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정선: 화해] - 수정선! 슬픈 울림을 간직한 서정적인 음악으로 항해를 시작하다

 

수정선 | [수정선: 화해] | Sony Music | 2012

 

음반 표지에서 이채연이 곤하게 잠들어 있는 두 마리 아기 곰과 수정선이라는 이름을 처음 접했다. ‘수정선’이라는 이름을 보며 언뜻 떠오른 것은 화가들이 그림을 수정한 후 그림에 남아 있는 “수정선”이었다. 하지만 정작 가수를 소개하는 글에는 이와는 전혀 상관없는, 아니 어쩌면 너무도 당연한 것일 수도 있는 수정선의 의미, 즉 ‘수정으로 만들어진 배’라는 뜻이 적혀 있었다.

 

수정으로 만든 배! 분명 물 위에 뜰 수는 없을 것이다. 너무도 비현실적이지만 그래서 더 아름다운 이름이다. 수정선을 자신의 예명으로 사용하고 있는 가수 신재진은 2004년에 서정적인 사운드를 들려주며 데뷔한 인디 록 밴드 ‘잔향’의 일원이었으며, 2005년부터는 솔로로 전향해 수많은 공연활동을 통해 음악 팬들과 만나왔다. 그리고 2008년에는 네오 포크 지향의 미니 음반(EP) 『Deluxe Girl』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후 수정선은 여러 음악인들과 교류하며 연주활동을 이어갔는데, 여기에는 그가 평소 음악적 호감을 가지고 있었던 이장혁도 포함된다. 두 사람의 음악적 교류는 수정선이 그에게 자신의 EP를 건네면서부터 시작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둘 사이에는 정규 음반에 대한 이야기도 자연스럽게 오고 가게 되었고, 결국 이장혁과 유재인- 밴드 게이트 플라워즈의 베이스 주자-이 공동으로 운영하는 레이블인 ‘앨리스(Alice)’를 통해 2012년 1월 17일 수정선의 정규 데뷔 음반 『화해』를 발표하게 된 것이다.

 

신재진이 수정선이라는 이름으로 발표한 데뷔 음반에는 모던 록 성향의 서정적인 곡들이 수록되어 있다. 드럼 프로그래밍이 신재진의 기타와 만나면서 시작되는 첫 번째 트랙 「거짓말」은 어디선가 한번쯤은 들어봤음직 한 멜로디를 가진 곡으로, 배경에 흐르는 신재진의 해먼드 오르간 소리가 정겹게 다가온다. 신재진의 기타가 전면에 부각되어 다소 가려진 듯 하지만 오히려 보일 듯 말 듯한 수줍음을 간직한 해먼드 오르간 소리가 가사와 묘한 조화를 이루며 지난 날의 추억을 떠올리게 한다.

 

송현지의 피아노 연주로 시작하는 두 번째 곡 「Butterfly」는 우선적으로 검정치마의 조휴일이 추천 글에서 했던 말(”슬플 땐 슬픈 노래를 들어야 빨리 치유된다고 한다”)을 떠올리게 한다. 신재진의 목소리에서 강한 울림이 전달되는 곡이다. 곡을 지탱하는, 아름답지만 슬픈 서정성이 「Butterfly」의 매력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어지는 세 번째 트랙 「Imagine Love」는 2008년 발표했던 「Deluxe Girl」의 새로운 버전으로, 가수 겸 작곡가 해오의 아름다운 현악기 편곡이 마치 멜로트론 음향을 듣는 것 같은 효과를 내는 곡이다. 이 곡은 아름다운 사랑을 하고 있거나 아름다운 사랑을 경험했던 이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곡인 동시에 개인적으로 음반에서 가장 마음에 들었던 곡이기도 하다.

 

송현지가 피아노와 함께 펜더로즈(Fender Rohdes) 키보드로 따뜻한 소리를 만들어내고 있는 「부탁」의 가사는 이 음반에서는 유일하게 신재진이 아닌 다른 이, 브라질 음악 가수 소히가 쓴 것이다. 여성 특유의 감수성이 지배하는 가사가 신재진의 곡과 만나 경쾌한 흐름을 이루고 있는 곡이다. 앞의 곡에서 피아노와 펜더로즈를 연주했던 송현지가 피아노와 해먼드 오르간 연주를 들려주는 「내가 바라는 내 모습」은 내 자신의 존재 이유를 돌아보게 만드는 곡으로 곡 후반에 등장하는 스캣이 대단히 인상적이다.

 

이장혁의 하모니카 연주로 시작하는 「Far Away」는 송현지의 피아노와 신재진의 해먼드 오르간 연주로 이루어져 있다. 이 곡은 어리석음이 없이 지혜로움만이 가득한, 내 안에 없는 먼 나라를 그리워하는 칩거한 이의 외로움을 노래하는데, 두 대의 건반만으로 이토록 황량한 쓸쓸함이 그려지고 있다는 게 신기할 따름이다. 일곱 번째 곡 「엄마야 누나야」는 신재진의 목소리와 기타만으로 구성되었다. 노래 가사는 김소월의 시에 멜로디가 더해진 동요 ‘엄마야 누나야’를 살짝 비틀어 차용하고 있는데, 이 곡을 듣다 보면 왠지 모르게 개발되기 전의 강남 모습이 문득 궁금해지기도 한다.

 

이어서 신재진의 1분 30초짜리 짧은 기타 연주곡, 「지어낸 슬픔」이 아련한 슬픔을 흩뿌리며 지나간다. 그리고 나면, 송현지의 피아노와 신재진의 목소리만으로 이루어진 「작은 전쟁」이 등장한다. 마음 속 아픈 상처의 기억을 어루만지듯 흐르는 피아노와 상처를 헤집는 듯한 신재진의 목소리가 긴 여운을 남기는 곡이다. 신재진의 어쿠스틱 기타와 목소리로 시작하는 이 음반의 타이틀 곡, 「화해」는 브라스 스카 밴드 킹스턴 루디스카의 리더인 최철욱이 참여해 곡의 중반부에 트럼본을 들려주는, 모던팝적인 분위기가 특징인 곡이다.

 

수정선은 이제 막 항해를 시작했다. 앞으로 도착하게 될 미지의 항구에서 수정선이 무엇을 만나고 무엇을 얻게 될지, 그 누구도 알 수 없다. 단 하나 우리가 미리 알 수 있는 것은 수정선에서 내려질 음악들이 슬픈 울림을 간직한 서정적인 음악들이라는 것뿐이다. 수정선이 개척해 나갈 항로를 지켜보기로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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