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은 상처를 치유해야할 때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김준기,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 시그마북스, 2009

요즘 TV 뉴스를 보면 마음이 아픕니다. 파행을 겪는 국회 때문은 아닙니다. 온갖 해프닝을 벌이고 있는 국회 모습은 ‘답답하다’는 말이 더 어울립니다. 마음 아픈 건 비정규직 노동자와 점거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 때문입니다. 멀쩡히 일하다가 하루 아침에 생계 수단을 잃은 노동자들, 복직을 위해 힘겨운 싸움을 벌이고 있는 노동자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자신의 잘못이 아닌데도 가족들 앞에서 고개를 숙일 수밖에 없는 슬픈 현실. 특히 궂은 날씨에 50일 넘게 공장 굴뚝에 올라가 고공농성을 벌이고 있는 쌍용자동차 노동자들을 보면, 절망스런 마음에 뛰어내리지는 않을까 걱정이 앞섭니다.

불안정한 고용 상태는 노동자들에게 큰 불안입니다. 또 언제 어떤 형태로 찾아올지 모르는 해고 통보는 그야말로 충격입니다. 이는 노동자, 그의 가족, 나아가 사회 구성원들에게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줄 수 있습니다. 이 가운데 만난 책이 정신과 전문의 김준기 교수가 쓴 <영화로 만나는 치유의 심리학>입니다. ‘한국 사회의 상처를 어떻게 치유할 수 있을까’란 거창한 생각으로 책을 편 건 아닙니다. 이번 북테스터를 진행하기 위해 본 책이지요. 하지만 책을 다 읽고 나서는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책’이란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 책은 ‘‘외상 후 스트레스장애’(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 PTSD)에 대해 이야기합니다. PTSD는 ‘일반적인 인간 경험의 범주를 넘어서는’, 혹은 ‘일반적인 적응 능력을 압도하는 특별한 사건’을 경험한 후에 후유증으로 발생하는 장애를 말합니다. 전쟁, 재난은 물론 강간, 중요한 사람의 죽음, 심한 좌절의 경험 등을 체험한 사람들이 겪을 수 있지요. 저자는 “급격한 변화가 많아진 만큼 우리의 삶에서 사건, 사고도 수시로 일어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고 말합니다. 그만큼 우리는 PTSD에 노출돼 있습니다. 이는 9시 뉴스만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위태로운 삶 속의 위로함

PTSD 등 전문용어가 나온다고 해서 책이 어렵지는 않습니다. 김준기 교수는 가장 대중적인 예술 장르인 영화를 통해 PTSD에 대해 쉽게 접근합니다. 책에는 <밀양> <레인 오버 미> <여자, 정혜> <가을로> <포레스트 검프> 등 총 24편의 영화 이야기가 등장합니다. 물론 이들 영화 주인공들 모두 PTSD를 겪고 있지요. 저자는 영화와 상처 치유 사례, 그리고 정신분석학적 전문지식을 통해 PTSD의 정의, 원인, 양상, 그리고 해결책을 말합니다.

상처를 받는 원인은 다양합니다. <밀양>의 신애(전도연)은 아이가 유괴, 살해당해 상처를 받았고, <레인 오버 미>의 찰리 파인맨(애덤 샌들러)는 9.11 테러로 가족을 잃고 삶의 의미를 상실합니다. 이밖에도 성폭행(<우리들의 행복한 시간>), ‘왕따’ 경험(<인형의 집으로 오세요>) 등 개인적인 이유에서부터 전쟁 후유증(<람보>), 대참사(<가을로>), 군대 문화(<용서받지 못한 자>) 등 구조적인 문제로 인해 고통 받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아픈 기억에 고통스러워하고, 사회와 단절된 채 살아가며, 극단적인 경우에는 세상에 대한 분노를 표출하거나 죽음을 선택하기도 합니다.

어떻게 상처를 치유할 수 있을까요. 먼저 필요한 것은 ‘안정’입니다. 아픔의 원인이 없어졌음을 확인시켜줘야만 치유의 단계로 들어갈 수 있습니다. 당사자는 불안한데 ‘괜찮다, 말해봐라’라고 하는 건 찢긴 상처에 물을 붓는 격입니다. 다음 단계는 트라우마의 기억을 떠올리고 이야기해나가는 작업입니다. 힘든 일이지만 이 과정을 거쳐야 상처의 강렬함과 특별함은 서서히 사라집니다. 마지막 단계는 고립감에서 벗어나 사회적 연결 고리를 찾는 일입니다. 사람, 사회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 관계를 형성했을 때 비로써 삶의 의지를 되찾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이게 끝은 아닙니다. 다른 세상으로 나아가기 위한 출발선이지요.

이 과정에서 절대적으로 필요한 것은 사람입니다. 압도적인 상황으로 인해 상처받은 이들이 홀로 세상과 마주하기는 힘듭니다. 그들을 따뜻하게 감싸 안아줄 사람이 필요합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주변 사람이 오히려 상처를 더욱 크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우리들의 행복한 시간>의 문유정(이나영)은 성폭행 이후, 분노를 억누르라는 어머니의 말로 인해 더 큰 상처를 받습니다. 또 상처받은 사람에게 ‘그만 했으면 됐다’, ‘어쩔 수 없지 않냐’고 하는 건 고통을 더욱 키우는 일입니다.

PTSD를 겪는 사람들은 잘못이 자신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아들의 방>의 조반니(난니 모레티)는 자신이 아들과 달리기를 하지 않아 아들이 죽었다고 생각하고, <가을로>의 현우(유지태)는 민주(김지수)를 혼자 백화점에 보내 그런 사고를 당했다고 자책합니다. 이런 이들에게는 마음의 짐을 벗게 하는 과정이 필요합니다. <굿 윌 헌팅>의 숀 교수(로빈 윌리암스)는 윌 헌팅(맷 데이먼)의 과거 상체에 대해 “그건 네 잘못이 아냐”(It's not your fault)라고 말합니다. 처음에 윌 헌팅은 거부반응을 보이지만 결국 마음의 벽을 조금씩 허물기 시작합니다.
 


쓰레기통 혹은 초콜릿 상자

‘과연 치유가 가능한 세상인가’하는 의문도 듭니다. 이때 저자는 말합니다. “사실 세상이 비참한 쓰레기통인지, 아니면 달콤한 초콜릿 상자인지 어느 누가 알겠습니까? (…) 처음에는 이런 긍정적인 것들이 쉽게 안 떠오를 수도 있습니다. 특히 어린 시절 반복적으로 트라우마를 경험한 사람의 경우는 자신의 삶에는 전혀 긍정적인 경험이 없었다고 믿게 되는 경향이 있죠. 만약 당신이 그런 생각에 빠져 있다면 정말 그럴 수 있을까 의구심부터라도 한번 가져보시기 바랍니다. 유독 당신 인생만 늘 쓰레기 상자 같을 수만도 없지 않습니까?” (p 245~246) 중요한 것은 치유하고자하는 의지와 그 구체적인 노력이 아닐까요?

<미스 리틀 선샤인>에 대한 저자의 말로 마무리 하겠습니다. 개인적으로 가장 많은 위안을 받은 부분입니다.

“이 영화는 우리에게 “어차피 인생은 빌어먹을 미인 대회의 연속, 그렇다고 그 누구도 피할 수는 없잖아! 평범하면 평범한 대로, 모자라면 모자란 대로 최선을 다해 사는 것이 작은 승리small victory가 될 수 있어”라고 말해주는 것 같습니다. 다른 사람이 어떻게 생각하든 상관없이, 당신만의 작은 승리는 무엇입니까?”(p 295)

반디(ak20@bandinlunis.com

Trackback 1 Comment 2
  1. ★바바라 2009.07.21 15:42 신고 address edit & del reply

    와~ 반디님의 꼼꼼한 서평을 읽으면서
    많은 생각을 하게 되네요.
    정말 좋은 서평 잘 읽었습니다. ^^

    • 반디앤루니스 2009.07.21 17:37 신고 address edit & del

      덜렁대장 반디에게 이런 극찬을.. ㅋ
      감사합니다~
      상처와 치유에 대해 많이 생각하게 만드는 책입니다.
      결국 사람이 사람을 보듬을 수 있는..
      그런 세상이 왔으면 좋겠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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