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쿠만: 이토록 뜨거운 상업예술 입문기


 

오바 츠쿠미, 오바타 타케시, <바쿠만>, 대원씨아이, 2009


“만화가로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건 0.1%. 아니, 0.1이면 천 명에 1명이니까 0.001%. 십만 명에 1명꼴이야. 심지어 너랑 내가 손을 잡으면 0.0005%가 되지. 고료가 반으로 쪼개지니까.” (<바쿠만>1권 중 마시로 모리타카의 말)

만화계의 할리우드라고 할 수 있는 일본에서도 평생 만화를 그리며 살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에 불과하다. 인세만으로도 매년 소득순위 상위권에 랭크될 만큼 너르고 너른 시장이지만 그만큼의, 아니 그 이상의 재능과 노력이 필요한 것 또한 당연지사. 폭발의 ‘폭(暴)’, 도박의 ‘박(博)’, 꿈을 먹는 상상의 동물 ‘맥(貘)’을 일본어로 ‘바쿠’라고 읽는 것에서 제목을 착안한 만화 <바쿠만>은 바로 이 달콤하지만은 않은, 오히려 무시무시하다고 해야 옳을 상업예술 세계로의 입문기다. 꿈에 잡아먹히느냐, “밋밋하고 재미없는 회사원”이 되어 사회에 잡아먹히느냐. 이 이지선다형 문제에서 일찌감치 0.0005%의 꿈을 선택한 소년들의 이야기는 소년만화의 가장 커다란 테마인 ‘꿈’을 이번에는 판타지 세계가 아닌 일본만화계라는 실제 현실에서 구현한다.

꿈을 향한 두 콤비의 이야기는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가진 마시로 모리타카가 그저 공부벌레인줄만 알았던 타카기 아키토에게 특별한 제안을 받으면서 시작된다. 이대로 자라 평범한 회사원이 되느니 자신과 함께 정말로 좋아하는 만화를 그려 꿈을 이루자는 것. 그러나 모리타카는 일찍이 만화가였던 삼촌이 성공한 만화가가 되는 것을 ‘도박’이라고 일컬었던 것 때문에 주저한다. 그러던 중 짝사랑하던 아즈키 역시 성우를 지망한다는 사실을 접한 모리타카는 그대로 아즈키에게 만화를 향한 자신의 꿈을 공포하며 프러포즈한다. 이로써 도박과도 같은 모리타카와 아키토의 꿈이 마침내 그 포문을 연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리고 보라

사신의 노트에 이름을 적는 것만으로 사람을 죽일 수 있다는 괴이한 설정을 밀어붙이며 전대미문의 ‘판타지 추리극’ <데스노트>를 일군 오바 츠구미(스토리 담당), 오바타 타케시(작화 담당) 콤비. 이들의 신작 <바쿠만>은 소년만화를 만드는 소년들의 이야기를 온전히 소년만화의 세계에 안착시키는 작품이다. 만화에 있어 블록버스터라고 할 수 있는 소년만화, 그 중심인 주간 <점프> 연재를 위해 의기투합하는 모리타카와 아키토의 이야기는 <점프>라는 실명 그대로의 공간을 무대 삼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본만화의 실제적인 움직임을 묘사하는 데 주력한다.

동시에 강력한 라이벌, 좋아하는 여자아이와의 순애보, 그리고 전투력(<드래곤볼>)이나 영력(<샤먼킹>), 현상금(<원피스>) 등으로 캐릭터의 능력을 수치화하는 소년만화 특유의 장치들 또한 예외 없이 적용된다. <점프> 연재만화라는 원천의 족쇄 때문에 애써 과장된 순애보를 토대에 두는 등 스스로 소년만화지용 만화를 자처할 수밖에 없는 바탕은 아쉽지만, 그럼에도 독자 앙케트 순위에 의해 매주 목숨 줄이 왔다 갔다 하는 이 치열한 세계는 스카우터의 수치화보다도 잔혹하게 다가온다. 그리고 이것이야말로 소년만화를 중심에 둔 소년만화 <바쿠만>의 이중 고리가 현실감을 품는 까닭이다.

물론 만화가의 이야기를 그린 만화는 지금까지도 꾸준히 있어왔다. 쓰디쓴 청춘들의 이야기를 극단까지 묘사하는 하라 히데노리의 색깔이 만화가라는 직업과 합치된 <언제나 꿈을>이나, <코믹마스터 J>나 <호에로 펜>처럼 만화가의 세계를 과장되게 희화화한 작품들도 인기를 얻은 바 있다. 그러나 ‘배틀’을 우선시하는 소년만화의 왕도(王道)와 마이너리티 취향에 부응하려는 ‘사도(邪道)’라는 분명한 구획 사이에서 갈등하는 주인공 모리타카와 아키토의 이야기는 그 어떤 만화보다도 구체적이며 그래서 현실적이다. 또한 만화식 작화에 대해 고민하는 주인공 모리타카의 갈등을 스스로 실현해 보이는 오바타 타케시의 작화 능력 역시 극화체와 만화체 사이의 유려한 줄타기를 증명하며 작품의 격을 한층 드높인다.

크고 작은 시행착오를 거친 후 마침내 두 콤비가 ‘왕도’를 결심하는 2권에 이르기까지, 소년만화 그리는 소년들의 소년만화 <바쿠만>은 충분히 뜨겁다. 물론 이 열기는 분명 소년만화라는 장르의 줄기를 타고 성공이라는 결말로 향할 것이다. 하지만 처음부터 우리가 주목해야 하는 것은 언제고 그 열기뿐이었으니 0.0005%를 향한 소년들의 꿈을 뒤쫓을 이유 역시 충분하다. 소년이여, 야망을 가져라. 그리고 보라, 소년들의 야망을. 

오늘의 책을 리뷰한
‘파란다이스’님은?

영화, 만화, 책, 음악 등 문화예술을 향유하며 글을 쓰는 것만으로도 행복해하다가 어느 순간 글쟁이로 밥 먹고 살고 싶다는 작은 소원마저 이룸. <DVD2.0> <FILM2.0> 기자를 거쳐 iMBC에 이르기까지 오로지 키보드와 함께 전진. 최근 무료하고 거짓된 삶에 염증을 느낀 나머지 과감히 사표를 던진 후 옛 동료들과 의기투합해 새로운 온라인 매체 준비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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