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ITNEY HOUSTON: WHITNEY HOUSTON] - The Diva, A Trivute to Whitney Houston


 

WHITNEY HOUSTON | [WHITNEY HOUSTON: WHITNEY HOUSTON] | Sony Music | 2009 

 

쇼는 끝났다.

 

먼지 낀 목소리를 딛고 기적의 퍼포먼스로 부활, 그래미에 올라 “이 상을 주님에게, 그리고 나를 믿어준 여러분 모두에게 바칩니다” 라고 외칠 것만 같았던 한 순간은 결국 영원히 미뤄졌다. 그래미의 여왕이자 20세기가 낳은 가장 위대한 가수 중 한 명인 휘트니 휴스턴(Whitney Houston), 그녀는 그래미 전야에 세상을 뒤로 했다. 그렇게 자신의 스토리의 최종장을, 팝의 중요한 한 페이지를 열고 닫았다.

 

그리고 다시 또 일주일이 흘렀다.

 

이제 그저 평범한 음악팬으로서 가지는 당연한 아쉬움은 뒤로하고, 그녀가 가는 길에 한 명의 글쓰는 사람으로서 보낼 수 있는 한마디를 더할 차례다. 나에게, 모두에게, 그리고 팝의 역사에 휘트니 휴스턴은 어떤 존재였을까. 그 대답을 위한 길지만 심각하지 않은,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표하는 경의의 헌사다.

 

시대를 규정하는, 퍼포먼스의 양식을 정의하는 여느 거장들과 마찬가지로 그녀의 등장은 자못 심상치 않았다. 바야흐로 대중음악계에 새롭게 몰아닥친 일렉트로닉 사운드의 열풍. 그 낯설고 새로움에 매료되어 인공적이고 작위적인 소리들을 저마다 방만하게 탐구하며 흥분에 취해있었던 시절이었다. 록 그룹들은 프로그레시브 록의 후계자로 너나 할 것 없이 일렉트로닉 댄스를 지목했고, 건조하고 기름 빠진 목소리가 소위 싱어-송라이터들의 풍성한 창법을 대체하기 시작했으며, 꽃을 피우지도 못하고 사멸되는 운명을 겪어야 했던 디스코와 훵크 리듬의 명맥 역시 유럽에서 건너온 뉴웨이브 사운드가 잇고 있던 바로 그 시절, 1980년대였다.

 

느닷없이 마이클 잭슨이라는 예상치 못한 괴물이 나타나 팝의 양식과 산업의 판도를 뒤바꾸리라고 생각한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때마침 보수화된 정치사회적 분위기와 교묘히 맞물려 60년대 말을 화려하게 수놓았던 “사랑의 여름”(Summer of Love) 이후로 가장 심각한 불황을 맞닥뜨린 레코드 업계에 마이클 잭슨은 그야말로 구세주였다. MTV와 어덜트 라디오 스테이션을 한꺼번에 모두 아우르는 이 파격적인 문화상품에 대중들은 충격을 받았고, 평론가들은 할 말을 잃었다. 그러는 와중에 영민한 레코드 모굴들은 이 성공가도의 면면을 주의 깊게 관찰하기 시작했다. 저마다 새로운 ‘Next Big Thing’을 곧 만들어 낼 것이라 다짐하며. 그 중의 한 명이 바로 휘트니 휴스턴의 영원한 멘토, 아리스타 레코드사의 사장 클라이브 데이비스(Clive Davis)였다.

 

Clive Davis: 위대한 멘토

 

하버드 출신의 법률가이자 사업가, 기획자인 데이비스의 귀에 “이제껏 그 어디서도 들어본 적도 없는 최고의 목청이 나타났다”는 소문이 들어간 것은 1980년대 초의 어느 날이었다. 가스펠의 전설 씨씨 휴스턴의 딸이자 그가 이미 수퍼스타로 키워낸 알앤비의 거물 디온 워익의 조카라는 이유만으로도 이미 알 만한 사람들 사이에서 그 유명세는 파다했고, 훌륭한 레코딩 아티스트로 만들어질 충분한 자격조건이 되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데이비스는 조금 더 시간을 들여 이 재능의 숨겨진 매력들을 새삼 관찰하기 시작했다. 또 한 명의 알앤비 스타? 그의 생각은 달랐고 결국 이전의 세대들을 수놓았던 소위 ‘소울 디바’들과는 성격이 다른, 전혀 새로운 포텐셜을 발견했다고 스스로 확신하기에 이른다. 늘 그래왔듯 그의 판단은 너무도 정확했다.

 

산타나(Santana), 에어로 스미스(Aero Smith), 심지어는 어스 윈드 앤 파이어(Earth, Wind and Fire)등과도 작업하며 변방의 장르 아티스트들을 모두 메인스트림 팝의 수퍼스타로 만들어내는 데에 독보적인 수완을 발휘해온 이 거장은 휘트니가 향후 나아가야 할 방향 역시도 비교적 정확히 그려내고 있었다. 가장 큰 전제는 엄마인 씨씨 휴스턴은 물론이요 어린 시절부터 음악적으로, 인간적으로 가장 큰 영향을 전해준 그녀의 대모 아레사 프랭클린(Aretha Franklin)으로부터 사사받은 가스펠 창법에 기반한 독보적인 발성과 바이브였다. 하지만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그 위에 팝의 관용성과 미려함을 덧입히는, 조금은 무모해 보이는 작업을 시도하고자 했다. 레코드 제국 콜럼비아 레코드사의 체계적인 매니지먼트 시스템 역시 그 결정을 신뢰하고 지원했다.

 

그로부터 다시 4년. 결과물은 기대 이상이었다. 아레사의 파워, 로버타 플랙(Roberta Flack)의 세련미, 다이애나 로스(Diana Ross)의 센슈얼한 여성미가 조화롭게 겸비된, 한 약관의 파릇파릇한 디바가 세상에 나오자 대중들의 열광적 환호는 마치 준비된 것인 양 당연했다. 그렇게 클라이브 데이비스는 그의 커리어 사상 최고의 보물을 자신의 이력에 추가했다.

 

The best producers of all time: 최고의 조력자들

 

클라이브 데이비스의 예상과는 다르게 뼛속까지 가스펠의 기운이 스민 휘트니의 목소리를 팝의 디바로 만드는 공정에는 지난한 시간이 인내되어야만 했다. 가장 큰 이유는 바로 그 포텐셜 덩어리인 목소리가 품은 가스펠 기반의 팝 디바라는 포맷의 전무후무함 때문이었다. 사실 돌이켜보면 휘트니가 처음은 아니었다. 아프리칸-어메리칸 음악의 긴 역사에 팝 발라드 풍의 알앤비나 소울이 없었던 것은 아니었고 저 유명한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패티 라벨(Patti Labelle), 글래디스 나이트(Gladys Knight) 조차도 히트곡 레퍼토리에 틴 팬 앨리 스타일의 팝 발라드나 펑키한 댄스뮤직 하나쯤은 당연한 아이템처럼 갖추고 있었다. 이는 크로스-오버 청취자 확보를 위한 당연한 마케팅 전략이었고, 그들 중 몇몇은 인종 마켓을 넘어 제법 큰 성공을 거두기도 했다. 그러나 딱 거기까지였다. 흑인으로서는 유달리 우아한 톤과 매너를 가진 다이애나 로스가 보수적인 백인청취자들 사이에서도 그 인기가 대단했다고는 하나 음악을 잘 아는 그 누구도 교회음악에 뿌리를 둔 흑인 여가수가 바브라 스트라이샌드(Babra Streisand)처럼 노래를 부르며 팝의 전면에 “디바”라는 포맷으로 승부를 걸어오리라고는 예상치 못했을 것이다. 그리고 이 아이디어가 생소한 건 음악 현장에 있는 프로듀서들도 마찬가지였다.

 

주류 팝의 대가들은 거의 대부분 휘트니와의 작업에 난색을 표했고, 퀸시 존스나 스티비 원더 같은 거장 소울 뮤지션들에게도 부담스러운 프로젝트이긴 마찬가지였다. 최고의 잠재력을 가진 목소리를 두고 정작 전문가들 사이에서는 팝 뮤지션으로서의 성공에 대해서 반신반의한 의견이 우세한 가운데, 뜻밖에 휘트니의 메인 프로듀서로 자청한 인물은 백인 뮤지션인 마이클 매서(Michael Masser)였다. 팝 발라드의 파퓰러한 호소력에 완벽한 목소리를 찾았다고 믿은 그는 최상의 곡들을 아낌없이 선사하며 휘트니의 데뷔를 도왔다. 조지 벤슨의 원곡을 재편곡, 잊을 수 없는 디바들의 송가(anthem)로 만들어 낸 「The Greatest Love of All」을 필두로, 휘트니 커리어 자체를 규정하는 팝 발라드들, 「Saving All My Love For You」, 「All At Once」를 1집에서, 「Didn’t We Almost Have It All」를 2집에서 작업하며 모든 곡을 넘버 원 차트에 올려놓았다. 휴스턴의 전설은 분명 매서의 손에서 만들어졌다.

 

매서가 밸러디어(Balladeer)로서의 휴스턴의 잠재력을 깨워냈다면, 이를 극한의 레벨로 몰아붙인 이는 다름 아닌 데이빗 포스터(David Foster)였다. 1992년, 휘트니의 첫 영화 주연작이자 싱어로서의 최정점을 찍은 보디가드(The Bodyguard)의 사운드 트랙에서 포스터는 소위 발라드 3연타라 불릴 대작들, 「I Will Always Love You」, 「I Have Nothing」, 「Run To You」를 모두 프로듀스했다. 소스도 컨츄리, 팝, 알앤비로 다양했던 것은 물론이거니와 편곡적으로도 파격적인 전조와 아카펠라, 난해한 고음역대를 넘나드는 구성으로 이미 완성되어 있던 휘트니 휴스턴의 음악 스타일뿐 아니라 80년대 스타일의 관습적인 발라드 형태를 한 단계 넘어서고자 했다. 소위 “파워 발라드”로 불릴만한 이 압도적인 스케일의 슬로우 넘버들은 결과적으로 차트에서의 성공을 넘어 발라드라는 음악의 새로운 작법을 환기시켰고, 이후 모든 아마추어 컴피티션에서 디바를 꿈꾸는 여가수라면 넘어야 할 시험관문 같은 소스곡으로 남게 된다.

 

그녀의 목소리를 빌어 이름을 알린 수많은 뮤지션들이 이후 의심할 바 없는 성공가도를 이어나간 것도 특기할 만한 일이다. 「How Will I Know」와 「I Wanna Dance With Somebody」의 흥겨운 비트를 비롯, 알앤비/소울을 넘어 파퓰러한 매력을 휘트니에게 덧입히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나라다 마이클 월든(Narada Michael Walden)은 이후 휘트니 이후 최고의 싱어라 불릴 머라이어 캐리(Mariah Carey)를, 3집 앨범의 전반을 도맡았던 베이비페이스(BabyFace)는 또 한 명의 알앤비 디바 토니 브랙스턴(Toni Braxton)을 스타로 만들었고, 데이빗 포스터는 셀린 디온(Celine Dion)을 발굴, 결과적으로는 휘트니를 잇는 월드 스타로 안착시키며 90년대 팝의 결정적인 순간들을 함께 이끌어냈다. 공교롭게도 이들 모두 휘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자랐거나 영감을 받았던 가수들이었다. 물론 그 중에 누구도 완전히 휘트니의 업적을 뛰어넘진 못했지만.

 

The Diva, and the Voice

 

휘트니의 독보적인 아성은 바로 그 목소리에서 비롯된다. 그것은 한 명의 팝 아티스트가 건드릴 수 있는 사실상 모든 결의 보컬 테크닉과 감수성을 품고 있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고음역대나 성량으로만 순위가 가려지는 단순한 가창력의 잣대에서는 물론이거니와 그것을 통제하고 구사하는 기술, 가사 전달 능력, 그에 더한 감성과 퍼스낼리티에 있어서도 어느 순간에건 할 것 없이 한결같은 수준을 뽐냈다. 하지만 그보다 더 중요한 것은 그녀가 자신의 목소리와 매너로 청자들이 가진 보다 보편적인 감수성의 영역을 건드리면서 새로운 보컬리스트의 이미지를 환기시켰다는 점이다. 이를테면 「You Give Good Love」나 「Saving All My Love For You」에서 실시간으로 변하는 미세한 톤의 변화들은 쉬운 예가 될 것이다. 우아함과 파워풀함에 섬세한 전달능력을 아우른 휴스턴의 목소리는 테크니컬한 면에 치중하는 경향을 띠던 관습적인 소울 보컬들이나 지나치게 프로듀싱 테크닉 위주로 재편되어 힘이 빠져버린 당대 대부분의 팝 보컬리스트들과는 분명히 구별되는, 새로운 흐름을 견지하고 있었다.

 

이 비범한 재능은 업 템포의 비트 위에서도 예외 없이 그 자유로움을 뽐냈다. 블랙 바비인형 같은 여성스러운 이미지로 굵은 선의 음들을 막힘 없이 훑어내리는 「How Will I Know」의 캐취한 매력은 물론이요, 선배 훵키소울 가수들의 유산을 잇는 트랙들, 이를테면 「I'm Your Baby Tonight」, 「Queen of the Night」,  「I'm Every Woman」의 두텁고 강렬한 내지름은 위대한 선배들인 아레사 프랭클린이나 샤카 칸의 아성에 견주어도 결코 모자람이 없는 수준이었다.

 

무엇보다도 휘트니는 자신의 음악적 고향인 가스펠에서 가져온 호소력과 긍정성이 담긴 특유의 울림을 팝 안에 절묘하게 녹여내며 좋은 메시지가 담긴 노래를 전달하는 최고 악기로서의 보컬리스트의 위상을 제고시켰다. 팝적인 편곡으로 슈거코팅되긴 했지만 자못 Spiritual한 뉘앙스를 발견할 수 있는 「The Greatest Love of All」의 호소력 짙은 울림은 영락없는 가스펠의 현대적 변형이다. 조지 벤슨(George Benson)을 비롯, 이미 몇몇 가수에 의해 녹음되었지만 이전에는 미처 탐구되지 않은 멜로디의 파워와 호소력을 새삼 이끌어 낸 것도 전적으로 그녀의 탁월한 역량 때문일 것이다.

 

우리에게는 그 기억이 새삼스러운 1988년 하계 올림픽의 기념음반 타이틀곡인 「One Moment In Time」이나 애초에 가스펠에 영향을 받아 만들어진 포 탑스The Four Tops의 원곡인 「I Believe in You and Me」 역시 마찬가지. 단순히 예쁜 멜로디를 아름답게 부르는 수준을 넘어서 강하고 긍정적인 뉘앙스로 메시지 송이 품어야 하는 정신을 마치 영가를 부르듯 신실하게 뿜어내고 있음을 쉽게 알아차릴 수 있다. 경박하지 않은 아름다움에 일면 거친 톤 마저 자유자재로 통제하는 휘트니의 내공 앞에 팝에 경도되었다는 미디어의 손쉬운 비판은 일견 머쓱해져버리고 말았다.

 

자, 이제 이 시리즈의 극적인 완결판으로 각종 미디어들이 미국 스포츠 역사상 최고의 순간 중 하나로 꼽기를 주저하지 않는 1991년 수퍼볼 미국 국가 Star Spanggled Banner 공연을 이야기할 차례이다. 점잖게 빼입고 나와 거룩한 표정으로 고음만을 자랑하는 데 급급했던 진부한 트렌드를 거부, 그 대신 트레이닝복 차림으로 단에 올라 시종일관 긍정적이고 확신에 찬 그네들의 애국심을 일깨웠다. 그 뒤로 수퍼볼 미국 국가 퍼포먼스의 보컬 편곡 방식이 휘트니 버전으로 일괄 통일되었음은 물론이다. 실력 있는 가수라면 누구나 거쳐야 하는 또 하나의 검증 관문처럼 말이다. 저 위대한 지미 헨드릭스(Jimi Hendrix)가 우드스탁의 미국국가 연주를 통해 반항적인 록 스피릿의 한 순간을 시연했다면, 휘트니야말로 팝의 화신으로서, 알앤비의 총아로서 자신의 위상의 절정을 맘껏 내지른 한 순간이라 부를 수 있을 것이다.

 


불공평하지만 떠난 뒤에야 새삼스레 자명해지는 몇 가지 진실들이 있다. 생각해보자. 클라이브 데이비스가 그의 오랜 독재체제 하에서 발견해 낸 반짝이는 재능이 휘트니 한 명만은 아니었다는 점은 너무도 당연하다. 하지만 그 누구도 휴스턴이 들려준 똑같은 마법을 재생해내지 못했다. 휘트니의 목소리를 듣고 자란 그 어떤 디바도, 마이클 매서나 마이클 월든의 그 어떤 아름다운 멜로디도, 데이빗 포스터나 베이비페이스의 그 어떤 천재적인 프로듀싱과 음악적 꼼수도 휘트니의 독보적 위상에 어렵사리 비교될 한 순간 정도를 겨우 허락받았을 뿐이다. 그것이 바로 보컬리스트의 미학적 정수고 존재 이유가 아닐까. 지독한 프로페셔널리즘, 자로 잰 듯 한 영민한 기획력, 실험적이고 난해한 그 어떤 새로운 음악적 발명과 발견들도 쉽게 복제해내거나 범접하지 못하는 그 목소리와 그 울림 그 자체. 이제 더 이상의 구차한 찬사는 무의미하다.

 

또 한 번의 기적은 일어나지 않았다. 또 한 개의 그래미 트로피도, 또 한 장의 플래티넘 레코드도, 팝 디바의 위대한 전설도 이제는 거짓말 같이 시간에 가려지고 말았다. 하지만 팝 역사상 가장 강렬하고도 보편적인 매력을 선사했던 한 명의 가수가 남긴 울림은 그 진폭을 더해 아직도 이어지고 있다고 믿고 싶다. 그녀의 음악을 기억하는 사람들, 감동적인 그 한 순간을 추억하는 사람들, 그리고 그녀를 따라 새로운 팝 디바의 전설을 꿈꾸며 목소리를 담금질 하는 모든 이들에 의해서 말이다. 그렇게 이야기는 또 계속되어야만 한다.

 

오늘의 음반을 리뷰한 '투째지'님은?
웹진 음악취향 Y(cafe.naver.com/musicy) 를 아지트 삼아 넷상에서는 투째지(toojazzy)라는 필명이 김영대라는 본명보다도 익숙해진지 13년째. 『90년대를 빛낸 명반 50』, 『한국힙합, 열정의 발자취』, 『힙합, 우리 시대의 클래식』 등 몇권의 책도 썼지만 인세나 원고료를 통한 밥벌이는 꿈도 못꾸도 있는 세미프로 음악 평론가.  음악이 세상을 구원해 줄 날을 고대하며 현재는 미국 시애틀에 머물며 워싱턴대에서 음악 인류학(ethnomusicology) 박사과정을 밟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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