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 박: Knock [1집]] - 꽤 흡족한 출발

 

 

존 박 (John Park) | [존 박: Knock [1집]] | 로엔엔터테인먼트 | 2012

 

「Falling」의 멜로디를 여는 첫 음은 뜻밖의 팔세토falsetto. 설마. 하지만 존박은 첫 절과 후렴까지 예의 그 낯선 층위의 톤으로 모든 음들을 스무드하고도 자못 완벽하게 훑어낸다. 수개월 전 입증된 탁월한 보컬 능력을 바탕으로, 그리고 일분이 약간 넘는 그 짧은 시간만으로도, 이미 존박의 새 음악은 예상외의 수를 내밀며 청자의 귀를 호사시키기에 이른다. 별것도 아닌 이 작은 장치 하나는 사람의 마음을 긴장시킬 때라야 그 존재의 가치를 얻는 예술의 의미와 일맥상통한다. 그리고 이 뜻밖의 방향설정을 통해 나는 프로듀서의 역할과 뮤지션쉽의 의미를 다시금 곱씹는다. 섬세한 음악성은 그렇게 아주 작은 곳에서 빛을 발한다.

 

이를테면 이런 것이다. 존박이 슈퍼스타K를 통해 호평을 받은 몇몇의 퍼포먼스를 돌이켜 보면 이미 그의 장단점은 모두 드러났다고 볼 수 있다. 마이클 잭슨의 「Man In The Mirror」를 원곡에서처럼 내지르거나 쥐어짜지 않고 부드러운 톤으로 노련하게 마무리 지을 수 있는 데에는 각별한 중저음에서의 메리트가 핵심. 재즈풍으로 편곡되었지만 그렇다고 오리지널하거나 세련됐다고 보긴 힘든 「빗속에서」의 경우에서처럼, 이문세의 원곡이 가진 올드함을 제법 손쉽게 뉴욕이나 시카고 어디쯤에서 들릴법한 느낌의 곡으로 재배치 시켜놓는 이국적 매력의 바이브 역시 그의 유력한 무기다.

 

반면 통상적으로 주류 대중가요에서 선호되는 높고 짙은 고음역대를 소화하지 못한다는 것은 본인에게, 혹은 프로듀서인 김동률에게 적잖은 고민거리였을지도 모른다. 그런데, 아주 뜻밖에, 이 해답은 바리톤 스타일의 보컬인 그가 평상시 잘 쓰지 않던, 익숙지 않은 가성영역대를 탐구함으로써 찾아졌다. 진부한 시선으로는 결코 쉽게 얻어질 수 없는 그 나름의 센스랄까, 고민의 흔적이 감지된다.

 

단출하기 그지없는 직선적인 선율세례 「Falling」이 전해준 예상치 못한 모던함이 페이드 아웃 되기가 무섭게 건조하면서 세련된 피아노와 현의 이중주가 바톤을 이어받는다. 결코 가볍지 않은 재즈 코드가 제법 톤을 셋업하고 나면 생각보다도 훨씬 담담하고 정갈한 톤의 소울 보컬이 분위기를 잡아챈다. 「왜 그럴까」는 신인임에도 이미 자기 색을 확고히 드러내는, 존박의 시그니쳐 알앤비 사운드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다분히 올디스들에 취향을 두고 있는 작곡자 김동률이나 편곡자 나원주의 리드덕분으로 이 곡은 컨템포러리 알앤비의 식상한 공식을 피해 도니 하서웨이나 브라이언 맥나잇이 들려준 바 있는 가스펠 기반의 소울에 가까운 스타일로 마무리 되었다. 무엇보다도 안정적인 저음과 매력적인 팔세토를 오르내리며 소품 느낌의 소박한 멜로디를 자유스러운 플로우로 변주시키는 것은 보컬리스트로서 탁월한 기량이다. 프로듀서와 보컬리스트의 소통이 충분했다는 증거다.

 

사실 존박이라는 아이템은 가요로서 여지가 많이 없을 거라는 기우를 품었었다. 컴피티션 직후 보컬 트레이너이자 작곡가인 박선주가 쓰고 프로듀스한 「I’m Your Man」을 듣게 되면서 그 불안감은 점점 실체가 드러나는 듯 싶었다. 무턱대고 미국 대중음악 스타일의 오리지널리티를 살리기엔 대중성이 염려되고, 주류 가요의 문법을 소화하기엔 뚜렷한 약점을 보유한 목소리. 박선주는 그 지점을 스윙재즈라는 이도 저도 아닌 애매한 장르와 방향설정으로 우회하려 했던 것이 분명하다. 하지만 이 앨범의 조타수를 쥔 김동률은 목소리의 장점은 그 나름대로, 음악적인 도전은 또 그 나름대로 욕심을 부리며 예의 그 특유의 도시적인, 그러면서도 그다지 타협적이지 않은 세련된 방법론으로 존박의 목소리를 새롭게 풀어낸다. 존박 역시 컨템포러리한 뮤지션으로서 자신의 가능성을 다채롭게 시험하며 첫 작업답지 않은 진지한 뮤지션쉽을 한껏 드러낸다. 이 정도면 실로 누구나 부러워할 좋은 만남. 그리고 처음 치고는 더할 나위 없이 흡족한 출발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님은?
웹진 음악취향 Y(cafe.naver.com/musicy) 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 몇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도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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