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랑의 미래> - 사랑의 시를 풀어내다.

 

 

이광호 | <사랑의 미래> | 문학과지성사 | 2011

 

 

뭐 이리 사랑의 목마름과 쓰라린 감정을 잘 풀어내는 사람이 있나. 한마디로 놀랍다. 이광호의 <사랑의 미래>는 참 독특한 책이다. 간단한 감성적 시 한 구절에서 저자의 감성으로 뽑아내 펼쳐 보여주는 이미지가 사랑의 다양한 스펙트럼을 확인하게 한다. 이런 류의 책을 손에 잡은 지 상당히 오래된 듯 하다. 저자의 말대로 이를 '허구적인 에세이'라 해야 되나, 아니면 '픽션 에세이'라고 해야 되나. 아니다. 이런 작위적인 명칭보다, 그냥 '감성적 사랑 시 풀어쓰기'라고 하는 게 직설적이겠다. 시인이 이미지를 압축하여 표현하는 능력을 부여 받았다면, 저자는 시인의 언어를 해체해 블루 빛깔의 다이아몬드처럼 사랑을 신비롭고 풍부하게 그려내는 능력을 타고났나 보다. 시도 아니면서 마치 시처럼 사랑의 편린을 이렇게 어루만질 줄 아는 이가 있다니... 감탄. 

 

책을 펼치자 프롤로그에 기형도의 시 “한때 새들을 날려 보냈던 기억의 가지들을 위하여 어느 계절까지 힘겹게 손을 들고 있는가. (조치원)” 한 구절이 소개되고, "계절이란 기억과 시간에 대한 단념의 이름이다"란 문구를 보는 순간 이 책에 빠져들 것 같다는 예감이 스치운다. (저자는 단념이란 말을 많이 쓰고 있다는 걸 알고 있을까?). 이어 “너무 어리거나 너무 늙은 사랑이, 그렇게 지나갔다. 서로 엇갈리는 긴 시간보다 분명한 것은 그 기억조차 흐려지는 날이 온다는 것. 언어만이 그 계절들을 봉인한다.” 는 글 속에서 예사롭지 않을 상흔에 마음이 열린다. 프롤로그의 제목은 ‘한때 새들을 날려 보냈던 계절들’이고, 에필로그는 ‘이제는 그대 흔적을 찾지 않고’이다. 그 사이에 '그의 시간 속에서(1부)''그녀의 시간 속에서(2부)'가 놓여, 때로는 은밀하게 때로는 황망하게 사랑의 언어를 풀어낸다.

 

“손을 잡고 건널목을 건너갈 때의, 그들이 처음 함께 맞춘 걸음의 속도. 그러나 그들은 같은 보폭으로 계속 걸어가지 않았다. 어느 순간, 그는 앞서 걸어갔고, 그 속도에 익숙해질 무렵, 그녀는 그가 이제 더 이상 빨리 걷지 않는다는 것을 알았다. 그가 자신의 사랑을 무모하게 믿고자 할 때, 그녀는 그 의미를 몰랐고, 시간이 흐른 뒤, 그녀가 사랑의 미래를 보았다고 생각 했을 때, 그는 헛된 자신감을 잃었다. 그런 엇갈린 주기들이 반복되었다. 그들에게 서로는 언제나 너무 빠르거나, 느렸다.... 그들은 동시에 사랑하지 않았다.” (22쪽) 사랑의 매력은 혹시 엇박자에 있는 게 아닐까. 그리움에 고민하고 애타는 마음에 흘리는 눈물 또한 서로 다른 보폭을 수용 못한 본연의 미완성일지니, 그래서 사랑에 대한 사유는 언제나 희미한 자기혐오와 함께 시작되는 것이 아닐까.  

 

'꿈에도 깃들지 않는 첫사랑'은 왠지 공명되는 바가 있다. 첫 사랑 없는 사람 어이 있으랴. “그의 첫사랑은 그녀와의 관계에 재배치된 어떤 새로운 서사이다. 그에게 단 하나의 유일한 첫사랑은 처음부터 없었다. 첫사랑에 관한 유일한 진실은 그것의 원본이 실재했다는 것이 아니라, 그 이야기가 다시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첫사랑의 '시뮬라크르'. 과거의 사랑이 현재의 사랑을 만드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사랑이 과거의 사랑을 만들어낸다. 모든 사랑의 이야기는 ‘현재-미래’의 사랑에 의해 끊임없이 다시 쓰인다.” (62쪽)

 

인터넷이 없던 시절, 우리에겐 편지란 소통의 도구가 있었다. 앳된 사랑을 담은 편지는 언제나 설렘이다. “하지만, 부치지 못한 편지만큼 완벽하게 순수한 고백은 없다. 차마 발설하지 않은 미지의 언어만이 사랑을 완전하게 표현할 수 있다.” (116쪽) 그땐 그랬다. 편지 속의 그녀는 지금쯤 무얼하고 있을 지 모르나 마음 속으로 붙인 편지는 아직도 순수영혼 속을 날아가고 있다.

 

연인의 몸을 스치는 손가락의 움직임은 어떤 불가능한 기다림의 메타포이다. 손가락은 한없이 연인의 몸을 어루만지지만, 영원히 그 몸으로부터 미끄러진다. 유리에 스며들 수 없는  물방울의 사소한 절망처럼. “누군가의 몸을 만진다는 행위의 지극함은, 그 사람이 결국 떠날 수밖에 없다는 것, 그 사람의 부재에 대한 예감에서 비롯된다. 그러니까 '나'는 '떠나려는 몸'을 만진다. 떠나려는 몸은 하나의 벼랑이다. '나'는 '당신'의 벼랑을 만진다. 만진다는 행위는 울음이 된다. 그 울음이 떠남을 멈추게 할 수는 없지만, 그래도 어떻게 만지는 것을 멈출 수 있을까?” (140쪽) 묘한 옛추억에 잠기게 한다. 그 참...

 

‘그대가 나였던가, 바닷가에서는...’ 갯가에서 자란 나의 사랑은 오롯이 시퍼런 바닷빛이다. “가장 아름다운 장면은 언제나 조금 늦게, 느닷없이 온다. '당신'과 그 장면을 함께하는 행운은 쉽게 찾아오지 않는다. 생애 최고의 불꽃은 그 사람의 부재 사이로 솟아올랐다가 명멸한다. '내 사랑'은 그 절정의 차례를 기다리지 못한다.” (160쪽) 그랬다. 내 사랑은 나의 시간에 맞추어지지 않고 그렇게 떠나갔다. 방파제에 서서 남해의 바다를 바라보던 그 시절의 연가(戀歌)는 그렇게 어긋난 운명이었음을...

 

그래서인가? 사랑은 맺음보다 이별이 더 감성적이다. “그들 사랑의 역사에서 수없이 사소한 이별들이 반복되었다. 그 이별의 순간들마다 돌이킬 수 없을 것 같은 시간들이 검은 구멍처럼 그들을 집어 삼켰으나, 실낱 같은 재회의 예감은 언제나 그들에게 붙어 다녔고, 그 뿌리칠 수 없는 예감이 그들을 오히려 힘들게 만들었다. 다시는 볼 수 없을 거라는 절망감보다는, 이 사랑 때문에 조금 더 많은 괴로움이 남아 있을 거라는 어두운 예감이 더욱 무거웠다. 이별은 단 한 번의 칼끝으로 우리의 숨을 거두어가지 않기 때문에 잔인하다. 그들의 하루하루는 이별의 흉내였으며, 최종적인 이별에 대한 기다림 같은 것이었다. 그들은 가장 눈부신 날에도 작은 이별을 연습했고, 아득한 황사처럼 숨 막히는 날도 미래의 이별을 다시 기다렸다.” (229쪽)

 

저자에게 있어 사랑은 결국 무엇일까? 위에서 보면 서로 교차된 듯 보이나 옆에서 보면 서로 다른 길을 아래 위로 가고 있을 뿐인 우연과 착각의 산물로 보는 것은 아닐까. 그가 더듬는 사랑의 실체는 아마도 이런 게 아닐까? “사랑은 단번에 죽음을 맞이하지 않을 것이다. 이별이 단 하나의 선명한 얼굴을 가졌다면, 사랑도 이렇게 남루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이별은 언제나 허술하고 보잘것없었으며, 사랑이 그러하듯이 영원하지도 않았다.” (232쪽)

 

불안한 미완성의 갈망을 노래하듯 그의 사랑은 결별의 흔적을 더듬는다. “사랑의 미래가 없다고 생각하는 순간, '우리'는 사랑의 미래를 향해 떠날 수 있다. 어떤 희망도, 어떤 목적도, 어떤 대가도, 어떤 이름도 없이. '내'가 살아가야 할 세계가 어딘가에 남아 있고, 그 하늘의 늙은 그림자 아래서 '당신'이 늦은 아침밥을 먹고 있다면, '나'도 한 숟가락의 밥을 뜨고 다시 길을 나설 수 있다.”는 끝맺음의 의미는 무얼까? 절망은 새로움의 시작임을 말하는 것이려니 생각을 해본다. 사랑은 외면한다 하여 버릴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깊은 가을, 꽤 색다른 사랑타령에 마음 흔들려본 책 읽기였다.

 

오늘의 책을 리뷰한 'eunbi'님은?
남도 바닷가에서 태어나 동백꽃 동박새를 유달리 좋아하고, 말러 음악과 함께 광안리 백사장을 거니는 책쟁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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