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록 스피릿’을 찾아 떠나는 재미난 여행 - Paint it Rock


 

남무성, <Paint it Rock>, 고려원북스, 2009


음악을 좋아한다고 하면서도 ‘록’(Rock)은 언제나 ‘남’의 음악이었다. 이런 일도 있었다. 록을 좋아하는 선배 앞에서 “록은 시끄러워서 안 듣게 된다”고 했더니 선배는 “시끄러운 게 아니고 강렬한 것”이라며 핀잔을 주었다. 무슨 연유에서 록 음악을 멀리하게 됐을까. 조용한 산골짜기에서 자라 ‘강렬한’ 음악이 낯설었던 걸까. 아니면 마니아가 많은 록 음악에 발을 들여놓을 생각조차 하지 못했던 걸까. 이유가 무엇이든 록은 늘 바라봄의 대상이었을 뿐, 좀처럼 친해지지 못했다. 그런 가운데 만화책 한 권이 눈에 들어왔다.

그냥 지나가는 길에, 그것도 책 제목도 알아볼 수 없는 먼 거리였지만, 그림만 보고도 누가 그렸는지 알 수 있었다. 바로 재즈 입문서 <Jazz it up> 시리즈를 그린 재즈평론가 남무성이다. 재즈 매거진 <MM JAZZ>를 창간하고, 많은 공연을 기획한 그는 ‘재즈 초보’인 나에게 재즈의 재미와 지식을 선물했다. 이번 책은 만화로 보는 록의 역사 <Paint it Rock>이다. 오호라! 그와 함께라면 록 음악을 쉽게 만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렇게 록으로의 여행은 시작됐다.

쉽다, 재미있다, 그리고

이 책은 1950년대에서 70년대 사이에 펼쳐진 록의 현장을 생생하게 재현하고 있다. 60년대 로큰롤 밴드들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척 베리를 시작으로 로큰롤의 제왕이라 불리는 엘비스 프레슬리, 브리티시 인베이젼(British Invasion)의 대표주자 비틀즈와 롤링 스톤즈, 신의 경지에 오른 연주로 미국을 넘어 전 세계를 열광시킨 지미 헨드릭스와 에릭 클랩튼이 활동했던 크림 등 일일이 열거하기가 숨이 찰 정도 많은 뮤지션들이 등장한다. (좋아하는 뮤지션이 빠졌다 섭섭지 마시고, 일일이 열거하지 못한 뮤지션들은 <Paint it Rock> 목차를 보고 직접 확인하시길.)

<Paint it Rock>은 쉽고 재미있다. 혹자는 음악을 좀 더 알고 싶어 책을 펼쳤다가 전문가들의 화려한 수사에 기가 죽었던 땀만 삐질삐질 흘리고 책을 덮은 경험이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이 책 앞에서는 기죽을 필요 없다. 작가는 최대한 쉬운 표현으로 록의 정수를 전하고자 한다. (좀 어려운 말이 나오면, 책 속 인물들이 알아서 비난해준다.) 또 각자 개성을 따라 만든 인물들과 당시 상황을 재현한 그림들은 문자가 할 수 없는 명쾌함을 전달한다.

또 책을 읽는 가운데 ‘킥킥’ 웃는 경험을 하게 되는데, 이는 작가의 재치와 유머가 최대한 활용될 수 있는 만화이기 때문에게 가능하다. 이 책에서 문자 텍스트는 박스 안의 텍스트와 인물들의 말풍선으로 구분된다. 박스 안의 내용들은 역사의 실증적인 사실을 전달하는 반면, 말풍선의 내용은 말 그대로 작가의 상상력이다. 위대한 뮤지션이라 칭송받은 이들은 서로 엽기적인 대화를 나누고, 술과 마약으로 정신을 놓기도 하며, 거침없는 욕을 하면서 웃지 못 할 해프닝을 연출한다. 크림의 잭 브루스와 진저 베이커가 주먹다짐을 하고, 비틀즈의 존 레논과 폴 매카트니가 신경전을 벌이는 장면을 눈앞에서 보는 재미는 쏠쏠하다.
 


물론 쉽고 재미있다고 다 좋은 책은 아니다. 더욱이 록의 역사를 다루는 책이 본연의 역할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면 ‘절반의 실패’가 아닌 그냥 ‘실패’일 것이다. 하지만 <Paint it Rock>은 본연의 임무에도 충실하다. 수많은 뮤지션이 등장함에도 불구하고, 이들이 어떤 음악적 영향을 받았는지, 어떤 과정을 거쳐 위대한 뮤지션이 됐는지, 뮤지션들 끼리 관계를 맺고 영향을 주고받았는지, 그리고 한 뮤지션이 역사적인 측면에서 어디에 위치하고 있는지 잘 짚어주고 있다. 또 미국의 전후문화, 히피문화 등 미국 문화의 역사를 함께 서술하면서 뮤지션들이 대중문화에 끼친 영향을 보여준다. 그리고 각 뮤지션의 대표곡은 물론 그(녀)의 매력을 만끽할 수 있는 대표음반을 만날 수 있는데, 어떤 음반을 들을까 하는 고민이 사라지는 순간이다.

밥 딜런을 만나다

<Paint it Rock>과 함께 록으로의 여행을 하면서 한 곳에 정주하지 않고 끊임없이 고민하는 ‘록 스피릿’을 마주하게 됐다. 지극히 개인적인 얘기지만 밥 딜런의 삶과 음악세계를 보면서 무언가가 몸속에서 꿈틀대는 게 느껴졌다. 본격적인 음악활동을 시작하기 전 밥 딜런은 우디 거스리와 똑같은 가수가 되겠다고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던 어느 날, 죽음을 앞둔 우디 거스리는 미발표 곡을 밥 딜런에게 주겠다며, 자신의 집을 다녀올 것을 요청한다. 그 집으로 향하는 여정은 쉽지 않았고, 그 가운데 밥 딜런은 자신만의 노래를 불러야겠다는 일종의 깨달음을 얻게 된다.

밥 딜런은 말했다.
“우디는 시적인 영혼을 갖고 있는 사람이에요. 시인이었죠. 그는 일하는 사람과 일하지 않는 사람들로 세상을 나누고 인류의 해방에 관심이 많았으며 살 만한 세상을 만들고 싶어 했어요.”
딜런이 주목한 바로 그 점은 의식을 담고 있는 노래를 불러야 한다는 자의식의 출발이었다. (p 71)


단 세 컷의 만화에서 펼쳐진 대화를 보며 온 몸에 소름이 돋았다. 자의식. ‘나에게 자의식이 있었는가.’ 책을 보고 (부족하지만) 글을 쓴다는 사람이 ‘자의식’이란 말을 낯설어 하다니. 그저 ‘좋은 책 많이 보고, 많은 사람들에게 소개한다’는 생각으로 책을 보고 자판을 두들겼다. 하지만 이것에 자의식이란 말을 붙이기엔 뭔가 부족하다. 이때부터 매 줄 마다 자의식을 담고 싶다는 욕망이 생겼다. 먹고 사는 것을 넘어, 그저 책을 읽고 글을 쓰는 것을 넘어선 그 무언가. 그 무언가는 아직 스쳐지나가는 바람(Blowin' In The Wind)에만 머물지 모른다. 하지만 이제 길을 나섰으니 언젠가 도달할 수 있겠지. 그런 의미에서 밥 딜런은, <Paint it Rock>은 소중하다. 반디(ak20@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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