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이 없었다 당신: 익숙한 것들로부터의 탈주

 

 

히라노 게이치로, <당신이 없었다 당신>, 문학동네, 2008


책을 읽는다는 것은 누군가와 끊임없이 소통하는 행위다. 그것이 작가가 되었든, 작품 속 인물들이 되었든, 아니면 같은 책을 읽은 사람이든. 그래서 책을 손에 쥐기까지의 과정은 늘 설렌다. 오늘은 또 누구를 만날까. 얼마 전 기억 속에 뚜렷하게 각인된 작가가 한 명 있었다. 일본의 소설가 히라노 게이치로다. 해금연주자 꽃별을 만났을 때 그녀는 히라노 게이치로의 문장에 감탄했으며, 블로그 이웃 태극취호님도 좋아하는 작가로 그를 꼽았다. 우연의 일치일까, 아니면 그를 만나라는 일종의 신호일까. 그렇게 히라노 게이치로의 <당신이, 없었다, 당신>을 만났다.

<당신이, 없었다, 당신>은 작가가 2007년 발표한 단편 소설집이다. 소재, 형식 모두 다른 열한 편의 소설이 기다리고 있었다. 먼저 눈에 들어 온 건 두 번째 단편 ‘페캉에서’를 통해 느낀 주체의 사라짐이다. 이 작품은 오노라는 작가가 프랑스에서 잠시 떠난 여행에서 느낀 감정을 그린 이야기다. 문화교류사업의 일환으로 낯선 땅에 체류하고 있는 소설가 오노는 뜻밖의 휴가를 얻어 세 번째 장편소설 <장의>를 쓰기 위해 5년 전 찾았던 곳 페캉으로 향한다. 당시 그는 그곳에서 문득 다른 소설의 착상을 얻는다.

이 작품에서 흥미로운 것은 등장인물 모두 동일자(同一者)라는 것이다. 메인 플롯은 주인공 오노의 여정이지만, 그가 만나는 이는 타자가 아닌 그가 만들어냈던 소설의 주인공 KH이다. 작가와 작가가 만든 인물(오노), 그 작가가 만든 인물(KH)의 만남, 이 끝없이 미끌어지는 과정에서 오노와 KH, 그리고 히라노 게이치로 자신의 정서는 뚜렷이 구분되지 않는다. 작가는 때로는 오노가 되고, 때로는 KH가 되어 20대 청춘이 겪은 다양한 감정들을 녹아낸다. 주어(주체)는 명시돼 있지만 그것이 누구의 감정인지는 명확하지 않다. 오노가 만든, KH가 등장하는 소설의 제목이 ‘페캉에서’인 건 단순한 우연의 일치만은 아닐 것이다.

오노는 ‘페캉에서’의 KH가 결국 자살을 선택할 것을 명시하고 있는데, 오노는 KH가 죽음을 맞이한 곳으로 향한다. 과연 오노는 어떤 선택을 할 것인가? 초반 느리게 전개되던 소설은 또 다른 ‘나’가 등장하면서 가속도가 붙는다. 여기서 작품에서 등장하는 정서가 구체적으로 누구의 것인지는 그리 중요하지 않다. 작가, 오노, KH와의 정서적 교감만이 남을 뿐이다. ‘모두가 주체가 될 수 있음’은 곧 ‘누구도 주체일 수 없음’의 다른 말이다. 주체는 해체되고 정서만 남는 일련의 과정, 그렇게 ‘당신’은 없어진다.

없어진 ‘당신’의 돌아옴

‘페캉에서’처럼 주체가 사라진 작품이 있는 반면, 형식의 파괴를 통해 정반대에 위치하는 작품들도 있다. ‘여자의 방’과 ‘어머니와 아들’이 그 예다. ‘어머니와 아들’을 처음 보면 이게 뭔가 싶다. 「어머니와 아들 1-1」 「어머니와 아들 2-1」 「어머니와 아들 3-1」로 이어지는 페이지 전개는 우리가 익숙한 소설의 전개방식과는 다르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를 기울이면 이 작품의 룰을 발견할 수 있다. 「어머니와 아들 1-1」은 다음 페이지의 「어머니와 아들 1-2」로 이어지고, 나머지도 마찬가지다. ‘어머니와 아들’은 줄과 줄이 아닌 페이지와 페이지로 이어지는 소설이다.

내용을 보면 궁금증은 더욱 커진다. 형식상 챕터는 다르게 분류돼 있으나 이야기 전개 양상은 거의 유사하다. 어머니와 아들의 이별, 먼 곳으로의 여행을 암시하는 이야기가 반복되는 것이다. 다른 점은 인물들이 처해있는 배경과 설정 정도이다. 하지만 각 챕터의 결말이 비슷한 듯 조금씩 달라지면서 페이지를 앞뒤로 넘기면서 호기심은 증폭된다.

‘여자의 방’도 마찬가지다. 이야기로만 따지자면 아 작품은 2페이지짜리다. 하지만 같은 이야기를 반복하면서도 다양한 위치의 텍스트를 제거함으로써 전혀 새로운 느낌(혹은 이해 불가한 상황)을 연출한다. 이런 형식적 실험은, 아이러니하게도, 작가의 존재를 명확하게 한다. 이야기가 빠르게 전개되는 가운데 작가가 사라지는 것과 반대로 작가는 이야기 전개를 일부러 방해하면서 ‘나 여기 있소’라고 끊임없이 환기시킨다.

이쯤 되면 히라노 게이치로라는 작가가 왜 이런 ‘실험’ 혹은 ‘장난’을 하는지 궁금해진다. 옮긴이 신은주가 작가의 인터뷰에서 발췌한 다음 문장이 그 힌트를 제공할 수 있을 것이다.

“나의 시도에 어떤 새로운 무언가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계와 현대의 인간이 직접 요구하는 새로움이다. 누구나 변화를 실감하고 있는 지금 이 시대에 소설만이 언제까지나 2세기 이전의 스타일로 그것을 좇을 수는 없는 일이다. 그러한 창작상의 변화에 거부반응을 보이는 보수적인 독자와는 아예 깨끗이 ‘작별할’ 생각이다. (p. 324, 『파도』, 2007년 2월호 재인용)

이처럼 작가는 ‘당신’이라고 명명백백하게 일컬을 수 있는 것들(주체, 형식)에 변화를 가하면서 새로운 소설 공간을 꿈꾼다. 물론 작가의 이런 시도가 얼마만큼 공감을 받을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작가가 밝혔듯 받아들이는 것은 온전히 독자의 몫이기 때문이다. 나 또한 사람과 애정의 냄새가 짙게 배어있는 ‘크로니클’이나, 이야기 전개 과정에서 현실에서 환상으로 점프하는 ‘이방인#7-9’, 사회에 대한 작가의 예리한 시선이 돋보이는 ‘자선’ 등이 기억에 먼저 남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당신이, 없었다 당신>은 히라노 게이치의 다음 행보를 기대하게 만드는 작품이다. 재미와 감동은 낯익은 것이 낯설게 비춰지는 순간에 출현하는 것을 작가와 독자 모두 알기 때문이다. 다음 문장은 작가가 ‘낯설게 하기’ 방법을 이미 알고 있음을 확인케 한다.

“교외로 나오자 눈앞의 경치는 푸른 수목들로 뒤덮였고, 창에 비치는 그의 모습도 짙어졌다. 그는 우연히 자신의 눈과 마주쳤다. 그것은 마치, 그가 알아차리기 오래 전부터 그렇게 그를 주시하고 있었던 듯했다.” (p. 60)

우연과 낯설음. 우리에게는 불현 듯 찾아오겠지만, 작가는 오래 전부터 그렇게 우리를 주시하고 있었을지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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