간만을 동행하는 술보다 ‘당신’의 곁을 오래 지켜주기도 하고요. 이 정도면 <해마, 날다>와 같은 소설 속으로 걸어 들어가는 연휴도 괜찮지 않나요?

 

- 컨텐츠팀 에디터 희진 (hebong2000@bandinlunis.com)

 

 

* 윤고은
1980년 서울 출생. 2004년 대산대학문학상을 받으며 등단. 소설집 《1인용 식탁》과 장편소설 《무중력증후군》이 있다. 한겨레문학상 수상. 이효석문학상 수상.

 

* 현재까지 발표 작품
《무중력증후군》 | 한겨레출판 | 2008
《1인용 식탁》 | 문학과지성사 | 2010
《이효석문학상 수상작품집 2011》 | 문학의숲 |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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