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김훈,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 생각의 나무, 2007


뱉을 수 있다고 다 말이 되진 않는다고, ‘나는’ 믿는다. 예는 많다. 이를테면 ‘기쁘고 두렵다‘라는 표현은 틀린 말이다. 기쁨과 두려움은 거의 정반대의 감정이다. 상극의 감정을 동시에 품는 일이 어떻게 가능할까. 기쁨 옆에 두려움을 붙이는 표현, 지나친 기쁨이나 두려움을 감추기 위한 위장은 아닐까.
 
위의 말들, 다시 강조하지만 내 생각이다. 내 믿음이다. 돌려 말하면 신념이다. 신념의 사전적 정의는 굳게 믿는 마음이다. 굳게 믿기 때문에 신념은 여간해선 흔들리지 않는다. 그 곧은 신념 때문에 죽거나, 오랜 세월 옥에 갇혀야 했던 사람들을 우리는 많이 봐왔다. 그에 비하면 내가 지금 신념이라고 말하는 건 초라하기 짝이 없다. 그래도 신념은 신념이다.
 
신념, 신념, 신념, 이 지루한 동어반복을 마다않은 건 이 책을 이야기하고 싶어서다. 김훈의 산문집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생각의나무. 2007), 내 신념을 여지없이 무너뜨린 책이다.
 
김훈은 한국 문단에서 유별난 존재다. 50줄에 가까운 나이에 문단에 나와 10여년 만에 최고 인기 작가 반열에 올랐다. 대표작 <칼의 노래>를 100만 독자가 읽었고, 2년 전 낸 <남한산성>은 50만부가 넘게 팔렸다. 짧은 기간 상도 많이 탔다. 동인문학상, 이상문학상, 황순원문학상, 대산문학상 등 굵직한 문학상을 휩쓸었다. 깊디깊은 사유를 그만의 문체로 풀어내는 재주는 독보적이다. 혹자는 김훈의 등장을 두고 ‘한국문학의 벼락같은 축복’이라고 치켜세웠다. 과장이 없진 않지만, 무어라 토를 달기도 쉽지 않은 찬사다.
 
이런 작가의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를 읽고, 나는 기쁘고 두려웠다. ‘기쁘고 두려웠다‘라니, 이 무슨 망발인가. 되지 않는 이 말의 근원은 어디인가. 내게 신념은 한낱 죽은 단여였던가.

일단 기뻤던 건 첫째, 촌철살인의 문장의 향연 덕이다. 베고 찌르는 날선 문장과, 숫처녀에 대한 뻔뻔한 환상처럼 아름다운 문장이 이 책엔 다 들어 있다. 시작부터 심상치 않다. 통으로 옮기지 못하는 게 아쉽지만, 일부나마 옮겨본다.

“날아가는 솔개나 헤엄치는 물고기는 늘 나를 주눅 들게 한다. 말하지 않고, 몸으로 솟구치는 저 미물들의 삶은 얼마나 자족한 것인가. 아무래도 말은 몸보다 허술하고 위태로워 보인다. 말은 말을 말이 아니라고 말하면서 끝없이 주절거린다. 나는 그 허술함의 운명을 연민한다.” (책머리에 중)

독자를 잔뜩 주눅 들게 만드는 서문을 떠나면 김훈이 차려놓은 만찬이 펼쳐진다. 그걸 그저 주워 먹기만 해도 포만감을 느낄 수 있다. 이쯤 되면 이를테면 이렇다며, 그 예를 죽 늘어놓는 게 서평의 정석일 터다. 그런데 그게 또 쉽지 않다. 약 300페이지를 알알이 채운 수많은 문장 중 몇 개를 고르는 일이 고역일 정도로 좋은 문장이 이 책엔 많다. 억지로 골라본다.

“길은 저절로 생기지도 않지만 억지로 만들어지지도 않는다. 길은 길이 아닌 곳을 오래오래 다님으로써 길게 이어진다. 길은 인간이 지상에 남긴 자취들 중에서 가장 강인하고 가장 겸손하다.” (길 중)

“돈은 인의예지의 기초다. 물적 토대가 무너지면 그 위에 세워놓은 것들이 대부분 무너진다. 그것은 인간 삶의 적이다. 그런 허망한 아름다움은 인간의 삶을 풍요롭게 할 수 없다. 이것은 유물론이 아니고, 경험칙이다. 이 경험칙은 과거와 미래에 대해서 공히 유효하다. 돈 없이도 혼자서 고상하게 잘난 척하면서 살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말아라. 아마 그럴 수도 있겠지만 그러지 말아라. 추악하고 안쓰럽고 남세스럽다.” (돈과 밥으로 삶은 정당해야 한다 중)

“세상을 편안하게 해주는 것은 진실이 아니라 위선일 때가 많다.” (러브호텔과 러브 중)


두 번째 기쁨은 흘러버린 시간을 무안하게 만드는 보편의 사유에 기인한다.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의 초판은 2002년에 나왔다. 작가가 서문에서 “생계를 도모하기 위하여 여기저기 썼던 토막글”이라고 밝혔듯, 당대의 사회적 이슈를 다룬 글이 많다. 자연히 시의성은 떨어진다. 하지만 읽을 가치는 여전하다. 문장 때문만이 아니다. 각 글에 담은 주장이 아직도 유효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책임질 수 없는 책임’이라는 글이 있다. 15대 대통령선거 즈음 일어난 부정인 세풍, 총풍 사건을 보며 쓴 글이다. 여기서 작가는 “권력을 쥔 자들이 그 권력과 관련돼 저지르는 죄악은 마침내 책임을 질 길이 없고, 그 책임을 물을 방법도 없다”며 “배가 고파서 쩔쩔매는 아이들 앞에서 이 사회는 도대체 누구의 책임인가를 따져봐야 목전의 문제는 해결되지 않는다”고 말한다. 그러면서 “세밑의 거리에서 구세군 자선냄비에 천 원짜리 지폐 한 장을 넣을 수 있는 사람이 많아질 때 우리는 이 문제를 해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책상머리에 앉아 싸우고 생각하지만 말고 움직이라는 이야기다. 현실을 바로 보라는 의미다. 10년 전의 글에서 오늘의 여의도가 겹쳐진다.

이런 보편의 통찰에 수려한 문장을 더한 책이다. 읽는 내내 기쁘지 않을 수 없었다. 역으로 그래서 두려웠다. 이제는 두려움에 대해 말할 차례다. 책을 좋아하는 사람은 대체로 글쓰기도 좋아한다. 당연히 좋은 글을 욕심낸다. 나 역시 그렇다. 나 같은 부류의 애송이들에게 김훈은 거대한 벽이다. ‘나는 어느 세월에...’라는 푸념이 절로 나온다. 시작도 전에 겁을 먹는 꼴이다. 하지만 넘거나 부숴버리기에는 김훈이 쌓은 벽은 ‘말도 안 되게‘ 높고 단단하다. 지나친 자기비하나 우상화가 아니다. 이해가 안 된다면 그의 책을 한 번쯤 정독해보길 권한다.

어그러진 내 신념을 제자리로 돌려놓고 싶다. ‘기쁘고 두렵다’라는 되지 않는 말을 어서 거두고 싶다. 그러려면 먼저 ‘두렵다’라는 단어를 뺄 수 있어야 한다. 그렇게 될 때쯤이면 <너는 어느 쪽이냐고 묻는 말들에 대하여>를, 또 앞으로 나올 김훈의 책을 기꺼이 기쁘게만 읽을 수 있을 것 같다. 왜 이런 넋두리를 끼적이는지, 이 글의 독자가 알아채 주길 희망한다. “가장 곤고한 글을 나는 썼다”고 자책하는 작가의 글을 소문내려는 이유를.

 오늘의 책을 리뷰한 자유기고가 '김대욱'님은?
책 기자 생활을 하며 글을 배웠다. 현재는 완전무결한 문장을 목표로 글공부 중. 매일 무언가를 채우고 버리며 살고 있다. 글공부와 더불어 문학을 노래하는 밴드 ‘북밴’에서 곡을 쓰고 기타를 연주하고 있으며, 무경계문화펄프연구소 ‘추리닝바람‘의 팀원으로도 활동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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