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렌체크 : HAUTE COUTURE [1집]] - 한국어라는 투명감옥 창살

 

 

글렌체크 (Glen Check) | [글렌체크 : HAUTE COUTURE [1집]] | 사운드홀릭 | 2012

 

글렌 체크(Glen Check)의 「VOGUE BOYS AND GIRLS」를 듣는다. 같은 앨범 『Haute Couture』에 있는 「60’S CARDIN」 등과 더불어 의식적으로 패션 런웨이쇼의 풍경과 닮아있고, 그 풍경에서 수혈받은 영감의 기운이 서린 곡이다. 무엇보다 곡은 지금의 세대를 움직이게 하는 에너지로 충만하다. 신중현이 김완선에게 준 가사 '현대 음율속에서 순간속에 우리는 너의 새로운 춤에 마음을 뺏긴다오'를 2012년의 세상에 옮긴다면, 이렇게 재현되지 않을까 싶다. 징글쟁글 기타음에 정교한 리듬감이 잘 차려진 한 상의 성찬이다. 끝까지 사람을 잡고 놓아주지 않는 힘은 부족할지언정, 앨범 『Haute Couture』는 고루고루 힘이 분배되어 있어 지금의 'Boyz N Girlz' 누구에게라도 쾌히 추천할 수 있는 목록이 되었다. 

 

 

 적지 않은 이들이 글렌 체크의 정규작 이전에 발매된 이디오테잎(Idiotape)의 정규작 『11111101』을 동일선상에 놓고, 동시대의 중요한 앨범으로 거론하는 걸 볼 수 있었다. 일렉트로와 밴드음악의 성분 함량과 궁금한 라이브, 무엇보다 소위 사람들이 말하는 '힙'함이 있기에 그런 듯 하다. 흔히들 말하는 뭐가 더 우월하냐 더 들을만하냐의 이야기로 옮겨지기도 하는데, 언제나 그렇듯 다소 헛된 일이기도 하다. 그건 취향의 문제이기도 하지만, 밴드 당사자들은 아마도 동시대라는 함수 외엔 서로를 닮았다고 생각할 리 만무할 것이다. 다만 동시대적인 등장이라는 공교로움을 제외한다면, 두 밴드가 지금 가장 '핫'한 이름인 것만큼은 사실일 것이다.

 

 

 

만듦새에 있어, 일단 두 밴드는 한국어에서 자유롭다. 한국어에 굳이 얽매이지 않아도 자유롭게 타국의 언어로 표현할 수 있는 무기가 있는 글렌 체크도 그렇고, 애초에 언어라는 전달 매개체와 별 인연을 맺지 않아도 되는 이디오테잎의 음악도 그렇다. 곡들 전반을 지배하는 일렉음과 리듬을 둘러싼 다양한 아이디어들로 채우는 것만으로도 이들의 음악은 충분한 것이다. 그리고 무엇보다 안팎의 모양새를 두루 본다면 이들의 앨범이 일견, 한국이라는 지정학적 위치에 한정되지 않는 면모를 가졌음을 알 수 있다. (낯간지러운 언사로)'세계 시장에 내놓아도 뒤떨어지지 않는 완성도!' 같은 말을 하자는 게 아니라, 앞서 말한 '동시대적'인 면모가 있다. 언어의 문제에서도 장르의 문제에서도 한국 시장의 사정에 굳이 구속될 필요가 없는, 애초부터 태생이 그러한 음악들.

 

하긴 언어가 구속이라는 관점조차도 요샌 폐기대상이지 싶다. 방송 3사 모두 그토록 눈에 불을 켜고, 선취점과 기록 갱신의 스포츠 정신으로 목을 매는 '한류 열풍'의 몇몇 풍경을 뜯어보면 그렇다. 유튜브에 등재된 수많은 해외의 '한류팬(K-pop Otaku?)'들의 영상에서 그들은 뭉개지고 씹힌 한국어 발음으로 애써 가요를 부른다. 애초에 언어가 문제가 아니라, 그들의 심중을 저격한 것은 군무와 트렌드의 전장에서 생산되어 나온 곡들의 공정 결과에 있었던 모양이다. 이런 시장의 풍경과도 하등 관계없는 지점에서 글렌 체크와 이디오테잎, 또는 칵스(Koxx)는 이른바 '글로벌'한 감각의 결과물들을 자유롭게 쏟아내고 있다.

 

역으로 칵스(Koxx)는 한국어를 오히려 즐겁게 가지고 논다. 여느 곡처럼 영어 가사의 빽빽한 집을 짓던 「12:00」에서 그들은 '열 두시가 되면은 문을 닫는다'라는 한국어 기둥을 박는다. 처음 들었을 때는 잠시 귀를 의심하다, 그것이 의도적인 유희로 넣은 모국어 가사임을 우리는 곧 알아챈다. 그 유희는 칵스의 일렉트릭 개러지를 한정짓게 하지 않는다. 그 곡이 불릴 장소는 홍대여도 상관없고, 타국의 야외공연장 어디여도 상관없게 만든다. 쿨라 쉐이커(Kula Shaker)가 만다라가 어떻구니 힌두교의 구절을 인용해 이 노래 저 노래를 불러도 아무 상관이 없었듯 말이다.

 

 

 

 

한편 이들 밴드와 개별 장르 성분은 흡사한데, 용해촉진제가 달라 결과물은 사뭇 달랐던 TV 옐로우(TV Yellow)의 경우가 떠오른다. 그들의 음악은 상당수 한국어로 구성되어 있고 보다 직접적으로 정서를 전달한다. '날아가 네가 원하는 곳으로 / 날아가 네가 원하는 곳까지 / 나에겐 다다를 수 없는 곳에 / 날아가 원하는 곳으로 떠나'(「Speed Simone」)라는 가사가 나오는 곡의 후반부는 격정적이고, 감정 이입이 조금만 된다면 겨드랑이에 새털 묻은 날개가 돋는 기분이 든다. 상승이 되고 뭉클하다. 글렌 체크와 칵스의 영토가 런웨이쇼와 플로어 등지라고 강제로 정의한다면, TV 옐로우의 영토는 지금 우리가 걷는 어둑한 도로에 가까워진다. 여기엔 뭐가 더 우월하고 출중하다는 장단점 매기기의 시도는 무의미해진다. 아마 근 몇 년 안에 한국어라는 '투명 감옥 창살'의 문제를 거론하는 이런 촌스러운 시도 역시 자리를 잡기 힘들 것이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렉스'님은?
사촌누나의 음악 테이프를 몰래 주머니에 넣는 것으로부터 시작된 음악듣기,  이제 그 듣기를 애호와 피력으로 발산하려 하나 여전히 역부족. 웹진 음악취향 Y(http://cafe.naver.com/musicy)에서 렉스라는 필명으로 활동 중. 게으른 직장인이자 숨가쁜 인터넷 서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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