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뭐 읽니?] 이장욱, <고백의 제왕>

 

 

이장욱 | <고백의 제왕> | 창비 | 2010

 

지난주 [時로 물드는 오후]는 이장욱의 ‘세계의 끝’이었는데요. 제가 요즘 읽고 있는 책이 바로 그 이장욱의 <고백의 제왕>이라는 소설집입니다. 시인이면서 소설가이고 또 비평가인 전방위 작가, 이장욱. 그를 두고 일찍이 평론가 신형철은 “뭐랄까, 그는 그냥 ‘문학’이다.”라고 했다죠. 와우~

 

<고백의 제왕>은 총 8편의 단편이 모여 있는데요. ‘동경소년’은 <작가세계> 2006년 여름호, ‘변희봉’은 <문학동네> 2009년 여름호, ‘고백의 제왕’은 <창작과비평> 2008년 여름호, ‘아르마딜로 공간’은 <문학과사회> 2006년 봄호, ‘기차 방귀 카타콤’은 <문학수첩> 2007년 봄호, ‘곡란’은 <한국문학> 2009년 겨울호, ‘밤을 잊은 그대에게’는 <세계의문학> 2006년 가을호 ‘인공위성’이라는 제목으로, ‘안달루씨아의 개’는 <문학사상> 2009년 8월호에 발표된 것입니다. 그 중, 제가 지금까지 읽은 것은 ‘동경소년’과 ‘변희봉’이고요. 이 ‘변희봉’은 ‘2010 작가가 선정한 오늘의 소설’에 선정되고 ‘2010 제1회 젊은작가상’을 수상하기도 했다고 합니다.

 

먼저, ‘동경소년’은 일본의 허름한 여관에 있는 한 남자의 나지막한 중얼거림, “그런데…… 나의 유끼는…… 정말 죽은 걸까요.”로 시작되는데요. 연이어 취직에 실패한 후 공무원 시험만 삼년째 준비 중인 남자는 유끼와 처음 만났을 때부터 지금까지의 이야기를 독백조로 털어놓습니다. 그의 말에 따르면 유끼는 전체적으로 왜소하다는 느낌을 주는 여자로, “텅빈 듯 가득한 여자였고 알 수 있을 듯도 하지만 도무지 알 수 없는 여자이기도 했습니다. 유끼는 오직 유끼이면서도 그 어디에도 유끼라는 여자는 없다는 듯한 표정을 짓고는 했습니다.” 또한 유끼는 ‘흐린 날의 구름’, ‘쇼윈도우에 얼비친 행인의 그림자’, ‘생각 속의 사람’과 같았습니다. “몇초 후에는 그가 존재했다는 것조차 도무지 확신할 수 없는……그런 인간”이었던 거죠.

 

그러니까 유끼는 희미하게 존재하다 점점 사라져버린 유령 같은 여자인데요. 그래서인지 남자의 이야기를 통해서만 전달되는 그 여자의 존재감은 이를 듣고 있는 소설 속 다른 인물들에게 도무지 현실적으로 느껴지지 않습니다. 다시 말해, 소설 속 설정상 추리소설동호회의 회원으로 ‘와따나베 포우’라는 일본 추리소설 작가의 흔적을 찾아 여행을 와 있는 그들(청자)은 마치 현실 속 독자들(우리들)처럼 그 남자의 이야기에 빠져드는 동시에 그 이야기가 지니고 있는 비현실성 혹은 환상의 요소 또한 자각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 소설은 형식적인 측면에서 미스터리를 차용하는 동시에 그에 대한 ‘거리두기’를 통해 장르적 관습을 의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를 통해 유끼라는 유령과 같은 희미한 존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고요. 그러나 사실상 이 유끼라는 여자는 남자 자체가 지니고 있는 자의식을 드러낸 상상의 산물이라고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유끼라는 희미한 존재를 알아봐주고, 그 존재를 붙잡고 싶어 하는 남자의 이야기는 그 스스로를 ‘유끼’라는 인물로 타자화한 후 누군가로부터 인정받고 싶은 자신의 욕망을 풀어내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의 이야기 속에서 유끼라는 여자가 결국 사라져버린 것에서 알 수 있듯이, 그의 자아는 현실에서 그 존재감을 인정받지 못한 채 유령처럼 외롭고 고독하게 떠돌고 있는 듯합니다. 그리고 그 모습이 진짜 현실에 존재하고 있는 고독한 누군가를 떠올리게 하고요.

 

“소설집 <고독의 제왕>에서 울려나오는 근원적인 고백은 ‘검고 깊게 뚫린 동물’에서 새어나온 익명의 중얼거림이며, 실체 없는 비존재, 환영, 이미지, 그림자와의 대화이다. 우리는 다만 유령적 사건들이 출몰하며 주체로서는 도무지 감지할 수 없는 비인칭적 공간을 보고 있는 것이다. 비인칭의 세계, 유령적 사건, 이것이 <고백의 제왕> 전체에서 꾸준히 반복되는 테마이다.”

 

책의 뒷면에 실려 있는 권희철 님의 해설 내용입니다. 이 소설집의 두 번째 작품인 ‘변희봉’까지 읽어본 제게도 고개가 끄덕여질 만한 설명입니다. 그러나 이미 ‘동경소년’에 대해 너무 많은 말을 했으므로 ‘변희봉’에 대한 이야기는 여러분의 몫으로 남겨두고자 합니다. 그리고 저는 이제, 다음에 이어질 ‘고백의 제왕’을 읽으러 이만 총총 해보겠습니다!

 

-컨텐츠팀 에디터 현선(anejsgkrp@bandinlunis.com)




 



Trackback 0 Comment 0
prev 1 ··· 75 76 77 78 79 80 81 82 83 ··· 94 next