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읽니?] 여행, 혹은 여행처럼




 

정혜윤 | <여행, 혹은 여행처럼> | 난다 | 2011

 

나와 여행과 나의 인생은, 나의 삶은 어떤 관계일까? 나는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생각하고 싶지 않다. 아니,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보는 의견에 반대한다. 그보단 차라리 매 순간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 왜냐하면 나는 여행지에서 기꺼이 할 수 있는 것들을 삶 속에선 실천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이를테면,

 

나는 누군가 나 대신 여행을 하는 것을 상상도 못 한다.

그런데 삶 속에선 누군가 나 대신 뭐라도 해주길 꿈꾼다.

 

(...)

 

여행지에서 나는 목표 따위는 생각하지 않고 더 알고 더 느끼는 데서 단순한 기쁨을 느낀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수많은 것들을 오로지 수단으로 삼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확실한 길만 찾아가지는 않는다. 불확실함이 많은 데 불평하지 않는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확실한 것만 찾는다.

 

여행지에서 나는 외로울 때 해나 달이나 한 점 불빛과도 친구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삶 속에서 나는 외로울까봐 자주 타협을 한다.

 

- Prolugue 왜 인생을 여행이라 하는가

 

여행을 좋아한다. 아니, 좋아하는 것 같다. 이렇게 확신 없는 말투로 이야기하는 까닭은 최근 떠났던 여행들에서 어떠한 위안도 얻지 못했기 때문일 거다. 그래도 여전히 어딘가로 떠날 생각을 하면 가슴이 부푼다. 반복된 매일에서 탈출하여 다른 것들을 보고, 다른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여행이라 생각했다. 그런데 <여행 혹은 여행처럼>의 프롤로그를 읽고 몇 분간 멍해졌다. '여행을 일상의 탈출'로 보지 않는다니. '매 순간 여행자의 태도'로 살고 싶다는 말에는 백프로 동감하지만, 그게 어디 쉬운 일이던가. 기를 쓰고 긍정적인 마음을 가지고 내게 주어진 하루를 여행으로 생각하려 해도, '그렇다면 이 여행은 망한 여행이다'라는 기분밖에 들지 않는 건 내가 지극히 회의주의적인 인간이기 때문일까. 회의주의자의 뿔난 마음이 툭툭 반론을 제기했다. 하지만 이어지는 '여행지에서의 나와 삶 속에서의 나'를 비교 아니 대조한 문장들에 고개를 끄덕이고 말았다.

 

여행지에서의 나는 그토록 무구하고 씩씩한 마음으로, 낯선 것들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불확실한 것들에 더 애정을 두고 작은 것들에 소스라칠 만큼 기쁨을 느끼면서 왜 삶 속에선 그러지 못할까. 그래, 그 답을 모르는 바가 아니다. 너무 지루해서 하품조차 나지 않는 곰팡내 나는 일상이 주는 권태, 사사로운 일에도 불쑥 들고 일어나는 분노, 저질 체력이 안겨주는 자잘한 골병. 이런 것들이 쌓이고 뭉쳐, 힘차게 주물러도 도통 말랑해질 생각을 하질 않는 어깨 근육처럼 몸 안에 굳어져 버린 것이다. 이 딱딱해진 몸과 마음들이 <여행, 혹은 여행처럼> 속 사람들을 만나고 조금은 물러졌다. 나이가 몇이든, 어떤 일을 하든, 그들은 여행같은 삶을, 삶같은 여행을 다니고, 살고 있었다. 결국 모든 게 마음의 문제였다. 마음의 각도 1도를 비트는 일이 결코 쉽지는 않지만, 그 1도 때문에 바뀌는 많은 것들을 생각한다면 그걸 비틀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오늘 저녁, 집으로 돌아가는 길에는 삶에 맞춰져 있는 마음의 바늘을 여행의 방향으로 조금 옮겨봐야겠다.

 

- 컨텐츠팀 에디터 료(fololy@bandinluni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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