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걷기예찬> - 나는 계속 걷고 싶다

 

 

디비드 르 브르통 | <걷기예찬> | 현대문학 | 2002

 

 

자동차, 버스, 배, 비행기, 기차, 전철에서부터 마차, 인력거, 자전거 등 인류가 만들어낸 '이동 수단'의 종류는 많다. 마차나 인력거처럼 이제는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진 이동수단도 있고 고속철도와 같이 도입된 지 얼마 되지 않는 것들도 존재한다. 하지만 인간은 수억 년 전부터 다른 동물과 같이 자신의 몸을 이용해 이동해왔고, 지금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다. 

 

내가 주차장에 자동차를 버려두고 일상생활에서 '걷기' 시작한 지 이제 1년이 다 되어 간다. 돌이켜보면 자동차를 이용한 지난 10년 간 일상생활과 업무진행에 있어 장점보다 단점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기름값, 자동차세, 보험료, 주차료, 과태료 등 경제적인 부담은 '걷기' 및 대중교통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였고, 출퇴근 시간에는 교통체증 때문에 이동속도 또한 빠르지 않았으며 사고의 위험성에 늘 긴장해야 했고, 운동부족과 스스로의 나태함이 늘어간다는 문제도 있었다. 그나마 2000년에 태어난 아이를 데리고 이동할 때 조금 '편했던 것'과 1년에 몇 차례 긴급하게 이동하거나 무거운 짐을 나를 때에는 도움을 받았다.

 

자동차는 내가 어떤 태도와 의지를 가지고 있느냐에 따라 나를 변화시키기도 한다. 한때 사업을 하면서 자동차의 '배기량'에 따라 회사 이미지를 걱정하는 주변 사람들의 의견을 아무 생각 없이 따라가기도 했고 심지어 몇 개월간 기사를 두기도 했었다. 미팅을 하거나 식사약속을 할 때는 주차가 가능하거나 발레파킹이 되는 곳을 찾게 되면서 그 대가로 비싼 음식점과 호텔 커피숍에서 돈을 낭비하기도 했다. 어떤 때는 야근으로 피곤한 상태에서 막히는 도로가 싫어 일부러 자정을 넘겨 퇴근하며 스스로 교통사고의 위험을 감수하기도 했다.

 

작년부터 '걷기'를 이동의 주요 수단으로 결심하면서 나 자신에 대해서, 이 사회에 대해서 많은 것을 느끼게 됐다. 우선, 생각보다 걸어 다니는 것이 그렇게 불편하지 않았다. 서울시의 대중교통은 늦은 밤 시간까지 운영되며 여름엔 냉방, 겨울에는 난방이 잘 되어 있고 환승시스템도 좋아 무척 편리했다. 걷게 되면서부터 기초적인 운동량도 늘었다. 평일 하루에 짧게는 30분, 길게는 1시간이 넘게 걷게 되었고 주말에는 2~3시간씩 걷기도 했다. 걸어 다니니까 좋은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닌 것이다.

 

이 책은 제목 그대로 '걷기'를 찬양하기 위해 쓰였다. 인간이 불행해진 것은 속도전의 광풍에 휘말려 이 '걷기의 즐거움'을 잃어버렸기 때문이라고 말하며, 몸을 이용한 운동 중에서 가장 기본이 되는 '걷기'를 다각도에서 예찬한 산문집이다. 게다가 저자는 여행서, 인문서, 소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걷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한 책에 대해서도 예시를 들고 있어, '걷기'를 통해 본 독서 에세이라고도 할 수 있다.

 

첫 걸음, 시간의 왕국, 몸, 짐, 혼자서 아니면 여럿이?, 상처, 잠, 침묵, 노래부르기. 이런 소제목만 보아도 걷는 즐거움이 얼마나 다양한지 알 수 있다. 저자는 혼자서 걷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이야기한다. 노래를 부르거나, 가만히 서서 쇼윈도를 바라보아도 '왜?'라고 묻는 사람이 없고, 사색에 빠지기에도 너무 좋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는 사람이 아무도 없는 깊은 산 속과 숲 속에서 걷는 것 뿐 아니라 '도시에서 걷기'에 대한 즐거움과 의미에 대해서도 이야기한다.

 

저자는 자기처럼 걷기를 즐긴 사람들을 소개한다. 그 중에는 헨리 데이빗 소로, 키에르 케고르, 장 자크 루소, 빅토르 세갈렌, 피에르 쌍소, 랭보, 니체, 스티븐슨, 그리고 일본 하이쿠 시인 바쇼 등이 있다. 이들은 여행을 즐겼으며, 걷는 동안 일어나는 모든 일들을 사랑했다. 키에르 케고르는 "나는 걸으면서 내 가장 풍요로운 생각들을 얻게 되었다. 걸으면서 좆아 버릴 수 없을 만큼 무거운 생각이란 하나도 없다."라고 어느 편지에서 썼다. 니체는 "나는 손만 가지고 쓰는 것이 아니다. 내 발도 항상 한 몫을 하고 싶어 한다."라고 말했다. 루소에게 있어 걷기는 고독한 것이며, 자유의 경험, 관찰과 몽상의 무한한 원천, 뜻하지 않는 만남과 예기치 않은 놀라움이 가득 찬 길을 행복하게 즐기는 행위였다.

 

그들은 모두 운동 차원에서의 '걷기'를 말한 게 아니다. 이들에게 '걷기'란, 자기 자신에게 충실할 수 있는 방편으로서의 걷기, 현대의 속도로부터 벗어나기 위한 걷기, 몸이 베푸는 혜택으로서의 걷기를 의미한다. 그래서 '걷기 예찬'은 삶의 예찬이고 생명의 예찬이며 동시에 인식의 예찬이라 할 수 있다.

 

사실 나는 걷기를 시작하면서도 나의 '걷기'에 대해 아무런 의미를 부여할 의사도 능력도 없었다. 이 책을 다 읽고 나서도 마찬가지이다. 다만, 저자가 '걷기'라는 수단을 통해 현대사회에서 우리가 잃어가고 있는 것, 가져야 하는 것들을 설득력 있게 들려주는 바를 사람들에게 전해주고 싶은 마음이다.

 

몇 달 전에는 모처럼 친구와 함께 15km 이상을 걸었다. 추석 연휴 내내 '이유 없이 구속되어 보이지 않던 보름달'이 어제 밤에는 구름 사이로 석방되어 나왔다. 안양천 뚝방길을 걸으니 강아지풀과 코스모스가 한창이었고 은은하게 달빛의 세례를 받은 듯한 풀과 꽃, 작은 길이 가을 정취를 느끼게 해주었다. 그리고 달 빛 속에 친구와 나란히 걸으면서 오순도순 이야기를 나누니 그 사이가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다. 이런 게 바로 '걷기'의 즐거움이 아닐까 싶다.

 

나는 앞으로도 계속 걷고 싶다.

 

"요즘에 와서 사람들은 자동차에 너무 의존하면서 직립보행 기능을 잃어 가고 있다. (…) 자동차로 인해 행동반경은 넓어졌지만 내 다리로 땅을 딛고 걸을 때의 그 든든함과 중심 집합이 소멸되어 가는 듯 싶다. (…) 걷는다는 것은 침묵을 횡단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시끄러운 소리에서 벗어나기 위해 세상 밖으로 외출하는 것이다. 걷는 사람은 끊임없이 근원적인 물음에 직면한다. '나는 어디서 왔는가? 나는 어디로 가는가? 나는 누구인가?' (…) 자연 속에는 미묘한 자력이 있어 우리가 무심히 거기에 몸을 맡기면 그 자력이 올바른 길을 인도해 준다고 옛 수행자들은 믿었다. 자동차에 의존하지 않고 두 발로 뚜벅뚜벅 걷는 사람만이 그 오묘한 자연의 정기를 받을 수 있다."

 

-법정스님, <홀로 사는 즐거움>

 

오늘의 책을 리뷰한 '빨간윗도리'님은?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읽고 쓰는 사람입니다.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421 422 423 424 425 426 427 428 429 ··· 752 nex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