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점에서 만난 사람] 동심의 숲에 몸을 담그다 - 동화작가 채인선

 

 

질문과 정리: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 희진/ 이미지 및 자료 제공: 한울림 출판사

 

누구에게나 아이였던 시절이 있습니다. 하얀 백지와 같은 상태에서 부모와 선생님, 즉 어른들이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 그들이 전해주는 이야기를 들으며 세상에 대해 하나하나 알아가던 시절 말입니다. 이런 아이의 시선에서 어른의 시선으로 옮겨가는 게 성장일 거고요. 그런데 어른이 되고 난 후에는 곧잘 이렇게 지나온 시간을 잊어버리곤 합니다. 자신이 아이였던 때를, 그 순수했던 시절을 까마득하게 잊어버리고 고정관념과 편견 등, 온갖 딱딱한 생각의 틀 속에 갇혀 살아가는 것이죠.

 

문제는 이런 어른들은 아이를 만나기 전까지는 그 사실조차 모른다는 겁니다. 부모가 되어 아이를 만나든, 책이나 영화에서 아이를 만나든, 어떤 아이를 만나야만 자신이 잃어버린 세계를 자각하게 되거든요. 하지만 내 아이 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아이들에게는 그들의 바른 거울이 되어줄 어른이 필요한 법입니다. 자신의 잘못된 생각을 반성함과 동시에 아이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이야기를 들려줄 수 있는 어른이요. 그래서 어른에게는 잃어버린 세계를 찾아주고, 아이에게는 그에 맞는 눈높이로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 이가 더욱 소중한 거고요. 

 

오늘 [서점에서 만난 사람]에 모신 분이 바로 그런 분인데요. 종종 유년의 숲으로 놀러 가, 그곳에서 '영원한 아이'를 만나곤 한다는, 동화작가 채인선 님의 이야기, 시작합니다.     

 

 

1962년 학원도 함백에서 태어나 성균관대학교 불문학과를 졸업했습니다. 1996년 창비에서 주관한 제1회 '좋은어린이책원고공모'에서 당선되어 작품 활동을 시작했습니다.

 

당선작인 《전봇대 아저씨》를 비롯해  《내 짝꿍 최영대》《시카고에 간 김파리》《아빠 고르기》 등의 동화책과 《손 큰 할머니의 만두 만들기》《딸은 좋다》《나는 나의 주인》《도서관 아이》《어른이 되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에요》《위험이 닥쳐도 걱정할 것 없어요》《내가 이렇게 생긴 건 이유가 있어요》《엄마 아빠는 우리를 사랑해요》《서로 도우며 살아요》 등의 그림책을 썼습니다.

 

그 밖에 어린이 교양서 《아름다운 가치사전》과 《아름다운 감정학교》 (시리즈 5권), 4~7세 어린이용 국어사전인 《나의 첫 국어사전》을 펴냈습니다.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그 출발점이 있습니다. 이를테면 《딸은 좋다》는 딸로 자라난 작가님의 경험, 혹은 딸을 둔 부모의 마음에서 시작되었을 것 같습니다. 아이를 위한 글을 쓰게 된 가장 첫 번째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제 두 아이가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던 것이 계기가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옛날을 생각하면 이야기를 해달라고 조르는 아이들을 피해 화장실로 숨어 있었던 기억도 납니다. 그때 얘기를 하면서 식구 모두 웃음을 짓곤 하지요. 아이들에게 그림책을 읽어주기도 했지만 대부분 제가 즉흥적으로 이야기를 지어 들려주었습니다. 특히 아이들을 야단쳐야 할 때 이야기를 만들어 들려주면 아이들은 금방 뉘우치곤 했어요. 아이들도 이야기 거리를 많이 만들어냈습니다. 아이들을 재우기 위해 그림책을 읽어주고 이야기를 들려준 적도 많습니다. 그런데 우스운 것은 그림책을 읽어주다가 너무 졸려 꾸벅꾸벅 졸다가도 아이들이 잠자러 가면(당시 아이들은 시어머님 방에서 잠을 잤습니다) 정신이 번쩍 들면서 잠이 깨는 것입니다. 그래서 컴퓨터에 제가 쓴 이야기를 정리하게 되었습니다. 그렇게 해서 나온 첫 책이 ≪산골집에 도깨비가 와글와글≫이라는 책입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다가 작가가 된 사람입니다.

 

강원도 함백에서 태어나셨습니다. 정선군 쪽으로 알고 있는데요. 아이들을 위한 글을 쓰시는 만큼, 그곳에서 보낸 작가님의 아이 시절은 어땠는지, 유년에 보고 느낀 것이 현재 작업에 어떻게 작용하는지 궁금합니다.

 

저는 제가 한동안 도시 사람인 줄 알았습니다. 나중에 어머니로부터 제가 함백이라는 외딴 시골에서 태어나 자랐다는 것을 듣고 “아, 그래서 감자와 옥수수를 좋아했구나.” 싶었답니다. 학교를 다닐 때부터는 서울에서 자라 함백에서의 어린 시절은 크게 기억나지 않습니다. 마당에 있었던 대추나무와 집 근처의 수수밭, 밤에 복숭아나무에서 복숭아를 따먹으며 보았던 밤하늘 정도입니다. 하지만 그 몇 장면은 너무도 강력해서 마치 제 영혼에 문신처럼 박힌 느낌입니다. ≪전봇대 아저씨≫를 어린 시절의 대추나무에게 헌정한 까닭이 이 때문입니다.

 

 

결국 저는 서울 생활을 접고 아이들이 3학년, 5학년일 때 용인으로 이사했습니다. 집 뒤에도 산이 있고 집 앞에도 산이 있는 곳이지요. 이후로 용인 집은 우리 가족을 비롯해 제 시가쪽과 친정쪽으로 모두에게 마당 있는 고향집과 같은 역할을 하고 있습니다. 시골 냄새 나는 용인 집에서 함백을 일찍 떠나온 아쉬움을 달래는 셈이라고 할까요? 작가들에게 자연이란 감성의 모태와 같습니다. 자연에서 키운 감성은 도시 감성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로 풍부하고 풍요롭고 충만합니다. 시골에서 유년을 보낸 사람이 숲을 갖고 있다고 한다면 도시에서 자란 사람은 나무 한 그루만 갖고 있을 뿐이죠.

 

제가 용인에 사는 것은 숲을 그리워하며 마당에 나무를 하나씩 심는 것과 같습니다. 유년의 숲에 대한 영원한 그리움, 무한한 경외감, 고향을 잃어버린 사람의 애틋한 정서가 제 안에 있습니다. 제 작품 중 ≪삼촌과 함께 자전거 여행≫은 이런 심정적인 배경을 갖고 있습니다. 만약 제가 자연 속에 몸과 마음이 푹 젖어들 정도로 함백에서 오래 살았다면 위의 책은 쓰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리움이 없었을 테니까요. 문학은 충만함에서도 나오고 그리움에서도 나옵니다만 유년에 자연의 충만함 속에서 질리도록 놀지 못한 것이 지금도 아쉽습니다.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하면 아이들도 변하기 마련입니다. 작가님이 아이였을 때, 작가님의 자녀분들이 아이였을 때 그리고 지금의 아이들이 모두 다른 시대적 환경과 경험을 지니고 있을 테니까요. 이러한 맥락에서 새로운 작품을 구상하실 때, ‘어른들이 아이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가’와 함께 ‘요즘 아이들에게 그 이야기를 어떻게 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고민도 많으실 것 같은데, 어떠신가요?

 

시대가 변하고 환경이 변해도 변하지 않는 사람의 마음이 있습니다. 어린이책 관계자들은 그것을 동심이라고 보고 있지요. 시대에 따라 변하는 것은 그것이 표출되는 방식이나 전달되는 문체이지 동심 그 자체는 그대로 있다는 게 제 생각입니다. 마치 부모가 제 아이를 사랑하는 것은 똑같지만 어떤 부모는 자식을 꾸짖으며 사랑하고 어떤 부모는 자식을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어느 시대는 꾸짖으며 사랑하고 어느 시대는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이겠죠. 지금 시대는 용서하며 사랑하는 것 같습니다만(제 두 아이들을 볼 때) 그리 새로운, 지금 시대에 갑자기 튀어나온 고민은 아닙니다. 창작자들에게는 동서고금 늘 있어온, 오래된 미래와도 같은 문제입니다. 고민들이 너무 낯익어서 그런지도 모르겠지만 작가들이 작품 구상을 할 때는 이런 고민은 건너뜁니다. 작가들에게 진짜 고민은 이야기의 핵심이거든요. 물론 지금 아이들에게 더 흥미롭게 보이고 아이들이 이해할 수 있도록 줄거리를 꾸미는 것은 필요한 일이지만 이야기의 핵심을 손에 쥐면 그런 문제들은 글쓰는 과정에서 해결할 수 있습니다. 이야기의 핵심, 이것이 가장 중요합니다.

 

(어쩔 수 없이) 어른의 눈으로 작가님의 작품을 접하게 되는 저희로서는 참 신기한 생각이 드는 게, 어떻게 이렇게 아이의 눈높이를 유지하실 수 있으실까 입니다. 다 자란 어른이 아이와의 소통의 접점을 찾는 건 쉬운 일이 아닐 텐데, 작가님께서는 그런 감각을 어떻게 유지하시는지가 궁금합니다.

 

어른 작가가 어린이책을 쓰는 것은 어린시절로 다시 돌아가 그 숲에 몸을 담그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숲은 자신의 유년의 숲이 아니라 인류의 유년의 숲이지요. 아이들은 자신의 숲밖에 살지 못합니다. 자신의 숲에서 자기만의 고유한 체험을 합니다. 고유하고 개별적이고 구체적인 체험을 하지요. 그때의 체험은 보편적이지 않습니다. 그 체험 속에서 보편성을 찾아낼 만큼 이성이 성숙하지 않기 때문이죠. 하지만 어른이 되어 그때를 회상하면 보편성과 같은 내재된 가치들을 찾아낼 수 있습니다. 자신의 개별적인 경험이 인류 모두의 경험이 되면서 보편성의 의미부여를 하게 되는 것이지요. 어른 동화작가들이 갖고 있는 것이 이것입니다. 이것이 없다면 아마도 아이들이 쓰는 자기들 이야기와 경쟁할 수 없을 것입니다.

 

아, 그런데 이게 질문의 답은 아닌 것 같네요. 질문의 답에 충실해 말한다면 제가 요즘 아이들과 소통하기 위해 별다른 감각을 갖고 있는 것은 아닙니다. 이야기를 시작하면 마법이 일어나 그 유년의 숲에서 다시금 놀고 있는 저 자신을 발견합니다. 그리고 어떤 아이를 만납니다. 그 아이를 저는 영원한 아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아이는 제 어린시절의 한 모습일 수도 있고, 제 두 아이의 모습일 수도 있고, 지금 자라고 있는 아이들이기도 하고 인류의 아이일 수도 있습니다. 아니 이 모든 아이들이 다 뒤섞여 만들어진 새로운 아이입니다. 그 아이와 저는 얘기를 합니다. 제가 아이가 될 수는 없지만 그 아이와 이야기를 하면서 원고를 써나갑니다. 그 아이를 잃어버리면 작품을 쓰지 못합니다. 잃어버리지 않도록, 늘 마음에 두고 있어야 합니다.   

 

얼마 전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 중  다섯 번째 도서인 《서로 도우며 살아요》이 출간되었습니다. 그간 이 시리즈 도서들은 문화관광부 '우수교양도서', 아침독서 책둥이, 학교도서관저널 추천도서로 선정되는 등 대외적으로도 그 가치를 인정받아왔는데요. 처음 이 시리즈를 기획하게 된 계기는 무엇이었나요?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는 오래 전부터 써야겠다고 마음먹고 있던 이야기입니다. 어른들이 아이에게 어떤 이야기를 해 주어야 하는가에 대한 소명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기획되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에 대한 물음과 답으로부터 출발했고, 아이들에게 반드시 해 주어야 할 이야기들이라고 생각하고 진중하게 고민하며 책을 썼습니다.

 

그렇다면 '동물'을 이야기의 중심에 둔 특별한 이유가 있으신가요? 

 

인간의 삶을 이야기하기 위해서는 동물들의 삶을 들여다보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인간은 타자로 인해 '인간'이란 존재의 고유성을 깨닫습니다. 동물은 인간의 진화 과정 중 인간과 제일 가까운 타자로서 인간의 가치판단에 근원을 제공합니다. 또한 동물을 통해 인간을 고찰할 수 있습니다. 인간의 삶 역시 동물의 삶과 다르지 않기 때문이죠. 말하자면 탄생에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일생 동안 겪게 되는 성장의 과정, 생존의 방법, 각자의 개성, 부모의 사랑, 가족과 집, 공생, 놀이, 의사소통의 단면들이 동물의 삶 속에도 그대로 녹아 있고, 이를 통해 삶의 기본이 되는 것, 사람이 살아가는 관계의 기본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특히 종차별주의에 사로잡힌 동물에 대한 가치관이 변하고, 생명에 대한 존중과 관심이 생기며, 동물의 삶을 통해 인간이 어떻게 살아가야 할지에 대해 생각보길 바랐습니다. 

 

게다가 그림책의 관점에서 보았을 때 아이들에게 '동물'을 주인공으로 한 이야기를 들려주는 것은 매우 큰 의미가 있습니다. 그동안 사람들은 동물의 아름다운 가치를 무시해왔습니다. 사람들의 편의에 따라 해로운 동물과 이로운 동물로 나누고 해로운 동물은 분노와 혐오를 가지고 대했으며 이로운 동물은 가까이 두면서 이용해왔지요. 그런데 이건 어디까지나 사람의 편에서 동물을 생각해 온 것이지 동물 그 자체와는 아무 상관이 없는 편견과 편애입니다. 하지만 아이들은 어른들처럼 동물을 이용하거나 자신의 소유로 생각하지 않습니다. 말하자면 깨끗한 백지 상태란 말이죠. 이런 아이들에게 동물을 동등한 생명체로서 소개해줄 때 동물에 대한 가치관과 시선은 완전히 새로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동물에 대해 따뜻한 시선을 만들어 주는 것이 상당히 중요합니다. 어린 시절에 동물의 아름다운 가치를 발견하게 해주면 그것은 일생을 통해 이어질 것이고 이후 어른이 되어 행할 수 있는 여러 활동에 큰 영향을 가져올 테니까요. 그래서 전 이 책이 아이들은 물론, 책을 읽어주는 기성세대들에게도 동물의 시선에 대한 변화를 가져오는 작은 불씨가 되길 희망하고 있습니다.

 

문화선진국의 척도는 사회적 약자에게 어떠한 배려를 하는지로 결정됩니다. 여성, 아이, 장애인, 소수자 외에 '동물'도 포함됩니다. 대문에 동물 이야기를 통해 문화선진국으로서 우리나라가 가져야 할 가치를 이야기하고도 싶었습니다.

 

여성, 아이, 장애인, 소수자, 동물을 연장선상에서 생각한다는 점에 공감합니다. 종차별주의를 언급하기도 하셨는데요. 인간은 자신과 동물뿐만 아니라 같은 인간도 차별하는 유일한 종입니다. 그런 관점에서 요즘 들어 가시화된 학교 폭력이나 왕따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시는지요? 아이를 둔 부모로서, 아이를 위한 책을 쓰는 작가로서 나름의 생각을 가지고 계실 것 같습니다.

 

《내 짝꿍 최영대》를 썼을 때만 해도 따돌림 문제가 그리 일반화되지 않았습니다. 간혹 있는 일이었지요. 하지만 웬일인지 책을 내고 나서 따돌림 문제가 불거지기 시작했습니다. 제가 그리 느껴서인지도 모르겠습니다만. 이러한 문제들은 아이들을 가두어 키우는 우리 현실과 관계가 있겠지만 아이들이 자신의 존재의미를 키울 수 없는 인문학적 풍토가 부족한 것도 한 이유라고 생각합니다. 노숙자들을 대상으로 한 인문학 강좌가 기대 이상의 효과를 거둔 것은 좋은 사례입니다. 

 

집단의 한 개체를 배척하고 혐오하는 것은 인간을 포함한 동물의 습성 중 가장 고약한 성향입니다. 인간을 하등동물보다도 못한 존재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죠. 인간이 동물보다 진화되었다고 믿는다면 동물도 안 하는 짓을 당장 멈추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아이를 대상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더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모르겠지만 따돌림 당하는 아이들이 가엾고, 그런 상황을 여태껏 개선하지 못한 우리 어른들이 부끄럽습니다. 그러나 <내 짝꿍 최영대>의 마지막 장면에 희망이 있습니다. 아이들이 영대에게 말을 가르쳐주며 영대를 보살핍니다. 영대에게 관심과 사랑을 주고 있습니다. 그것이 출발점입니다. 《내 짝꿍 최영대》는 우리 모두에게 출발점을 일러주고 끝이 납니다. 책은 그러한 것이어야 한다고 봅니다.  

 

글과 그림이 참 조화롭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처럼 글과 그림 작업이 각각 별도로 이루어지는가 하면, 글과 그림 작업을 작가 혼자 하는 경우도 있는데요. 그런 점에서 작업 과정에서 작가님 스스로 느끼는 장단점이 있을 것 같습니다.

 

글과 그림을 함께 하는 작가들을 보면 경외심이 듭니다. 저는 ‘천재’라고 부르죠. 그들의 정신세계는 글만 쓰는 사람과 그림만 그리는 사람의 정신세계와는 분명히 다를 것입니다. 글과 그림을 같이 한다면 더할 나위 없지만 이렇게 천재가 되기 위해서는 해결해야 할 문제점들이 있습니다. 책을 다 덮고 나서 “이게 이야기의 끝인가?” “무슨 이야기를 하려고 한 거지?” “뭔가 붕 뜬 것 같은 이 느낌은 뭐지?” 하는 등의 의문을 들게 한다면 이야기의 완결성에 뭔가 취약한 점이 있다는 것입니다. 그림 쪽의 사람들이 이야기의 완결성에 좀 더 매진한다면 천재 그림책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글과 그림을 따로 한다면 이것도 나쁘지 않습니다. 두 천재가 만나서 시너지 효과가 나서 새로운 천재가 만들어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자신이 글만 쓴다거나 그림만 그린다고 해서 글, 그림을 같이 하는 사람을 시샘할 필요는 없습니다. 각자의 운명대로 이점이 있으니까요.

 

몇 해 전에 그림을 배운 적이 있는데 연필 끝에서 만들어지는 세상이 정말 놀라웠습니다. 그것이 조악한 그림이든, 무엇을 그렸든 그 순간 저는 ‘창조자’였습니다. 또한 그때 처음으로, 아니 새롭게 세상에 입체적이라는 것에 놀랐습니다. 그동안 세상이 입체적이라는 것을 잊고 있었던 모양입니다. 글 쓰는 사람들에게 세상은 돋을새김을 한 부조와 같을지 모릅니다. 그림을 그리면서 지구가 정말 둥글다는 것에 대해 손의 감각으로 느낄 수 있었습니다. 둥근 지구를 살짝 만져본 느낌이었습니다. 그 다음에 온 깨달음은 글을 쓰는 거나 그림을 그리는 거나 마찬가지라는 것입니다. 그림을 그릴 때 형태를 그리고 묘사를 하고 그림자를 그려 넣고 채색을 하는 것처럼 글을 쓸 때도 똑같은 과정이 있다는 것입니다. 형용사와 부사는 묘사를 하고 문장은 선을 긋는 것과 같고 명사는 빨간색, 동사는 파란색 등등… 어쨌든 그림을 배우면서 그림 작가들의 정신세계를 좀 더 잘 이해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그림의 언어로 그들에게 이야기하면 약간 놀라는 눈빛(저만의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을 되받곤 합니다.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는 여러 화가분들의 그림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그림들이 완성도가 높아 보입니다.

 

 

그림책의 반쪽 생명은 그림이 완성합니다. 글 작가가 아무리 원대한 꿈을 품고 글을 써도 그림이 그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면 반쪽자리 책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고요. 그런 면에서 전 참 복이 많은 사람입니다. 이 책이 출간되기까지 화가와 출판사와 수만은 기획회의를 거쳤는데, 어느 누구 한 명도 퀘도를 이탈하지 않았다고 생각합니다. 모두 한마음이었다는 뜻입니다.

 

 

한 권의 그림책에는 기본 10마리 이상의 동물들이 출현합니다. 그림작가의 입장에서는 매 페이지마다 종이 다른 동물들을 그려낸다는 것이 결코 쉬운 일이 아닙니다. 다른 그림책의 10배의 자료가 필요하기 때문이지요. 실제로 그림작업을 시작할 때 작가, 화가, 출판사가 각각 동물에 대한 자료를 모았습니다. 세계 여러 나라의 동물 그림책은 물론 둥물에 관련한 단행본은 거의 모두 훑었고, 각종 다큐멘터리와 동영상 자료, 사진 자료들까지 최대한 수집하여 공유하였습니다. 우스갯소리로 이 시리즈가 끝나면 바로 동물도감 시리즈를 그냥 만들 수 있겠다는 이야기도 했지요. 다들 동물박사가 되었을 겁니다.

 

 

이 시리즈 작업에 함께 한 그림작가분들은 모두 동물에 대한 사랑이 남다른 분들이기도 합니다. 그런 마음이 아니면 이 작업을 함께 하기 힘들었을 거예요. 그림책의 한 장면 한 장면이 수많은 고민 끝에 나온 장면들입니다. 한 페이지 안에 적어도 수십 마리 이상의 동물이 숨겨져 있다는 이야기도 했습니다. 한 마리의 도물을 그리기 위해 수십 번의 시행착오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면에서 이 책의 결과물은 저의 기획의도가 잘 반영된, 최선의 결과물이라고 생각합니다.

 

 

1권에서 10권에 이르는 분량을 작업하는 동안 동물도감을 만들어도 될 만큼 많은 자료 조사를 했다고 말씀하셨는데요.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가 아이들에게 접근하는 책이라면, 어른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책과 다큐멘터리도 있을 것 같습니다. 준비 기간에 접한 매체 중에 특별히 몇 가지 소개해 주신다면요?

 

동물과 환경에 관한 다큐멘터리는 모두 도움이 됩니다. 책은 여러 권이 있지요. 동물에 대한 관심을 열어준 책은 정신세계사에서 나온 《동물도 말을 한다》입니다. 그 책을 읽고 저는 깜짝 놀랐습니다. 아, 그렇구나 하고요. 그러곤 제가 키우는 김깜돌과 해리에게 “우리 이제 말하고 지내자.”라고 하며 수차례 말을 걸었습니다(그애들은 ‘우리 눈빛으로만 말해요.’ 라고 답변했지요.) 다음 책으로는 《만물은 서로 돕는다:크로포트킨의 상호부조론》입니다. (이 책은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의 다섯 번째 책에 그림을 그린 장호 씨가 빌려갔는데 아직 돌려주지 않고 있습니다. 이 글을 보면 돌려줄지 모르겠어요.)

 

 

가장 인상깊게 본 책은 《모든 것은 느낀다》(안드레아스 베버)입니다. 이 책은 저에게 개안(開眼)과 같은 충격을 주었습니다. 이 책을 읽으며 모든 문장에 밑줄을 긋고 싶은 심정이었습니다. 이런 책이 또 하나 있는데 《철학 대 철학》입니다. 이 책은 동물과는 큰 상관이 없지만 동물을 비롯한 우리 세계에 대한 큰 그림을 그릴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그 외 많은 동물 관련 책들을 읽었지만 가장 최근에 읽은 《동물을 먹는다는 것에 대하여》란 책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이 책을 읽고 나니 ‘이제 이걸로 동물 책은 다 읽었다’란 느낌이 들었습니다. 동물 책의 결정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도 몇몇 책을 든다면 《살아남은 것은 다 이유가 있다》와 《닮은꼴 영혼》입니다. 덕분에 학교 다닐 때 게을리한 동물과 자연 공부를 실컷 했습니다. 미루어둔 공부는 언젠가 하게 된다는 것을 막연히 느꼈죠.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와 관련하여, 책을 펴내면서 가장 중요하게 생각했던 점은 어떤 것이었나요?

 

집필 과정에서 절대 놓치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점이 바로 '인간의 시선에서 동물을 바라보지 않는다'라는 것입니다. 동물을 인간의 생각으로 판단하고, 의인화시키는 것을 배제하기 위해 애를 썼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가 얼마나 동물을 소유물로 대상화하고 있었는지에 대해 다시 한번 깨닫기도 했습니다.

 

이 시리즈는 총 10가지 주제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이 주제들은 동물이나 사람들에게 동등하게 적용되는 자연의 섭리이기도 하지요. 어린이들에게 이런 가치들을 잘 전달하기 위해 수많은 동물들의 삶을 쫓아다니며 각 권의 주인공을 선정했습니다. 이 시리즈를 읽는 아이들이나 어른들 모두가 모든 동물, 더 나아가 이 지구의 모든 생명에 대해 존중하는 마음을 가졌으면 좋겠습니다. 이 책이 여러분의 마음을 움직여 모두 함께 공존하며 평화롭고 행복한 세상을 만들어나갈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습니다.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가 동물을 통해 인간의 삶에서 가장 기본적이면서도 중요한 가치를 생각해보게 했다면, 우리가 흔히 접할 수 있는 일상의 모습을 통해 아름다운 가치를 일깨워주는 책 또한 있습니다. 바로 《아름다운 가치사전》인데요. 이 책을 보면서 저는 특히, 나의 가치에 대해 설명하고 있는 사례가 또 다른 가치들을 자연스럽게 품고 있는 게 좋았습니다. 책 구성에 대한 설명에서도 이점을 명시하고 있는데, 이러한 방식을 처음에 어떻게 생각하게 되셨는지요. 그리고 각 가치에 대한 사례의 아이디어는 어디에서 얻으셨는지도 궁금합니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을 구상하기 전에 저는 어린이 사전을 만들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영어와 불어권 국어사전을 사서 읽었는데 낱말의 정의를 설명할 때 추상명사의 경우, 사례를 들어 《아름다운 가치 사전》처럼 하는 것이었어요. 거의 대부분 그렇게 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가치를 알려주는 영미권 서적들에서도 그런 방식을 발견했습니다. 그런 방식으로 제 두 아이들에게 설명을 해주었더니 바로 이해를 했고요. 그래서 아이들에게는 개념정의보다는 사례를 통한 이해가 더 효과적이라는 것을 믿게 되었죠. 《아름다운 가치 사전》에 나온 각 사례들은 대부분 제 두 아이로부터 얻었습니다. 사람들은 제가 그런 아름다운 책을 썼으니 얼마나 아이들을 잘 키웠겠느냐고 시샘어린 질문을 하는데 그런 질문에 제가 답하지요. “오죽 하면 그런 것을 썼겠습니까?” 아이들은 작가의 아이들이나 비작가의 아이들이나 다 똑같습니다. 

 

사실상 ‘가치’란 이에 반하는 수많은 현실들 사이에서 노력을 통해 지켜나가야 하는 것이기도 한데요. 그래서 이 가치를 믿고 따르는 아이들이 이와 다른 현실을 접하며 되면 상처를 받게 될 것도 같고요. 그리고 이 아이들을 바른 길로 이끌어가야 할 책임이 있는 어른에게는 책이 말하는 바와 다른 세상을 어떻게 설명해야 할지에 대한 어려움이 따를 테고요. 이런 상황에 처한 부모나 선생님이 작가님께 의견을 구한다면 어떤 말씀을 해주실 수 있을까요?

 

지난해 전국국어교사 연수 때 이와 비슷한 질문을 해주신 선생님이 계십니다. 그 선생님의 질문이 너무나 소중하고 간절해서 ‘동물에게 배워요’ 네 권을 몽땅(그때는 네 권까지밖에 나오지 않았습니다.) 드린 일이 있습니다. 저는 이렇게 제 생각을 일깨우는 질문을 좋아합니다.

 

그 질문에 제가 이렇게 답을 했습니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은 우리의 이상이고 《내 짝꿍 최영대》는 우리의 현실이라고요. 우리는 현실만 갖고 살 수도 없고 이상만 가지고도 살 수 없습니다. 현실이 없는 이상은 공허하고 이상이 없는 현실은 암울하고 희망이 없지요. 사는 의미가 없습니다. 저는 아이들에게 이야기책만 읽도록 권장하지는 않습니다. 이야기책에는 우리의 현실이 나와 있지요. 물론 거기에도 우리의 이상이 있지만 몰래 숨어 있습니다. 가벼이 읽으면, 그리고 때가 안 맞으면 이상을 못 보고 지나갈 수 있습니다.

 

《아름다운 가치 사전》에는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남과 어떤 관계를 맺어야 하는지 조목조목 이야기하고 있습니다. 일종의 위인전인데 자기 자신을 위인으로 만드는 책이지요. 이 원고는 여러 군데 출판사에서 퇴짜를 맞았습니다. 편집자들은 아이들이 이런 책을 읽고 싶겠느냐고 반문했습니다. 하지만 저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아이들은 자신이 올바로 성장하고 싶어한다고요. 자신이 하나의 인격체로서 크고 싶은 강렬한 욕망을 갖고 있다고요. 아이들을 존중해야 하는 것은 이러한 욕구를 갖고 있기 때문입니다. 단순히 그들이 우리의 사랑스런 자녀들이어서만은 아닙니다. 아이들의 간절한 마음과 제 믿음이 그 원고를 지켜냈다는 생각을 하면 지금도 가슴이 뿌듯합니다.  

 

나 아닌 다른 사람, 그리고 세상이 문제일 수 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같은 가치에 반하는 마음과 충동을 지니고 있는 아이들 스스로에게 그런 자신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다스려야 할지에 대해서도 가르쳐주어야 할 것 같은데요. 평소 이점과 관련하여 생각하시는 바가 있으신가요? 기획하고 있는 작품이 있는지도 궁금하고요.

 

최근 다문화와 관련된 원고를 탈고했습니다. 다소 딱딱한 책이 될 것 같은데 다문화를 비롯해 나와 다른 남에 대해 어떤 태도를 가져야 하는지에 관한 제 모든 생각을 거기에 담았습니다. 읽기 힘들어도 일생에 한번 읽는다 생각하고 읽어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에서는 대개의 경우 부모가 아이의 책을 골라줍니다. 최근에 아이를 위한 자기계발서적이 있고, 그런 책이 잘 팔리기까지 한다는 사실을 알고는 씁쓸했는데요. 그런 부모들에게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와 더불어 한 말씀 권하고 싶다면요?

 

‘동물에게 배워요’ 시리즈는 자기계발서가 아닙니다. 저는 진심으로 동물에게서 무언가 사람들이 배우기를 원하는 마음으로 이 책들을 썼습니다. 동시에 동물에게도 자기 나름의 삶이 있다는 것, 동물을 존중해야 한다는 것을 일깨우고 싶었습니다. 우리 인간도 같은 선상에서 살아가는 하나의 피조물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습니다. 우리의 삶이 태어나서부터 부모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자라고 힘든 것을 겪으며 성숙해지고 서로 돕고 살다가 때가 되면 자연으로 돌아간다는 것, 이를 테면 생명의 역사, 생명의 순환을 큰 그림으로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죽음을 알려주는 것은 불편한 일입니다만 숨길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리고 죽음이 있어서 우리 생에 더욱 소중해지는 것도 사실입니다. 동물을 통해 죽음과 삶의 의미를 되새겨볼 수 있다면 부드러운 공부가 되지 않을까 하고요.

 

시중에 나와 있는 자기 계발서 류의 책들을 보면 마음이 편치 않습니다. 새로운 과목이 하나 더 생긴 것 같아서요. 세상의 모든 책들은 다 자기계발서라고 것을 알아주셨으면 합니다. 우리가 웃고 떠들며 때론 화내고 살아가는 하루하루가 자기계발의 나날들임을 잊지 말기를 바랍니다. 부모의 행동이 아이들의 자기계발서임을 우리 모두 잊지 맙시다. 이 모든 것이 담긴 ‘그냥’ 책을 아이들에게 권해주기 바랍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52 53 54 55 56 57 58 59 60 ··· 105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