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멘델스존: 5개의 교향곡, 7개의 서곡] - 꽃피는 봄이 오면

 

클라우디오 아바도, 런던 심포니 오케스트라 | [멘델스존: 5개의 교향곡, 7개의 서곡] | DG COLLECTORS | 2003

 

내가 바로 엄친아다

 

음악가들의 삶이라는 게 어떤 땐 궁상맞기 짝이 없다. 물론 요즘에는 저작권의 개념이 비교적 분명해진 편이고 음악가들 스스로도 노동자로서의 자각을 갖고 자신의 실력에 합당한 보수를 요구하기도 한다. 그래서인지 몇 백 년 전의 음악가들처럼 허름한 옷을 입고 다니고 집세를 못내 이사 다니기를 밥 먹듯 하는 상황은 드물다. 하지만  여전히 ‘안정적’이라는 단어가 어울리는 직업이라고 보기는 힘든 것 같다. 물론 자기의 능력을 발판삼아 좋은 직장을 얻고 부족한 거 없는 삶을 영위한 경우가 없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서양 음악사 전체를 탈탈 털어봐도 은수저 물고 태어나서 죽을 때까지 경제적 걱정 없는 일생을 보낸 음악가는 그리 많지 않다. 이런 역사적 상황을 봤을 때, 멘델스존만큼 ‘억’소리 나는 집안배경을 가진 음악가의 존재는 참 불가사의하게 느껴진다 해도 과언이 아닐 것이다.

 

1809년, 함부르크의 은행장으로 일하던 아버지와 아마추어 음악가인 어머니의 밑에서 태어난 작곡가 펠릭스 멘델스존(F.B.Mendelsshon)의 집안은 그야말로 ‘있는 집’ 그 자체였다. 경제적 풍족함은 물론이고, 어머니는 영문학, 불문학, 이탈리아 문학 등에 박식했고 그의 누이인 파니(Fanny) 멘델스존은 천부적인 재능으로만 보면 오히려 멘델스존보다 한 수 위에 있다는 소리를 들었기에 문화적으로도 풍요로운 어린 나날을 보냈다. 파니 역시 작곡가로서 작품을 남기기도 했지만 여자라는 이유로 당시에는 큰 주목을 받지 못했었다. 이래도 멘델스존의 집안 배경이 얼마나 대단한지 모르겠다면? 흠... 자식이 음악에 재능이 있음을 알게 된 아버지의 어느 해의 생일 선물은 아버지가 직접 조직해준 소규모 오케스트라였다. 이제 좀 감이 잡히시는지?     

 

나 곡도 잘 써요!

 

멘델스존에 대한 부당한 과소평가는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살아 있을 때는 ‘궁핍한 음악가들의 복지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는 부잣집 도련님’ 취급을 받았고(사실과 다르다. 오히려 그 반대였다), 그의 음악 역시 덩달아 ‘심오한 고뇌의 흔적은 없고 오로지 가볍고 듣기 좋은 음악’만 추구한다는 평가를 받기도 했었다. 물론 음악적 측면에 있어서는 듣는 사람에 따라 평가가 갈릴 수 있겠지만, 그의 음악을 조금만 더 유심히 들어본다면 이러한 소리들이 얼마나 수박 겉핥기식의 비난인지 실감하게 될 것이다. 특히, 관현악곡을 다룰 때 보여주는 목관의 섬세한 울림과 화사한 색채는 아무나 흉내낼 수 없는 기술이며, 그에 대비되는 어두운 텍스처의 표현에 있어서도 상당한 밀도를 자랑한다. 유럽 각지를 여행하던 중에 받았던 인상을 바탕으로 작곡된(곡을 쓰게 된 동기부터가 오오...) 교향곡 3번 「스코틀랜드」와 4번 「이탈리아」의 첫 부분은 학생들의 관현악법 교재에 단골로 등장할 정도고, 피아노를 위해 작곡된 소품집인 「무언가(無言歌)」는 그 간결한 형식적 아름다움과 압축적인 화성의 표현력으로 인해 작곡을 공부하는 수많은 학생들에게 부러움과 존경의 대상으로 꼽힌다. 자, 멘델스존의 음악적 위치도 이제는 좀 감이 잡히시는지? 

 

햇살은 쨍쨍

 

멘델스존의 교향곡 4번 「이탈리아」는 애호가들의 귀에 익은 명곡이고, 그만큼 실제 연주 횟수도 많은 편이다. 햇살이 반짝이는 지중해의 풍경을 떠올리게 하는 친숙한 악상도 그렇거니와, 멘델스존의 최전성기에 작곡된 곡인만큼 다채로운 표현방식과 구성적인 면에 있어서 상당히 균형 잡힌 모습을 자랑한다. 하지만 실제로 이 곡을 아주 자연스럽게 연주하려면 높은 수준의 오케스트라가 필요하다. 앞서 말한 이 작품의 첫 부분에는 재잘대는 것 같은 목관악기의 빠른 리듬이 반주형태로 제시되는데, 이것이 깔끔하게 잘 연주되면 매우 효과적인 표현이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몹시 지저분하고 산만하게 들리기 때문이다. 또한 4악장에 등장하는 이탈리아의 전통 춤곡인 ‘살타렐로(Saltarello)' 역시 매우 빠르고 격렬하기 때문에 연주자나 지휘자가 자칫 박자를 놓치게 될 경우에는 나머지 뒷부분의 앙상블이 모조리 무너지는 ’대재앙‘을 초래할 수 있다.

 

현존하는 최고의 마에스트로 중 한 명인 클라우디오 아바도는 젊은 시절에 런던심포니를 지휘해 멘델스존의 교향곡 음반을 남겼는데, 이들은 그러한 위험요소들을 가볍게 뛰어넘을 뿐만 아니라 멘델스존이 의도했던 티 없이 맑은 음색을 마음껏 뽐내고 있다. 제 1바이올린의 자유로운 활놀림과 안정적인 목관의 음색은 기능미에서 최고수준에 오른 런던심포니의 면모를 드러내며, 4악장에서 보여주는 논리 정연함을 갖춘 격렬함은 악단이 태생적으로 가지고 있던 남성적인 음색을 한층 돋보이게 하는 매력을 갖고 있다. 다시 봄이 오려하고 있다. 구김살 하나 없이 화창한 남유럽의 모습을 노래한 멘델스존과 투명한 음색을 자랑하는 아바도의 지휘, 이보다 더 봄에 잘 어울리는 음반이 어디 있겠는가. 강력 추천이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박현준'님은?
편견없이 음악을 듣고 편견없이 생각하고 싶어하는 음대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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